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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Dec 01. 2016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제3의 국적


 덥수룩한 갈색 수염에 보글거리는 파마머리를 한, 초록색 눈을 가진 땅딸보 백인 아저씨가 오른쪽 어깨에서 배 앞으로 내려온 털가죽 띠에 손바닥을 쓱 닦더니 그 손을 앞으로 쭉 내밀며 입을 연다.


"안녕하시오,  쇠도끼카페 체인점 대표 칼쿤 김 이라고 하오. 딥언더니아 출신이지요."


 얌전해 보이지만 얼굴이 무척 창백하고 입술은 쥐 잡아먹은 듯 붉게 칠한, 호리호리한 체형의 한국인 남자가 그의 손을 맞잡으며 반갑게 응대한다.  


"안녕하세요, 뱀파니아에서 막 도착한 토마토 주스업체 레드블러드 대표 쿠시오 강 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서울에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겉모습처럼 호탕한 칼쿤이 역시 성격 급한 딥언더니아인답게 눈을 부라리며 목소리를 높인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면 어떨지. 두 달 후 서울 인사동에 오픈할 저희 쇠도끼카페를 찾는 뱀파이어 손님들을 위해서 말이오. 그들이 주로 찾는 피처럼 붉은 토마토 주스를 당신네에서 납품받았으면 하는데 어찌 보시오?"


"저희 주스 색깔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게 선홍빛 피처럼 붉죠. 물론, 저희야 납품하면 좋지요. 하지만 비즈니스라는 걸 시작하기 위해서는 상세한 이야기가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럼 어디 이야기해봅시다. 우선 제일 중요한 가격은..."


서울이긴 한데, 어째 지명이 이상하다. 딥언더니아, 뱀파니아?

그리고 뱀파이어 손님들이라니. 참으로 꿈결처럼 괴이하고 기이하게 들릴 것이다.




 

 이 장면은 내가 우울하거나 심심할 때 혼자 떠올리곤 하는 상상이다. 내가 만든 판타지 세상을 자꾸 진짜 세상 속으로 끌어오려고 하는 나의 처절한 집념의 산물이자 의외로 재미난 소일거리이기도 하다. 한번 독자 여러분도 나와 함께 더 상상해보도록 하자. 


 만약에 말이다. 우리가 생활하는 일상 속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반지의 제왕에서 보던 난쟁이 복장을 입은 사람이나 송곳니가 삐죽 튀어나온 뱀파이어를 만난다면, 그리고 서울에 사는 뱀파이어들을 위한 파티가 열린다면 얼마나 재미나고 흥이 날까? 난 언젠가 옛날 마녀들이 쓰던 끝이 기다란 검은색 고깔모자를 쓰고 자연스럽게 회사 회의에 참석해보고 싶다. 그날은 할로윈날이 절대 아니다. 내 오른손에는 날아다니는 빗자루도 덤으로 들려있다. 들고 다니다 쓰레기가 보이면 쓱 옆으로 쓸어버리기도 할 듯. 그런데 회사 사람 중  아무도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속닥거리지 않는다. 왜냐면 한 사람은 초록색 마법사 옷을 입고 있었고,  부장님은 막 광부 일을 끝내고 온 듯 흙 묻은 난쟁이 스커트와 부츠를 신고 계셨고, 케이크를 좋아하는 동료는 배가 불룩한 요정 스웨터와 귀 끝을 길쭉하게 만들어주는 특수 모자를 입고 출근했기 때문이다.  



 브라잇 동맹 1권 처음에 나오는 여주인공 황수진 역시 나처럼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어린 소녀였다. 그러다 드디어 일생일대의 모험을 겪게 되었으니 바로 '하하호호히히'에 위치한 '브라잇 동맹'으로 가게 된 것이다.


 '하하호호히히'는 공간을 뛰어넘게 해 주는 게이트 너머의 새로운 판타지 세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판타지가 이곳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법사와 마녀, 거인과 난쟁이, 뱀파이어나 인어 등이 서로 사이좋게 살고 있고 사악한 괴물들과 악당들도 역시나 함께 존재한다. 

 약 3천 년 전, 마왕과 그의 악한 세력이 아름다운 이곳에 전쟁을 일으켰다. 각자 나라를 방어하고 그들을 무찌르기 위해 오래된 다섯 왕국이 힘을 합쳐 방어 동맹을 만들었으니 바로 '브라잇 동맹'이다. 그리고 삼천 년이 흐른 지금 한 나라가 더 참여하여 총 여섯 왕국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현재 2016년 브라잇 동맹에 포함되어 있는 여섯 왕국은 다음과 같다.

 

1) 딥언더니아 : 지하 땅속에 위치한 난쟁이들 왕국으로 여권 색깔은 초록색.

2) 스위티니아 : 맛있고 달콤한 디저트들을 만드는 요정들의 나라로 여권 색깔은 갈색.

3) 오나시아 : 동양 마법왕국으로 갓을 쓴 동양인들로 이루어져 있음. 

                      이 이름은 "ONE ASIA"를 합쳐서 만들었고 여권 색깔은 빨간색.

4) 일룸니아 :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영화에서 보던 서양 마법사들과 마녀들로 가득한 왕국으로 여권 색깔은 

                      노란색. 

5) 아쿠아니아 :인어 왕국이고 여권 색깔은 파란색.

6) 뱀파니아 : 뱀파이어들이 세운 왕국. 브라잇 동맹에는 20년 전에 편입되어 신생 동맹국이고 여권 색깔은

                      당연히 검은색.


 수진은 키릴장막아케이드에서 이들 모두를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입국심사를 하기 위해 보라색 커튼이 쳐진 바닥의 동맹국 여권 색깔과 같은 색으로 칠해진 두꺼운 띠 위에 서야만 했다. 그 뒤로 별별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미래에는 국적을 초월한 '제3의 새로운 국적'이 등장할 거라고 난 예상한다. 아니, 이미 진행 중이다. 예를 들면 '페이스북'이나 '구글'같은 기업은 이미 미국이란 나라를 초월했고 전 세계에 영향력을 뻗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을 '또 다른 국적'이나 '나라'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미 미국 정부도 IT기술을 통제하기 힘들어졌고 그들의 영향력은 거의 로마제국이 팽창했던 것처럼 쭉쭉 뻗어나가리라.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가속화될 거라는 게 나의 전망이다. 즉 현재 가지고 있는 국적은 점점 그 의미가 모호해질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다 우리의 상상력을 더해보고 싶다.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도 있고 심심할 때 하는 심심풀이 땅콩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제3의 국적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도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세계가 아닌 저 먼 어딘가에 있는 상상의 세계 한 곳을 택해 결정하고 각자의 상상력을 동원해 그것을 실제 현실로 만들어보려 노력해 본다면 상당히 재미있지 않을까? 

 지금 여기 지구에서 우리만의 아지트나 동영상, 이야기, 사진, 눈에 보이는 물건, 음식, 의상 등을 직접 만들어 입어보고, 먹어보고, 공유하고, 대화를 나누어간다면 어떨까? 


 자, 여기 '브라잇 동맹'에 관한 공유 플랫폼이 있다. 

 아마 그건 페이스북과 구글을 합친, 검색엔진도 되고 소셜 네트워크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자 평소 되고 싶었던 6개 동맹국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해당 왕국의 여권을 취득한다. 만약 6개국을 다 돌아가면서 한 번씩 맛보고 싶다면 1년에 두 번 여권을 바꿀 기회를 이용해서 국적을 바꿀 수 있다. 물론 자신이 사용할 이름과 어떻게 그곳에 속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지금 그곳에 있지 않고 여기 한국 서울에 살게 되었는지 그 내력까지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지어내야만 한다. 좀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게다가 중요한 점은 내가 진짜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평소에 생활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딥언더니아 국적을 취득했다면 진짜 난쟁이가 된 것처럼 상상을 곁들어서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입거나 먹거나 생활을 해보는 것이다.

 

 이러면 한 가지 재미난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미국에 사는 짐(가명)과 독일에 사는 베토벤(가명)과 한국의 홍길동(가명)이 '딥언더니아'라는 같은 왕국의 국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인종과 사용하는 언어, 문화가 다르지만 난쟁이를 좋아하는 판타지적 취향으로 인해 같은 국적을 취득한 자국민 관계로 묶일 수 있다. 그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그런 세계적인 축제나 파티가 열린다면 다 같이 모여들어 즐기고 국제적인 친구를 만들 수 있다. 플랫폼을 이용하여 세계 어디에 있던지 항상 연락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 한편으로 보면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쇠도끼카페를 진짜 동네에 창업하여 많은 딥언더니아 국적인들을 그곳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뱀파이어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피처럼 붉은 토마토 주스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한다. 즉,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단 말이다. 물론 이것은 브라잇 동맹이 인기를 얻어야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반대로 먼저 여기저기서 기이한 상품을 조금씩 내놓아 역으로 브라잇 동맹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퍼지게 만드는 역발상도 고려해볼 만하다. 


 전 세계의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영화나 책에서만이 아닌 진짜 판타지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과연 가능할까? 


 마지막으로 작가인 나에게 그럼 넌 어느 동맹국을 선택할 거냐고 여러분이 묻는다면?


 난 루마니아 드라큘라 백작의 한 98촌 손녀 뻘 되는 뱀파이어 후손으로, 백작에게 물린 몽고인이 전쟁으로 인해 고려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렇게 한국인으로 태어났다. 난 보통사람들처럼 일반 음식을 먹을 수 있으나 본성적으로 항상 피를 갈구해 대신 철분제를 열심히 섭취하는 중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상 작가의 허무맹랑하지만 들으면 풋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다. 


 다음엔 새로운 기회가 될 가상현실에 대해 함 말해보겠다. 다들 편안한 하루 보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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