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전히 아이스크림 가게를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댄다. 아마 어릴 적 동심의 세계가 바로 떠오르기도 해서 그렇겠지만 스스로도 바닐라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다. 재작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휴가를 갔을 때 아이들 뿐 아니라 많은 어른들도 아이스크림 콘을 손에 든 채 아이처럼 행복하게 재잘거리며 길거리를 거닐고 있는 모습을 수시로 목격하곤 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은 주로 아이들의 소유물이라는 스스로의 편견을 싹 깨뜨려버리는 기회가 되기도 했었다.
'브라잇 동맹'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롤리마을의 '초록갓 아이스크림'가게가 될 것이다.
롤리교회 맞은편 대로에 위치한 이 가게는 마을 사람들이 무척 사랑하는 장소였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그럼 그곳이 어떠한 곳인지 한번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아주 낡은 건물 1층에 위치한 그 가게는, 초록색 갓 테두리에 초콜릿 볼 두 개가 얹어진 아이스크림 그림과 그 옆에 고동색 글씨로 가게 이름이 써진 나무 간판 아래로 눈사람 모양의 하얀 문을 달고 있었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의 허름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달콤한 냄새가 그들을 맞아주었다. 안은 이미 줄을 선 아이들과 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연두색 벽지가 군데군데 떨어져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난 벽에는 두 개의 액자가 걸려있었는데 그것을 본 수진이 그만 킥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액자의 사진들이 너무 웃기고 괴상했기 때문이었다. 액자 아래 띠종이에는 각각 ‘김지만’, ‘해리 피넛’이라고 적혀있었고, 순자 아주머니가 이 가게의 전 주인들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수진은 드디어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가게 주인 박지원을 만나게 된다.
“신사 숙녀 분, 무엇을 줄까?”
검은색 곱슬머리는 마치 털실이 뒤엉킨 듯하고 생기 없이 까칠까칠해 보이는 하얀 피부, 180센티 큰 키와 함께 듬직한 체구를 가진 현재 주인 박지원이 아이스크림 진열장 뒤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구 부풀어 오른 검은 머리카락 위로 아까 사진에서 본 것과 똑같은 초록색 갓이 비스듬히 씌어져 있었다. 갓은 많이 낡고 오래되어 여기저기 농도가 다른 초록으로 덧댄 흔적이 역력했다. 반갑게 웃으며 맞아주는 그의 갈색 눈동자가 처음 방문한 수진에게로 향했다.
이전에 알려주었다시피 여기 나오는 '박지원'은 조선시대 열하일기를 작성한 실존 인물이다. 현재 그는 대한민국의 조그만 '롤리마을'에서 아이스크림가게 주인이 되어 있다. 어떻게 지금까지 생존해 있을 수 있었는지 그 사연은 차차 나올 시리즈에서 천천히 풀어나가기로 하겠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초록갓 아이스크림'의 3대 주인인 박지원은 이래봐도 '브라잇 동맹'의 '스위티니아 왕국'에서 아이스크림 관련해서 공부한 해외 유학파 출신이다. 주인공들과 함께 시작한 모험에서 그는 그의 유학 스승인 '레드점핑초코'를 키릴장막아케이드에서 만나 무척이나 반가워한다. 그러니 현 초록갓 아이스크림 가게에 스승의 이름을 딴 특별 메뉴가 4개나 있다는 점은 그리 놀랄 일만도 아닐 것 같다.
‘레드점핑초코의 아침식사’, ‘레드점핑초코의 간식’,
‘레드점핑초코의 저녁식사’, ‘레드점핑초코의 야식’
아마 언젠가 독자 여러분도 이 메뉴를 직접 매장에서 먹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고 아주 굳게 믿는다.
나는 꿈꾼다. 현재 모든 나라의 도시들마다 스타벅스 매장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처럼 '초록갓 아이스크림'이 그 옆에 위치해 있다. 아님 아주 특별한 도시의 특별한 장소에만 가게를 위치시켜도 좋을 듯하기도 하다. 작가인 내가 가본 도시만을 따로 엮어 그곳에만 매장을 오픈해도 꽤나 재미있을 것 같다. 뭔가 아주 특별한 느낌이 나면서 사연 있는 신비스러움을 간직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곳은 자신이 브라잇 동맹에서 왔다는, 아님 자신의 조상이 그곳에서 왔다고 믿는 전 세계 사람들이 다 같이 모이는 만남의 장소가 될 것이다. 이 안에서는 모두 '브라잇 동맹'이라는 공동체 소속감이 있다. 혹은 진심으로 그 공동체에 속하고 싶은 잠재성 있는 방문객들과 흥미를 가진 구경꾼들도 있을 수 있다.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 아무 스스럼없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인사할 수 있는 그런 인터내셔널 한 카페 같은 곳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모험을 설계하고 미래를 꿈꾸는 시간을 보내기를 바란다.
또한 그곳은 책에서 소개되는 브라잇 동맹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판매하는 쇼핑몰로도 같이 이용될 것이다. 당연히 내 책도 여기에서 팔릴 것이다. 아이스크림 가게라고 꼭 아이스크림만 팔라는 법이 있나? 책도 팔고, 물건도 팔고, 빵도 팔고, 다 팔아도 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글쎄, 미국의 누구는 화성에 인류 정착지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던데 그것에 비하면 이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비용도 덜 들고.
그럼 아이스크림가게에 관한 것은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고, 다음엔 '브라잇 동맹'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