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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Oct 30. 2015

3. 번개 맞은 자작나무 말뚝과 황금잎블루베리 - 1

3. 번개 맞은 자작나무 말뚝과 황금잎블루베리

 

“....올해 겨울은 이 나라에 기상관측소가 생긴 이래 가장 춥고 눈이 많이 올 것으로 예상되오니 각별한 주의를 요하는 바이며...”     


 기상캐스터의 예보처럼 무척이나 추운 날씨였다.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오후 햇살이 쏟아져 내려와 교회 묘지 곳곳에 유리알 같은 음영을 자아냈다. 소년은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묘지 가운데 난 하얀 조약돌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오른쪽 동산에서 웬 낯선 이가 길 위로 불쑥 뛰어들었다. 그의 얼굴은 땀과 흙으로 지저분했고 사제복에도 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두 손에 곡괭이와 삽을 든 그는 바로 롤리교회의 토마스 목사였다. 어제 아침, 케냐에서 이민 온 한 노인이 외출했다가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그 즉시 심장마비를 일으켜 숨을 거두는 바람에 그의 묘를 직접 파야만 했던 것이다.


“교회도 잘 안 나오던 영감탱이, 좀 더 버티다 가시지. 꼭 이렇게 인부가 없을 때 돌아가신담.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이런, 얼어서 땅이 안 파지잖아. 미쳐 돌아버리겠네.”


 그가 투덜거리며 아침 10시부터 파기 시작한 것이 오후 3시가 되어도 반밖에 파지 못하였다. 땅이 꽁꽁 얼어붙어 곡괭이 날이 오히려 구부러질 지경이었다. 내일 다시 파기로 결정하고 교회로 돌아가던 중, 저 앞에서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는 한 소년을 보게 되었다. 그의 얼굴은 털모자에 가려 잘 보이진 않았지만 얼핏 비치는 깨끗하고 하얀 피부로 견주어 이곳 아이는 아닌 듯싶었다. 시골에 사는 아이들 대부분은 햇빛에 그을려 갈색 피부를 지니었기 때문이다.


 목사가 반가운 목소리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 새로 보는 얼굴이구나. 이름이 뭐니?”


 소년은 대답하기 싫어 고개를 푹 숙인 채 빠르게 걸어왔다. 목사는 그가 못 들었나 싶어 다시 인사할까 하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지나쳐버렸다. 채 몇 걸음도 못 갔을 때였다. 목사가 흠칫 놀라며 제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그의 코가 심하게 킁킁거렸다.


‘아니, 이 냄새는?’


 그는 급히 몸을 돌려 점점 멀어져 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날카롭게 응시하였다. 시체에서나 나는 부패한 냄새를 얼핏 맡은 것이다. 그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다 누군가에게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큰 충격에 휩싸였다. 손에 들렸던 도구들을 떨어뜨리고 헐레벌떡 달리면서 막 내리막길로 접어든 소년을 애타게 부르기 시작했다.


“얘야~ 거기 좀 서보렴. 얘야~”


 소년은 그의 시야에서 금방 사라졌다. 그는 내리막길 언덕 위에 다다랐다. 그러나 발밑으로 드넓게 펼쳐진 평원과 그 끝자락에 단단한 벽처럼 서 있는 롤리숲만 보일 뿐 아이는 없었다. 그는 마치 유령을 목격한 사람처럼 정신없이 주위를 살피고 또 살피었다.      




 다음날 목사는 외출하고 돌아오다가 초록갓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사흘 전, 골목대장 상민과 괴력의 낯선 소년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고 그 일로 상민이 부상을 입어 며칠간 집 밖을 못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소년이 수진을 보호해줬다는 말을 들은 목사는 바로 그녀의 집으로 직행하였다.


‘그래, 내 감이 맞았어.’


 마침 그녀가 문을 열어주었다. 마음이 급해진 그는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문 앞에 선 채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단도직입적으로 그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러나 ‘이안 일룸니아’라는 이름만 겨우 들었을 뿐 어디에 사는지조차 알지 못하였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님을 확신한 그는 서둘러 교회로 되돌아왔다.


 사무실 책장 구석에서 한참을 낑낑대더니 먼지가 수북이 쌓인, 미국에서 나온 중학교 졸업앨범을 찾아들었다. 몇 장 넘기자 자신의 사진과 더불어 옆 페이지에 한 동창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마이클 홉킨스. 그래, 이 친구다.’


 검정 곱슬머리에 길쭉하고 날카로운 턱을 가진 마이클은 미남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세상의 불가사의한 현상을 파헤쳐보겠다던 예전의 말처럼 호기심과 생기로 반짝이고 있었다. 목사는 급히 뒷장 주소록을 펼쳤다. 그리고 친구의 미국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찍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제발 번호가 그대로이길.’


 다행히 국제전화가 연결되었다.  


“마이클, 오랜만이네 그려. 정말 오랜만이야. 나야 잘 지내지. 너도? 응, 다행이야. 근데 저기 말이야, 혹시 자네, 아직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나?”


 대화 내내 목사의 얼굴에 평소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팽팽한 긴장과 떨리는 흥분이 감돌았다.   



< 토마스 목사의 회상 >   

  

 마이클 홉킨스는 중학교 단짝 친구였다. 큰 덩치에다 활달하고 말이 많은 나에 비해, 그는 비쩍 마르고 사교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소극적인 소년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데라곤 전혀 없는 우리를 엮어준 중요한 동기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초자연적(Supernatural) 현상에 대한 깊은 관심이었다. 특히 둘 다 '뱀파이어, 흡혈귀'라면 사족을 못 썼는데, 나는 소설 [드라큘라]를 10번이나 탐독했고 그는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20번이나 돌려봤을 정도였다.


 방학이 시작되면 우리는 뱀파이어가 많이 산다는 루마니아로 가기 위해 햄버거 가게에서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틈틈이 학교 자퇴서를 썼다. 하지만 늘 자금 부족으로 그 계획은 다음으로 미룬 채 결국 개학 날 다시 학교로 굴러 들어와야 했지만 말이다.


‘그 시기에 팜킨을 만났지. 루마니아가 아닌 학교에서 말이야.’


 2학년이 되자 나와 다른 반으로 배정된 마이클은 팜킨이 뱀파이어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맞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팜킨은 나의 반에 새로 전학 온 남학생이었다. 그의 성(姓)이 무슨 '스턴베리(stonbury)'라던가 그랬는데 정확히 떠오르진 않는다. 백혈병 환자처럼 창백한 피부에 회색 눈동자를 가진 그는 마치 중세 유럽의 기사처럼 늘 기품을 갖춰 행동하였다.


 그러나 그의 옆에만 서면 뭔가 이상하면서도 익숙한 냄새가 맡아졌다. 난 인상을 바로 찌푸렸는데 살과 내장이 썩어 부패해가는 역겨운 냄새였기 때문이다. 장의사였던 아버지 작업장에서 항상 풍겨 나오는 그 지긋지긋한 시체 냄새 말이다. 아마 남들은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으리라.


 강한 확신이 든 나는 마이클에게 그 냄새를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도대체 믿지를 않았다. 나는 화가 나서 확실한 물증을 찾겠다며 큰소리쳤고, 다음날부터 열심히 팜킨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몇 번씩 땡땡이치던 학교 수업을 그가 있다면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 참석했다. 물론 수업시간에 내 눈은 책이나 칠판에 가 있지 않고 오로지 그의 뒤통수로 향하였다. 쉬는 시간에도 그의 행동을 눈여겨보거나 그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오죽하면 ‘토마스는 동성애자이고 전학생 팜킨을 사랑한다.’라는 이상한 소문이 학교에 다 퍼졌을까? 하지만 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뱀파이어라는 결정적 증거를 포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그렇게 조사를 하다가 나는 몇 가지 이상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늘 발목까지 길게 늘어뜨린 검은 옷을 입었다. 그리고 얼굴에는 여자처럼 짙게 분을 발랐는데 하루에도 여러 번 콤팩트를 꺼내어 얼굴과 목에 찍어 바르는 장면을 심심찮게 목격하였다. 낮에는 항상 양산을 쓰고 다녔는데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서라며 그가 직접 알려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너무 이상한 것은, 이 점이 가장 수상한데, 그가 밥을 먹거나 무엇인가를 먹는 장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건네주는 과자를 매번 사양하고, 점심때면 혼자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내 밖으로 조용히 나가버렸다. 난 늘 점심을 한입에 집어삼키고 쫓아나갔지만 이미 그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후였다.


 한 달이 지나고 겨울 방학을 하루 앞둔 날이 되자,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다는 조바심에 나는 점심도 거른 채 그의 뒤를 몰래 미행하였다.


 양산으로 햇빛을 가린 팜킨은 학교 뒤로 이어진 숲으로 들어갔다. 그늘이 진 나무에 등을 기대더니 그는 보온병에 든 것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무 덤불 뒤에서 그의 모습을 찬찬히 관찰하며 난 그때까지 정말 잘 숨어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그가 내 쪽을 바라보며 배시시 웃는 거야.


“이제 그만 나오지 그래, 토마스?”

 

 말을 마친 그의 입술 옆으로 붉은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난 너무 무서워서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학교로 뛰어 내려갔다. 곧장 마이클이 있는 식당으로 쳐들어가 그를 구석으로 데려갔는데 공포에 질린 내 모습에 그도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후 그는 나와 같이 숲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팜킨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보온병만 그가 기댔던 나무 앞에 가지런히 놓여있을 뿐이었다. 내가 달려가 그것을 열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 나왔다. 조금 남은 액체를 그가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보더니 헛구역질을 하며 진저리를 쳤다.


“피야, 분명 피라고.”


 방학 동안 우리는 매일 그 숲을 뒤졌지만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개학 날 그가 다른 학교로 전학 갔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가 얼마나 실망했었는지. 물론, 그 이후로 팜킨을 다시 만난 적은 없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아버지 직장 때문에 멀리 이사를 갔다. 그러면서 마이클과 점차 연락이 뜸해졌고 힘든 세상사에 치여 나중에는 서로를 잊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연락이 되어 어릴 적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다니.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예전의 열정을 또 한 번 품을 수 있게 되다니.


오, 하나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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