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브런치에 이야기를 올린지도 1년이 훌쩍 넘어간다.
사실 브런치를 알게 된 데는 나만의 힘든(?) 사연이 숨겨져 있다.
때는 바야흐로 4년 전, 그때 일이 선명히 떠오르지 않지만 암튼 회사일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심심했던 것 같다. 무척이나 말이다. 어느 날 아침 회사 컴퓨터 앞에 앉아 지루한 일을 하던 중이었다. 삐릿 삐릿~ 갑자기 나의 머릿속에서 전등이 켜졌다. 그동안 잊고 지냈었던, 반지의 제왕 1편에서 반지원정대가 컴컴한 난쟁이 왕국 '모리아'에 들어가 불이 켜지자 머리 위 까마득히 높은 천장과 주변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다들 감탄하던 영화 속 장면이 퍼득 떠올랐다. 지금 다시 떠올려도 어찌 그런 생각이 났는지 참으로 뜬금없고 엉뚱하다. 더욱 웃긴 건 바로 그다음, 만약 그곳이 폐허가 아닌 활기찬 곳이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혼자 상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곧 이어진 공상은 회사일로 중단되어야 했지만 그날 밤이 되자 나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래, 내 인생에 처음으로 이야기를 한번 써보자. 세상에서 듣도보지도 못한 판타지 세상을 내가 창조해보는 거야.'
그러나 이전에 제대로 글을 써 본 적도 없고 막상 상상력으로만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이 말이 쉽지 굉장히 힘든 과정임을 깨닫게 되었다. 일주일 정도 되자 포기 상태에 빠져들었다. 내 주제에 무슨 글이야, 포기할까 말까? 그렇게 고민하면서 집에 굴러다니던 신화집을 우연히 펼쳐 들었다. 북유럽 신화가 나왔는데 여러분이 잘 아는 '토르'도 여기 신화이다. 그런데 읽다 보니 난쟁이들에 관한 정보가 나오는 것이었다. 굉장히 신기했다. 그래서 무턱대고 읽으면서 노트에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더불어 동양신화도 살펴보았는데 거기에도 난쟁이 신화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또 정리했다. 그렇게 신화와 전설을 파헤쳐가다 보니 노트에 꽤 쌓이게 되었고 이야깃거리도 상당히 얻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무턱대고 난쟁이가 나오면 안 되니까 나를 닮은 여주인공과 또 내가 좋아하는 뱀파이어를 남주로 결정했다. 난쟁이 왕국의 이름도 땅속 깊이 위치해있으니 "딥언더니아(Deepundernia)"라고 정해보았다. 또한 판타지 세상엔 다양한 종족들이 있으니 나머지 나라들의 이름도 차차 정해나갔다. 특히 외국인들이 편히 발음할 수 있도록 영어단어를 결합해서 만드는 것이 포인트였다.
암튼 그렇게 시작한 것이 1권을 마치고 2,3권을 연이어 쓰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긴 한가보다. 이렇게 쓰다 보니 출판 욕심이 불끈 생기는 것이었다. 내 작품의 수준을 전혀 모른 채 그저 출판하면 다들 와아 할 텐데 착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턱대고 써놓은 1권 원고를 출판사들에 투고하기 시작했다. 여러분도 충분히 예상했으리라. 13군데 정도 넣은 것 같은데 다 퇴짜. 막상 원고를 투고하다 보니 모험 판타지를 출판하거나 관심 있어하는 국내의 출판사 수가 참으로 적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그중 한 3군데나 되려나?
국내의 출판시장이 참으로 작고 더군다나 문학상 입상이나 방송인 유명인이 아니면, 혹은 자비로 할 생각이 아니면 번듯한 출판사에서 종이 출판을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땐 아직 문피아나 조아라 같은 사이트는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서서히 자괴감이 들기 시작하였고 지난 2년간 쓴 것이 헛수고였나 후회도 되고 암튼 마음이 또 힘들어졌다. 그나마 퇴짜 답변들 중 한두 군데는 나의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후 세밀한 감상평을 보내주셔서 나를 감동시키기도 했지만 그러면 뭐하나 퇴짜인데...ㅠㅠ...
아마 브런치에도 이런 경험을 하신 작가님들이 꽤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리고 그 경험이 얼마나 쓰라리고 자존심이 상하는지 난 정말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우연히 접한 구글 서울 캠퍼스 멘토링에 이 문제를 갖고 신청하게 된다. 듣기로 멘토링에 선택되기가 엄청 어렵단다. 그래서 바로 포기해버렸다. 출판 문제는 스타트업이나 IT, 게임 등 캠퍼스에서 추구하는 사업들과 연관성이 없었기 때문에. 잊고 있었는데 아니 세상에나, 멘토링이 진행되기 바로 전날 캠퍼스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뽑혔다고.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 다음날 오전 두 주먹 불끈 쥐고 코엑스에 있는 서울 캠퍼스로 직행했다. 드디어 날 뽑아주신 멘토님과의 시간이 되었고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고민을 말씀드렸다. 시간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낭독이 끝나자 멘토님이 나를 똑바로 보시며 말씀하시는데 그분의 첫마디는 1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자비로 출판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고 브런치나 카카오 페이지 같은데 글을 차근차근 올려보세요.
잉? 브런치? 아침과 점심 대용으로 먹는 거? 먹는 거에 글을 올리라고?
전혀 못 알아들은 난 그분께 용기 내어 물어보았다.
"브런치가 뭔가요?"
그러자 그분이 카카오에서 만든 지 얼마 안 된 사이트인데 듣기로 글 올리기가 쉽고 디자인도 보기 좋다고 추천해주셨다. 단 조건은 작가 신청을 해서 승인을 받아야만 글을 올릴 수 있단다. 그리고 말을 이어가셨다.
"저에게 한두 살 짜리 어린 아들이 있는데요. 저보다도 핸드폰 화면을 더 잘 움직여요. 그러니 이 애가 크면 종이 책을 보겠냐고요? 저나 cindy님은 어릴 때 동화책을 보고 자란 세대지만 지금 어린이들은 액정을 보며 자라는 세대입니다. 과연 그들이 커서 종이 책을 볼까요? 아마 안 볼걸요. 제 개인적으로 앞으로 기존 출판사들이 많이 힘들어질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 딴 데 한 눈 팔지 말고 자신의 글을 차근차근 올려보세요."
이렇게 하여 내가 브런치를 만나게 되었다. 비록 여기서는 소설류가 별로 인기는 없지만 매거진의 전체적인 디자인과 화면, 글씨체 등이 매우 고급스럽고 보기 좋다. 표지의 사진이나 삽화를 넣는 공간도 널찍하니 마음에 쏙 든다. 그래서 꾸준히 이용하고 있다. 문피아에도 예전 걸 올리고 있는데 브런치만큼 읽는 화면이 좋지는 않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난 깨달았다. 그저 책에 파묻혀 사는 것이 아닌 세상이 발전되어 가는 것에, 특히 IT 기술발전을 민감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구나. 나의 것을 알리는데 예전에 없던 다른 방법으로 도전해볼 수도 있겠구나. 출판이란 것을 넓은 의미로 봐야겠구나. 또한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후 난 회사 시간만 허용된다면 IT 관련된 강연에 참석해보았다. 구글 서울 캠퍼스에서 하는 강연도 들었고 가끔 파티 같은 것을 할 때면 아는 사람 한 명 없어도 무작정 참석해보았다. 미국 마운틴뷰에서 온 구글 본사 직원들 옆에 앉아 슬쩍 과자를 건네며 질문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기술발전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불과 두세 달 전에 읽었던 IT 관련 책의 내용이 강연장에서는 이미 지나간 사건이 되었고 과거의 무덤에 묻혀버렸다. 책 보다 생생하게 현장을 전하는 강연이 나에게 더 큰 자극과 깨달음을 주곤 했다. 그리고 그건 나의 작품과도 전혀 무관하지 않을 터였다. 앞으로 콘텐츠는 더욱 주목받을 것이고 다양한 IT 기술과 접목될 것이기 때문이다. 난 상상만 하면 되고 나머진 기술이 다 알아서 뒷받침해주고도 남을 터였다. 참으로 신기한 시대가 온 것이다.
그래서 난 IT 강연장이나 포럼에 참석하려 노력한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리고 여기 브런치에 나의 상상을 마음껏 풀어놓을 것이다.
누군가는 하룻밤 사이에도 바뀌는 요즘 발전 속도에 두려움을 느껴 무섭다지만
이미 빠져나올 수 없다면 실컷 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껏 즐기자!
그리고 나도 당신들도 한번 거기에 탑승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