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는 이렇게
“엄마아~ 세제로 설거지하셔야죠오!”
날 선 참견이
주방 안 습기 속으로 파고듭니다.
살림을 책으로 배운
초보 딸의 뾰족한 말꼬리가
엄마 등 위로 쏟아집니다.
그 곁엔 늘 그렇듯
연년생 언니가 파수꾼처럼 서 있습니다.
맏딸은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찡그리며,
둘째 딸의 철없는 훈수를 단칼에 베어냅니다.
“야, 엄마 방법이 뭐가 어때서? 너나 잘해.”
그때 나는 거품의 양이 청결의 척도인 줄 알았습니다.
세제 거품이 몽글몽글 산처럼 쌓여야
살림이라는 전투의 승리라 여겼거든요.
환경 걱정하기보다 리필 세제를 쟁여두는 성실함에 취해, 주부습진을 훈장처럼 달고 물을 낭비하던 시절입니다.
엄마가 세제 한 방울 없이 뜨거운 물과 낡은 행주 한 장으로 그릇을 닦아내시는 것이 못내 답답해 입술을 내밀곤 했어요.
하지만 엄마가 떠나신 후
엄마의 방식을 복기한 후
기분 좋은 배신감에 휩싸였습니다.
기름기 서린 그릇도 델 듯한 온수와 정직한 행주질로 충분했어요.
세제 잔여물에 대한 의심도,
미끄덩거리는 거품의 눈 속임도 없는
담백한 세계를 맛보았답니다.
먼저 차르르, 샤워기 물줄기로 그릇의 1차 오염을 씻어내요.
이어 스테인리스 볼에 찰랑하게 받아둔 온수에 행주를 적셔 그릇의 민낯을 하나하나 훑어냅니다.
마지막으로 촘촘하게 낙하하는 투명한 물선들을 그릇에 쏟아 부어 탁탁 털어 건조대에 올리는 행위는 어지러운 마음을 닦아내는 정갈한 명상이었습니다.
목욕을 갓 마친 아이의 살결처럼, 온기 머금은 그릇이 운명처럼 지문에 착 감겨옵니다.
화학 성분이 흉내 낼 수 없는 순도 높은 청결 앞에 서면, 식어있던 마음까지 덩달아 데워지는 기분이지요.
도마를 햇살 샤워 시키고, 가끔은 눅눅해진 냄비들도 마당으로 외출시켜 콧바람을 쐬어주시던 엄마. 그 찰나의 정성들을 이제야 닮아가는 나를 발견합니다.
거품 가득한 세상에서 거품 없는 진심을 가르쳐주려 했던 엄마의 뒷모습이, 뽀득거리는 그릇의 마찰음 사이로 유난히 그립게 번져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