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텀블러와 분홍색 바가지
창가에 도착한 먼저가
스타벅스 텀블러인지(이하 스텀) 분홍색 바가지인지(이하 분바)모르겠어요.
열두 살 이후, 서른 다섯 해라는 긴 강을 건너
두 사람이 마주 앉은 풍경입니다.
엄마에겐 바가지가 두 개 있고
둘은 규칙이 있습니다.
파란색은 음식물 쓰레기를 담아 버리거나
마늘 깐다거나 거친 일에 사용하고
분홍색은 쌀을 씻거나 과일을 담을 때만 허락했어요.
둘은 남부 지방 먼 곳에서 함께 왔습니다.
난소암 투병 중이신 엄마를 모셔 올 때
둘을 놓고 오고 싶었으나
엄마가 필사적으로 안으셨어요.
완전 둥글지도 네모도 아닌
색깔과 모양새가 어디 두어도 촌스럽고
마음에 안 들었죠.
하얀 싱크대 위에 물기 머금어 놓여 있으면
재빠르게 닦아 싱크대 아래 넣기 바빴습니다.
엄마는 어느새 찾아 사용하시고 나는 숨기고
매일 서글픈 숨바꼭질을 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일 년이 지나며
분바랑 스텀은 자주 만납니다.
분바는 까칠한 스텀 눈치 보며 어색해서 말이 많고 스텀은 아직도 촌스러운 분바가 맘에 안 들어
투덜거려요.
분바는 그래도 스텀 곁에 앉습니다.
같이 밥을 먹고 웃으며 아침 인사합니다.
겪어 보니 분바는 편했습니다.
예쁘거나 세련되거나 날씬하지 않아도 좋다 합니다.
뻣뻣하게 긴장해 서 있지 말고 누워도 된다고 했습니다.
스텀은 분바에게 입을 열기 시작했어요.
분바는 펑퍼짐하게 앉아 마음 열고 들어 줬습니다.
스텀은 여전히 투덜대지만 분바는 그런 스텀도 좋다고 합니다.
스텀은 알게 됐어요.
이제 분바는 스텀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분바는 낡고 힘이 없다는 것을.
까칠한 스타벅스 텀블러가 마음을 엽니다.
분홍 미소 바가지가 따순 물을 쪼르륵 따라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