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파를 까십쇼!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 솔깃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들은 얘기야 겪은 일이야? 먼저 물어요.
그러다 보니 입담 좋은 사람은
직접 경험이 아니어도 흥미롭게 전달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깨달았죠.
아무리 재밌어도 내용이 부정적이면
소음이라는 사실.
어제 본 사람 또 보는 걸 좋아합니다.
설명이 필요 없기 때문이에요.
1화에서 9화까지 안 본 사람에게
10화를 보며 지난 스토리 설명해 줘야 하는 건
고역이잖아요.
익숙함엔 부작용도 있습니다.
했던 이야기던가? 하면서
결국 재방송하게 된다는 거죠.
좋게 말하면 가족이 되는 것이고요.
얘, 치약 좀 제대로 짤 수 없니?
얘, 변기 뚜껑은 또 안 닫은 거니?
얘, 설거지는 즉시 하랬지?
얘, 너무 늦게 자는 거 아니니?
가족은 백만 번 같은 소릴 들어도 헤어질 수 없지만 남은 다릅니다.
잘 놀다 어느 한쪽이 이유 없이 짜증 내거나 권태를 느낀다면
그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공감대나 화제가 바닥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맛집이라는 데가 맛이 있다 없다는 1차원적 느낌은
감동이 없기에 지속하기 힘들고,
책을 읽고 독서 나눔 하거나 내면의 성숙을 공유하지 않으면
바닥은 금세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카페에서 커피잔 앞에 가만히 앉아 여기저기 아프다는 아우성을 나누며
다디단 디저트를 먹고 있으면,
케케묵은 불만이 쌓이는 것만 같았죠.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생각나지 않으면 제삼자를 도마에 올려야 하고,
씹다 보면 재료가 맛없음을 알고 후회하지만
뱉지도 못하고 삼켜야 해요.
재료가 부정 타면 맛없는 요리되는 건 당연해서
또 소화가 안 됩니다.
그런 날은 집에 가면서도 어찌나 찝찝한지
뱃속에 가스만 찰뿐 방귀조차 쉬이 나오지 않지요.
이러한 이유에서 친구 k와 나 사이의 묘한 권태로움을 예견한 내가
생산적인 놀이를 제안했어요.
"우리 오늘은 파김치랑 깍두기 담자!"
드디어 어제, 쪽파 석 단을 사서 '쪽파 까기 추억'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내 계획은 낭만적이었어요.
마당에 앉아 좋은 강연이나 음악을 틀어놓고,
햇살 아래서 차를 마시며
여유롭게 파를 까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러나!!
못 하는 거 없고,대충 하는 거 못 보고,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일 잘하는 k를
너어무 몰랐음을 알게 됐습니다.
"넌 들어가서 무 절여 놓고 깍두기 담가. 파는 내가 깔게."
손 빠른 k가 쪽파 석 단을,
두 시간 꼬박 화장실도 안 가고 까버렸어요.
자투리 하나 흘리지 않고
버릴 것과 깐 것을 야무지게 정리하며
파김치 장인처럼 화려한 손놀림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쪽파를 능숙하게 벗기고
허리를 쭈욱 펴고 일어나 화장실 한 번 다녀오더니,
잘 모아 놓은 쪽파 겉 잎을 가르킵니다.
토요일은 신랑 퇴근이 이르니 이삭 줍기는 네가 하라며,
그야말로 쪽파만 까고 떠나 버렸어요.
k가 남기고 간 햇볕에 앉아 이삭 줍기를 하며
나는 또 머리를 굴려 봅니다.
삐진 건가? 쪽파 까며 놀고 팠는데
쟤는 왜 저렇게 전투적이지?
아니야 짐작하지 말자, 신랑이 일찍 온다잖아.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녀가 토라졌을 거라는 선택 말고,
깎아 놓은 배 한 조각 먹지 않고 떠났지만
k의 마지막 문장만 붙잡기로 합니다.
“허리는 아프지만 보람은 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