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를 씻으면 비가 온다는데

금시초문

by 재해석


10시 전 취침, 5시 기상.

자연이 정해준 리듬에 몸을 맡깁니다.

마당에 나가면 숲에서 놀던 마당냥이 꼬맹이가 반갑게 달려와 무릎에 앉아요.

몸을 쓰다듬어주면 턱을 핥고 코 뽀뽀를 해 주는

무해한 존재랍니다.

이토록 조건 없이 반겨주는 생명체는 고양이가 처음입니다.


사랑의 언어를 비벼 고양이 밥을 챙겨준 뒤, 마당의 풀을 뽑습니다.

봄을 즐기기 가장 좋은 시각에 말이죠.

풀 뽑기를 마치고 호미를 씻을 때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 전 놀러 오신 아는 언니와 호미를 들고 산에 올랐습니다.

취나물을 뜯고 두릅을 채취하며 숲이 들썩이게 웃었지요.

누가 들으면 로또라도 당첨된 줄 알았겠지만, 자연이 거저 주는 '무료'에 취해 신이 났을 뿐입니다.

엄마가 건강하실 때 숲에서 함께 웃어본 뒤로 처음 켜는 기지개였습니다.


언니의 자연 상식은 해박했습니다.

세상의 비결보다 숲의 언어를 아는 것이 훨씬 위대해 보이거든요.

손수 만든 입식 빨래터에서 언니가 호미를 살뜰히 씻으며 다정하게 말합니다.


“호미를 씻으면 비가 온다는데….”


그 어떤 노랫말보다, 시보다 투명했습니다.

호미 끝에 묻은 흙을 닦아내며 비를 기다리는 마음은, 마침표를 찍으며 다음 문장의 영감을 기다리는 시인과 같았습니다.

노동의 끝에 건넬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서정적인 작별 인사였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도 찾지 못한 그 문장은, 호미를 씻은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비를 몰고 오지는 않았습니다.

실컷 놀고 난 뒤 정성껏 장난감을 씻어 넣는 아이의 마음처럼, 그녀가 남긴 문장은 호미를 씻을 때마다 손끝에서 피어납니다.


호미를 씻으면 비가 온다던 매력적인 주문을 다시 만나고 싶은 새벽.

뻐꾸기 노래하는 고요한 시간에 감사하며 오늘도 잘 살아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