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점방을 훔쳐 간 걸까

사라진 점방에 부치는 이별장

by 재해석

<누가 내 점방을 훔쳐 간 걸까>



두어 번 삼키면 되던 것들이

슬픔이란 놈도 정체될 때가 있어,

목구멍에 병목현상 심해진 날은

우리 상회로 무작정 걸어갔어요.

현금을 쓰고 싶지만 돈이 없었죠.


다리 건너 잘생긴 편의점에서

슬픔과 맞바꿀 돈을 찾은 후

느티나무 아래 우리 상회 다시 찾아요.


바삭한 거 삼키면 목구멍 넓어질 듯해

맛동산 집어 들고 만원 내밀면

어린 여자 아이가 젖은 머리로 엄마를 불러요.

나는 또 그 장면이 괜히 좋아서

만원을 채우려 둘러봅니다


뒤늦게 나타난 고전 영화 여주인공이

몇 번은 본 것 같이 친근하여서

괜스레 말 한 번 건네 봅니다.

해태 농심 거래하는 ceo님께

돌미나리 난 곳 아냐 물으니

여사장 전문분야 아니었기에

몰라서 미안해하는 미소 지었죠.


가게 문을 닫고 나와

몇 번을 뒤돌아 봤던 점방과 모녀

사인이라도 받아 둘 걸 후회했는데

얼마 뒤에 점방이 숨었습니다.

누가 내 점방을 훔쳐 간 걸까.


점방과 나 사이에도

이별의 단계는 필요하기에

잘 못 본 걸까 여기가 아니었나,

편의점과 바람난 거 눈치챘나 부정을 하고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지냐고

아무리 힘들어도 버텼어야지

모질다 모질어 그놈의 점방

분노의 2단계 알아차려요.


나 이제 맛동산 어디서 사요

목구녕 병목 현상 어찌하나요

사인 한 장 못 받은 건 어떡하냐고

슬픔의 3단계 젖어들어요


너도 참 야속하고 힘들었겠지

편의점이랑 바람난 것들

시커멓게 타들어간 네 속은 오죽했을까

다음 생도 우리 상회로 꼭 태어나렴


신상도 갖추고 냉동고도 마련해서

바람난 놈 년들 돌아오면은

봉투값 따박따박 받아내라며

슬픔의 4단계 도장 찍어요.


누가 내 점방을 훔쳐 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