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teal Young
Jun 12. 2023
폭식증 그리고 과유불급 - 2
나는 음식도 관계도 폭식증을 앓았던 것 아닐까?
내가 갑자기 왜 이 주제로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는지 모른다. 그 누구도 모른는 나의 이야기를, 아마 내 인생의 비밀을 어디에다가 털어놓고 싶은 마음과 그리고 내가 치료한 방법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작은 선의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나의 그동안의 인생에서 이러고 싶은 마음이 든적이 단 한번도 없는데...늘 감추고 싶었는데 이 비참하고 부끄러운 나의 상태를 이렇게 드러내고 싶어졌다. 내가 이렇게 바뀌는 것을 보면 삶과 경험 그리고 관계는 정말 신기한 것이다.
나는 어떻게 20년간 조용히 나의 인생에 자리잡아 온 이 폭식증을 지난 5년간 끊어냈을까?
사실 "어떻게" 라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을 알고 싶어서 이 글을 쓴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나도 내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으니까.
폭식증이 시작되고 구토하고 난 후의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면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들어온다. 내가 너무 싫은 마음, 측은한 마음, 이해하는 마음, 뿌듯함, 그리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결심 등등이다. 그런데 그게 잘 조절되지 않는다. 구토를 하고 난 직후에는 다시 그러지말자!라는 다짐과 함께 며칠 몇 주간은 어떻게 견뎌내지만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한 감정이 들거나 살찐 내 모습이 싫어서 많이 먹게 되면 어김없이 구토의 욕구가 몰려온다. 폭식증을 끊고 싶었지만, 끊을 수 없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진 않지만 담배를 끊고 싶지만 끊을 수 없다는 것도 이런 느낌이겠지?
폭식증을 끊은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삶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던 것 같다.
나의 변화는 이때부터 인 것 같다.
2019년 2020년은 나의 인생에 굉장히 변화가 많은 시점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 그러면서 엄청난 혼란이 찾아왔다. 슬픔과 상실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평생 살것만 같던 아빠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 내가 깨달은 것은 삶은 정말 짧다는 것이다. 정말 짧은 삶에서 나는 항상 미래만 보고 살아왔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폭식증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지금의 나를 포기하고 내일의 날씬한 나를 갖게 되는 일이다. 또는 먹고 싶은 음식을 맛있게 행복하게 먹는 것을 포기하고 지금 내 몸을 괴롭히는 것이다.
그런데 삶이 한정적이고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삶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건강 염려증이라기 보다는 지금이 죽기 전 나의 마지막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구토를 하고 난 직후의 내 모습은 너무 별로였다. 이러다가 내일 죽게 된다면 난 얼마나 억울할까? 이 생각을 하니 "지금" 이라는 것의 중요성과 집중하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럼 어차피 죽을 거니까..먹고 싶은거 다 먹으면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폭식증이 시작되고 먹는 음식은 먹었다는 죄책감과 알수 없는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내 위 속에 무엇인가를 채워넣는 것이지 "맛있다" "행복하다" 라는 감정을 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지금" 내 모습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하루 하루를 어떻게 최선을 다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더 예뻐지고 더 웃고 더 행복한 지금을 보내기 위한 것들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먹고 싶은 음식 내 몸이 원하는 음식에 집중했다. 무엇을 먹고 싶은지 몰라 마구잡이로 밀어넣으며 맛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아무것도 못 먹으며 배고프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먹고 싶은지...그리고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배가 너무 불러서 불편함이 "배가 터지겠다"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만 먹고 싶은 만큼 마음껏 먹었다. 칼로리표를 보지 않고 내 체중도 보지 않고 정말 내가 원하는 만큼 맛있게 먹었다. (여기에서 원하는 만큼이라는 것에 대해 오해가 있을 수 있다. 폭식증 자체가 원하는 만큼 먹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정말 내 몸이 원하는 만큼 내 몸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 먹는 것이 원하는 만큼이 아닐까? 그래서 내 몸을 살피면서 천천히 먹는 것이다.) 어렸을 때 부터 엄마가 "맛있게 먹으면 살이 안찐다" 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짜증을 냈다. 우리 엄마는 그래서 뚱뚱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먹고 싶은 음식을 내가 원하는 만큼 먹으니...내가 두려워했던 것 보다 살이 찌지 않았다. 오히려 적당했다. 예전보다 더 마르지도 않았지만 예전보다 더 뚱뚱하지도 않았다. 내 몸을 살피다 보니 내 몸에 더 좋은 음식들을 먹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난 먹을때 어떤 시간이나 어떤 규칙을 정하지 않는다. 그냥 내 몸이 내가 "원하는 만큼", "필요한 만큼"을 이미 알고 있다고 믿고 맡겨 둔다. 그렇게 해서 내 몸은 내 몸이 가장 편안한 몸무게를 찾아갔다. 바로 중학교 2학년 때의 몸무게로 말이다. 역시 내 몸이 원하는 내 모습은 고3의 몸무게는 확실히 아니었다 :) 다행히도.
지금의 내 모습에 집중하기 위해 두번쨰로 한 것은 옷장 정리였다. 나중에 다이어트를 하고 입기 위해 산 사이즈가 안맞는 옷들이 가득했고, 비싸다고 아껴서 입는 옷들도 많았다. 기본 아이템은 없고 다채로운 색상과 다채로운 디자인의 옷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난 매일 입을 옷이 없다고 투덜거리기 일쑤였고, 옷장은 옷을 찾지도 못할 만큼 빼곡히 쌓여 있었다. 옷장 정리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우선, 오늘, 내일, 일주일 안에 당장 입을 수 없는 옷들은 당근을 하거나 버렸다. 사이즈가 안맞는 옷, 어떤 특정 상황에서만 입을 수 있는 옷, 그리고 나에게 어울리지 않지만 유행해서 그냥 구매한 옷들을 모두 과감하게 정리했다. 왜? 내일 죽는다면 저 옷들 속에 둘러 쌓여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 가장 나를 편하게 하면서 예뻐보이게 하면서 내가 어울리고 있는 사회와 잘 어울리는 옷들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필요한 옷들이 있다면 내일 입을 옷들을 그때 그때 사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세일할때 옷을 왕창 사두었는데 말이다. 언제 입을지 모르지만...비싼 옷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그랬더니, 다이어트와 유행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다. 나의 단점을 가려주고 장점을 살려줄 수 있는 옷들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았으니까..그렇게 나에게 맞는 사이즈와 몸무게를 찾았다. (사실 폭식증을 겪을때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 그렇게 밖에 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 한다. "살이 왜이렇게 많이 빠졌냐고?"
살은 하나도 빠지지도 찌지도 않았다. 폭식증은 고쳤다. 그리고 음식은 더 맛있게 더 다양하게,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즐겁게 먹는다. 그리고 오늘 나를 가장 아름답게 해 줄 수 있는 옷을 찾았다. 다른 사람보다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가장 아름답게 해 줄 수 있는.
그렇게 나는 폭식증을 고쳤다.
너무 모든 어른들이 하는 말들로 귀결되지만, 그 말이 다 일리가 있는 말들이지만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안다. 그 작은 차이는 엄청난 변화를 만든다.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가 도움이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