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주방에 간다

만드는 일을 기대하는 삶

by 정재이

"넌 오늘 뭐 먹을 거니?"


익숙한 어머니의 질문에 내가 답한다.


"청경채랑 두부 있던데? 전 그걸로 덮밥 해 먹을게요."


만들어 먹기를 실천한 지 두 달이 넘었다. 가족과 함께 살지만 늘 뭔가를 해 먹다 보니 어머니는 내게 '네 저녁은 뭐냐'고 자주 물으신다. 같이 산다고 해서 어머니가 내 밥을 차려 줘야 할 이유는 없지만, 일 좀 잘해 보겠다고 댓바람부터 책상에 앉는 딸이 안쓰러워 늘 챙겨 주시곤 하는데 내가 다이어트를 하겠다 선언한 이후론 먹을 걸 챙겨 줘야 한다는 마음의 짐을 더신 것 같았다. 이 '해 먹기 다이어트'는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살도 빼 주고, 내 심신에도 좋고, 나이 드신 부모님도 귀찮게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최근 이 식생활이 내게 준 이점과 즐거움을 전파하기 위해 지인들을 만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탄수화물과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을 먹으니까 잠들 때까지 제대로 소화를 시키지 못하곤 한다. 그들이 그런 음식을 먹자고 말한 것도 아니고 내가 먹지 말자고 말한 것도 아닌데, 약속 날짜가 되면 암묵적으로 'OO맛집'을 검색해 그중 한 곳에 가다 보니까 아무래도 화려한 음식을 먹게 된다. 또 이야기를 하며 먹다 보니 평소보다 많이 먹게 된다. 화려한 음식들은 맛있다. 맛있는 것들을 전부 모아 만든 거라―옥수수와 치즈라던가―맛이 없을 수 없는 데다 내 앞에서 밥을 떠먹는 지인을 보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따라서 먹게 된다. 배는 부풀고, 간만에 차려입은 원피스 덕분에 부른 배는 억지로 눌리고, 배가 눌려 소화가 되지 않으니 목 아래에 먹은 것들이 가득 차 있는 기분이 들어 온종일 불쾌하다. 건강하게 먹으니 좋다는 말을 하러 나와선 건강하게 먹지 못하고 돌아가는 역설이 발생한다.


화려한 음식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나는 SNS에서 이런 걸 먹은 이들을 많이 부러워했었다.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매일 평일 저녁에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지금의 동료 번역가들과도 아는 사이가 아니었어서 혼자 집 근처 카페에서 낮 시간을 보낸 뒤 집에 돌아가곤 했고, 주말 마감에 매달리느라 날씨가 좋아도 방에만 처박혀 지냈다. 작업에 찌들어 있다가 잠깐 SNS를 확인하면 타인들이 업로드한 사진을 보며 속앓이를 했다. 서울에 새로 오픈한 가게,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메뉴, 예쁘게 차려입고 찍은 맛집 인증 사진 등. 그래서 여유가 나면 친구와 약속을 잡아 그런 유명한 곳들을 한발 늦게라도 방문하곤 했다. 최대한 예쁘게 음식 사진을 찍고 그 앞에서 웃고 있는 내 사진도 찍어 달라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사진을 선별해 SNS에 올리면 미션 완료다. 하지만 그 행복은 찰나였다.


원래 미식을 좋아해서 먹으러 다니는 일을 좋아하면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들 가는 맛집에 다녀와야 뒤처지지 않는 기분이 들어서 먹으러 다니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런 문제에 내가 빠져 있었다. 내가 정말로 가 보고 싶은 곳에 다녀오면 성취감이라도 있었을 텐데, 남들 모두 주문하는 그 메뉴를 시켜 사진을 찍은 뒤 한 입 먹었을 때, 맛있다고는 말했지만 사실 기억에 강렬히 남아 있을 정도로 맛있었던 음식은 많지 않다. 최근 직접 음식을 해 먹으면서 육즙 가득한 고기나 이마에 땀이 밸 정도로 매콤한 라면, 꾸덕꾸덕한 브라우니 등을 떠올리지 않게 되었는데 그렇게 남들 먹는 거 같이 먹어 보고 싶었던 내가 SNS 사진을 보고도 꿈쩍 않는 걸 보면서, 내가 먹는 일에서조차 비교의식을 가지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진짜 내게 필요한 음식은 그런 게 아닌 데다 잘 생각해 보면 꼭 먹어야만 내 인생이 잘 풀린다던가 하는 것도 아닌데... 어린 날의 시기와 질투였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SNS 업로드용 예쁜 음식이 맛까지 좋아지기도 했고, 또 내가 나름대로 이것저것 먹어 봐서 욕심이 사라진 걸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와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잦아져 체지방량이 조금은 늘어났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편안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얼굴 혈색이 좋아졌다고 하더라. 사실 나는 크게 느끼지 못하겠는데 주변에서 그렇다고 하니 그런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입맛을 길들이는 데 들인 수고와 저녁 8시 이후로는 먹지 않겠다는 신념에 충성을 다하며 발버둥 쳐 온 건 맞으니까. 여기에 최소 한 끼를 매번 만들어 먹는 열심까지 들였으니까 약간은 우쭐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 말을 너만의 길을 잘 가고 있다는 칭찬으로 바꿔 듣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만들어 먹는 일이 더더욱 즐겁다. 직장인에 비해 비교적 스케줄 조정이 가능한 프리랜서라면 꼭 여러분 자신을 위해 만들어 먹었으면 좋겠다. 프리랜서가 아니더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거나 마음이 울적한 사람, 나를 아끼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라면 주방에 가 보자. 몸을 움직이면 속에 쌓인 것들이 해소되고 수고해서 만든 한 끼는 자연스레 감사를 읊조리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내 힘으로 몸이 변화되는 것을 직접 경험하니 직업적인 면에서도 나는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직접 재료를 고르고 손질해 먹는 귀찮은 일을 통해 나는 과정 없는 결과를 바라지는 않았나 생각해 보기도 했다. 빨리 잘 되고 싶었고 또 잘하고 싶었으니까. 누가 뭐라 한들 나는 해 먹는 일로부터 비움과 기다림의 미학을 배웠다.


내일은 뇨끼 만들기에 도전한다. 만드는 방법만 읽었을 땐 충분히 해 볼 만한데 감자를 삶고 식혀서 으깬 뒤 밀가루를 섞어 반죽하고 다시 삶은 뒤 노릇하게 구워내는 과정은 결코 쉽진 않을 것 같다. 주방에 오래 서 있어야 할 것도 같고. 크림소스 대신 조금 더 건강한 느낌의 소스는 없는지도 찾아보고 있다. 한 번에 맛있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흉내라도 냈을 때 나는 또다시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될 것이다. 자꾸 말이 길어져서 이제 끝을 맺겠다.


지금 주방에 가서 나를 위한 건강한 한 끼를 선물하자. 뭘 하든 늦지 않았고, 가능하며,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까지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