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타 에그타르트

믿음으로 반죽을 빚는 시간

by 정재이

밥을 해 먹는 것을 넘어서 빵 굽는 것에도 흥미를 느끼는 요즘, 뭔가 더 그럴듯하고 화려한 음식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에그타르트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지인이 극찬한 동네 가게에서 2,400원에 에그타르트 한 개를 구매한 경험도 좋은 동기가 됐다. 그 가게는 평범한 에그타르트와 달리 겉 부분을 페이스트리로 만들어 팔았는데, 바삭함이 일품이라 한 입 먹고 눈이 번쩍 뜨일 정도였다. 최소 세 개는 더 먹고 싶은데 하나에 2,400원이라니. 갑자기 도전 의식이 불타올랐다. 남다른 기술력으로 만드신 작품이기에 당연한 걸지도, 직접 굽고 예쁘게 장식하는 수고로움에 비해 덜 받으시는 걸지도 모르지만, 나도 한번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이 정도는 나도 하겠다'가 아니라, 양껏 먹기엔 비싸서 떠올린 대안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레시피를 검색한 뒤 필요한 재료 몇 가지를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다들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왜 그렇게 밥을 해 먹냐고, 뭘 그렇게 또 만드냐고, 대체 왜 그러냐고(?) 말이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썰고 볶아 만든 밥 한 끼가 생각 이상으로 든든하고 속이 편안해서 굳이 남이 만든 밥을 사 먹거나 배달시킬 생각이 없어졌고, 손으로 힘들게 반죽한 가루 덩어리가 예쁘게 부풀어 먹음직스러운 빛깔을 내는 걸 봤더니 오븐 앞을 떠나기가 어려워졌달까. 덕분에 언젠가는 작업실을 차리고, 그 옆에는 예쁜 책장을 놓아 동료 및 선배 번역가들의 번역서와 에세이를 꽂고, 내가 구운 스콘과 에그타르트를 팔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중간에 긴 나무 책상도 놓고 편안한 의자도 배치해서 책을 보고 싶으나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한 이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도 싶다.


이야기가 잠깐 옆으로 샜지만, 만들어 먹는 행위는 내게 이런 소박하고 원대한 꿈마저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도 어쩌다 이렇게 해 먹는 일에 빠져 버렸는진 잘 모르겠다. 확신할 수 있는 건 나의 즐거운 취미가 되었다는 것, 프리랜서 일상에 활력소가 되어 준다는 것, 무엇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는 것이다. 프리랜서의 삶은 꽤 파란만장해서 이런 활력과 믿음을 매일 같이 불어넣어야 한다. 지탱해 줄 사람이나 회사가 없기 때문에 긍정적 기운이 마음에 가득 찼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남김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프리랜서로 처음 사회에 나섰을 때는 언제나 외로웠다. 따스히 감싸 주던 상사도 동료도 없었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직업이다 보니 무엇을 번역하는지, 영화에서 상영하는 그런 개봉작을 맡는지, 수입은 직장 다닐 때보다 훨씬 나은지, 정말로 원하는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는지를 그렇게 궁금해했다. 어느 질문 하나 속 시원하게 대답해 주질 못해서 조금 속상했다. 영화 상영작은커녕 어느 케이블 채널에서 나오는지도 알 수 없는 영상을 번역했고, 수입은 전혀 나은 바가 없었으며, 마감을 맞추고 일감을 얻으려면 내 맘대로 휴업 간판을 내건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으니까. 나는 서점 매대에 깔린 책을 번역하는 사람도 모두가 알 만한 드라마를 번역하는 사람도 아닌데 세상은 그런 번역 정도는 해야 번역가라고 인식하니, 그 인식 수준에 따라가지 못하니까 나는 번역가로 인정받기엔 부족한 사람이라고 평가했었다. 참, 왜 그랬을까. 프리랜서나 번역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 채 던지는 한마디를 걸러 낼 능력이 그때는 부족해서 혼자 많은 상처를 안고 지냈다. 직장 뛰쳐나와 놓고 이게 잘하고 있는 걸까... 번역을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기는 하나 현실적이지 못한 몽상가가 바로 나인 건 아닐까, 날마다 생각했다.


뭐든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된다지만, 그때 요리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직접 손을 움직이는 일은 내게 많은 위로를 준다. 나물을 조물조물 무치면서 머리를 비우기도 하고, 있는 힘껏 식빵 반죽을 내리치면서 상대의 무책임한 행동에 화를 내기도 하고, 동료 번역가에게 줄 무화과 잼을 졸이며 지금껏 날 응원해 준 마음에 감사를 느끼기도 한다. 조금 완벽하지 않더라도 내가 만든 요리에는 성취감이 더해져서 무조건 맛있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기쁨이 생긴다. 왜? 맛있으니까! 내가 했으니까! 그때 이런 뻔뻔함을 조금 더 빨리 깨우쳤더라면 속앓이를 덜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들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숨지 말고 밖으로 나와 이렇게 말하는 거다. "지금은 아닌데 곧 잘 될 거야! 많이 봐 주는 작품은 아니지만 열심을 다 했어! 난 내 번역 작품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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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타르트 얘기로 돌아가자면 직접 손으로 반죽을 빚을 때도, 커스터드 크림을 만들어 그 속을 채워 넣을 때도 이게 과연 될까 싶은 마음이 있었다. 예상을 뒤엎고 촉촉하고 부드러운 에그타르트가 탄생했지만 말이다. 참고로 집에 온 사촌은 별말 없이 에그타르트 두 개를 후식으로 먹었으며, 머핀 틀 제공자인 셋째 이모는 너무 맛있었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단다. 사촌은 맛은 좋은데 모양이 아쉽다며 냉정하게 평가했으나, 평가를 부탁해 놓고도 나는 뻔뻔하게 '홈메이드란 건 원래 그런 거야'라고 되받아쳤다. 그럼 왜 물어 본 거냐는 말에 서로 낄낄거렸다.


그러고보니 복싱장 코치님께는 전화까지 왔었는데, 이 전화를 받고 패션 컬렉션 자료 번역이 깔끔하게 잘 되어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해 주신 B브랜드 담당자님과의 통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패션 번역을 할 줄 아는 경력자에게 맡겨 보고 싶다며 직접 의뢰를 하셨던 분인데, 처음 소통하는 패션 브랜드여서 많이 긴장한 상태로 진행을 했었다.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은 욕심과 맡겨 준 신뢰에 보답하겠다는 책임이 뒤따른 프로젝트였고, 양이 생각 이상으로 방대해서 잘하고 있는 건지 고민이 많았는데 다행히 멋진 결과물이 탄생해 정말로 뿌듯했다. 내게 있어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고 임했던 에그타르트 굽기와 B브랜드의 패션 컬렉션 자료 번역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열심을 다해 빚은 것들이 다행히도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으니까.


그렇게 어느새 나는 에그타르트 만들기에도 서슴없이 도전할 줄 알고, 실제로 만들어 냈고, 다양한 분야의 번역을 거쳐 패션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번역가로 성장했다. 두 일 모두 연습, 노력, 열심, 그리고 좌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이 네 가지를 겪으며 계속 성장해 나갈 예정이다. 반드시 그렇게 만들 것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