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다리 버거와 카넬레

진짜로 '좋은' 음식은 뭘까

by 정재이

체지방 2kg 감량에 달성했다. 복싱장에 등록하고 나서 두 달, 운동과 식단을 제대로 병행한 지 한 달 반 만에 이룬 쾌거였다. 타인이 보기에는 감량 효과나 정도가 미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체중을 빨리 감량할 생각은 없었고 일반식을 먹으면서도 이 정도를 뺐다는 사실에 감복했다. 여기서 일반식이라 함은 현미밥 반 공기와 나물 또는 두부 반찬 정도를 의미하고 떡볶이, 매운 볶음 라면, 피자, 스파게티, 삼겹살 등은 먹고 싶어도 참았지만 가족 모임이나 사교 모임처럼 피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과식하지 않을 정도로만 먹었다. 갈수록 밥을 해 먹는 즐거운 다이어트에 빠져들면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나지 않기도 했고.


어쨌거나 감량에 성공한 사실을 기념하고 싶었다. 체성분 측정한다고 공복 상태로 운동을 했더니 슬슬 배가 고파져서 집 가는 길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 들르기로 했다. 원래 햄버거를 자주 먹는 편이 아닌 데다 다이어트한다고 절제를 해 왔으니 오랜만에 먹어볼까 싶었다. 기념한다는 핑계로 힘들게 쌓아 온 절제력을 쉽게 무너뜨리는 건 아닐까 고민도 되었지만 하루 정도 맛있게 먹기로 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치킨 브랜드의 닭다리 버거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와, 신세계였다. 나는 음식에 후추를 넣는 걸 좋아하는데, 우리나라 치킨 특유의 후추 맛과 살짝 매콤한 맛이 환상적이었고 마요네즈도 랜치도 아닌, 그 중간에 달하는 고유의 느끼함과 단맛에 홀려 버릴 지경이었다. 닭다리 버거를 먹는 데는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왜인지 목이 막히는 기분이 들기도 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다이어트가 끝난 게 아닌데...'라고 생각해도 입은 이미 다음 한 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완벽한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의 현장이었달까. 신나게 먹어댄 후에는 여기저기에 나의 기쁜 체중 감량 소식을 전했다. 메시지 답장이 오면 다시 보상으로 먹은 닭다리 버거 사진을 보내 주고 날아갈 듯이 좋다는 말을 덧붙인 후 일을 해야겠다 싶어 책상 앞으로 가 노트북을 켰다.


앉아 있는 내내 속 어딘가가 꽉 막힌 듯한 기분이 지속됐다. 아까는 배가 고파 밥을 빨리 먹어서 목이 막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몇 시간 동안이나 이런 느낌이 이어졌다. 덕분에 번역 작업 집중이 되지 않아서 쉬는 시간도 가질 겸 거실 소파에 나가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집 앞 단골 디저트 가게에서 카넬레를 판매한다는 SNS 게시글이 올라와 있었다. 여기도 방문한 지 꽤 오래됐는데, 한 번 가볼까. 지갑을 챙겨 들고 거무튀튀하지만 노릇한 색감이 일품인 카넬레 두 개를 사 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디저트의 정석이니까 오늘 같은 날을 기념하기엔 딱이야! 라는 이상한 아무 말을 읊조리며 반을 갈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내 입에서 맛있다가 아니라 '너무 달아'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심장이 쿵쾅대는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맥박이 빨라지고 몸이 흥분하는 걸 보니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디저트를 먹고 이런 걸 경험해 본 기억은 없었던 것 같은데... 잠시 머리를 굴리다 몸에 이상이 생긴 이유를 알아챘다. 갑작스레 혈당지수가 치솟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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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지칠 땐 단 거'라는 신조를 가지고 살았는데, 난 지금까지 어떻게 이렇게 먹고 지내왔을까 싶어 말문이 막혔다. 잠시 안 먹다가 먹어 보니 달달한 디저트와 자극적인 고칼로리 닭다리 버거가 내 몸에 미치는 영향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오후 2시에 먹었던 닭다리 버거는 저녁 8시가 되어도 소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좋아했던 카넬레도 갈라진 반 입을 어쩔 수 없이 털어넣었을 뿐, 남은 한 개는 당일에 먹지 못했다. 물론 사회생활도 하고 대인 관계를 유지하다 보면 매일 식단을 조절하며 먹는 것이 어렵겠지만 점심에 김치볶음밥, 간식으로 크림빵, 저녁에 불고기 덮밥, 후식으로 과일을 먹는 하루하루를 지속해 왔으니, 과식하지 않았는데도 뱃살과 몸무게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숨이 가쁠 정도의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이전까지는 이렇게 먹어 놓고 집에 돌아오면 자기 바빴으니 찌뿌듯한 몸으로 아침에 일어나 부은 얼굴을 마주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닭다리 버거와 카넬레를 먹은 덕분에 좋은 것을 먹는 건 나를 아껴 주는 일이란 걸 새삼 알게 되었다.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유명한 말처럼, 내 몸에 맞고 어울리는 음식을 먹는 일은 내 육체와 정신을 빚어가는 일이며, 대한민국 여성 평균 수명까지는 살기를 원하는 내 몸뚱이에 친절을 베푸는 일이란 걸, 그리고 이 친절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때론 이 두 가지가 '좋은' 음식이 될 수도 있다. 그날 유난히 먹고 싶은 것이라면 먹는 것이 맞고, 겉잡을 수 없는 우울함에 도움이 된다면 달달한 것을 먹고 기운을 차리면 된다. 그런데 나는 이왕이면 '조금 더 좋은 음식'을 먹고 그 음식이 주는 기운을 다른 누군가에게 글로, 말로, 표정으로, 행동으로 보여 주고 싶다. 내가 먹은 두 가지가 죄악이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니까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된다. 다만 나의 경우, 아직은 담백한 재료와 제철 야채로 밥 만들어 먹는 일이 지금의 나에겐 훨씬 값지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나는 이날의 경험을 지인에게 입이 닳고 마르도록 나누었다. 한때 내게 기쁨이었던 음식들이 불편한 감정을 안겨 준 것에 놀랐다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좋은데 당신을 위하는 '좋은' 음식을 먹기를 바란다고 진심을 담아 전했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부디 오지랖이 넓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헤드 이미지 출처: https://www.pikrepo.com/fpqbp/cheesebur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