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반찬통

체면 차리기 싫은, 모든 게 다 귀찮은 날

by 정재이

간단한 요리마저 직접 해 먹을 여유가 없고 마음이 바쁠 땐 어쩌면 좋을까. 다 필요 없다. 냉장고에서 내열 용기에 담긴 밥 한 공기, 그리고 있는 반찬통을 다 꺼내 먹으면 된다. 예쁘게 플레이팅해서 먹으면 참 좋겠지만, 모든 일의 우선순위는 '스트레스받지 않기'다. 더불어 직접 해 먹는 일의 목표는 나의 건강, 즐거움, 행복을 노래하는 것이므로 압박이나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 다.


마감이 많은 것은 아닌데 지친 기분이 들고 밥은 먹어야겠으나 모든 것이 귀찮아서 어찌할까 하다가 정말로 냉장고에 있던 반찬통을 다 꺼냈다. 오히려 마감이 많을 때보다 겹겹이 쌓여 있는 마감을 전부 해결했을 때 더 지치고 힘이 쭉 빠진다. 마치 1년 간의 수험 생활을 모두 끝내 온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려 버린 고3 수험생 같달까. 반찬통 뚜껑을 모두 열어젖히니 조금 정신없긴 해도 9첩 반상 못지않은 반찬통 밥상이 완성됐다. 어머니가 담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치, 반찬 가게에서 산 연근 조림, 지난번에 무친 두부 시금치... 한식 뷔페 못지않군. 고추장에 참기름 조금 부으면 비빔밥도 될 수 있겠다.


그래, 지치고 바쁜 날에 뭐 있던가. 어쨌든 직접 꺼내고 준비해서 해 먹었으니 그만 아닌가! 그냥 있는 거 다 털어 먹고 자랑스럽게 배 한 번 두들겨 주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