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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Jul 06. 2021

셀프 흑백 사진관 체험기

왜들 가나 했더니, 자기애(自己愛)가 샘솟네

말만 듣던 셀프 흑백 사진관을 찾아갔다. 혼자든 둘이든 셋이든, 일행끼리 알아서 사진을 찍는 곳. 사진사는 고객이 고심해서 고른 사진 한 장을 보정해주고 인화해 종이 액자로 선물한단다. 단순하게 정리하면 사진관을 한 시간 정도 빌리는 것에 가깝지 않나 싶다. 식당에 돈을 내고 밥을 먹으러 갔는데 내가 직접 키오스크로 주문을 해야 하고, 내가 냅킨을 챙겨야 하고, 내가 물을 가져다 마시고, 먹은 것은 내가 직접 퇴식구에 가져다주는 요즘 식당을 보며 '그들이 해주는 것이 뭐냐' 하던 어느 중년 지인이 생각났다.



이용 방법을 설명해준 사진사가 나가고 나니 적당한 크기의 사진관에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무엇부터 하면 좋을까 우왕좌왕하다가 일단 의자에 앉아서 몇 장 찍어 보기로 했다. 팔을 이렇게 뻗으면 별로구나, 다리를 이렇게 꼬으면 괜찮구나, 머리가 생각보다 산발이군. 어디에 서서 찍어야 내 얼굴이 정 가운데에 나오는지 알아내는 것도 전부 내 몫이었다. 그런데도 이 수고스러운 셀프 촬영장에 왜 왔냐면 '지금의 나'를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지난 6월 어느 날, 지인 결혼식 덕분에 토요일 오후까지 한껏 머리를 매만졌다. 평소 대충 머리를 말릴 때는 힘들이지 않아도 파마머리가 잘도 살아나는데 꼭 필요한 순간에는 거짓말처럼 생머리가 된다. 계속해서 손가락으로 열심히 머리를 꼬아댔더니 약간 만족스러운 형태가 되어 기분 좋게 거울을 봤는데,



'아, 프로필 사진 한 장 찍어 두면 좋겠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스쳤다. 머리 모양도 만족스럽고, 화장도 양껏 했고, 약간 광택이 나는 셔츠에 깔끔한 미디스커트를 매치한 모습이 좋아서 그랬나 보다. 그때의 나는 이 만족스러운 내 모습에 밝은 미소를 곁들여 평생 소장할 만한 사진으로 남겨 두고 싶었다.



총 촬영 시간은 한 시간이었는데 혼자서 찍는 거니까 시간이 남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마냥 그렇지만도 않았다. 좋아하는 베이지 계열의 셔츠 두 장을 챙겨 가 구석에서 셔츠를 바꿔 입고 찍고, 셔츠 안에 챙겨 입은 포멀한 느낌의 민소매 차림으로도 찍고, 안경을 쓰고도 찍고, 내가 좋아하는 내 첫 책을 들고도 찍고. 슬슬 굳어 있던 몸과 얼굴 표정이 자연스러워지는 걸 느끼던 즈음 시계가 촬영 종료를 알렸다. 열과 성을 다해 웃음 짓고 자세를 취하느라 약간 지쳤기도 했지만 그래도 시원섭섭했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 중 오로지 한 장만 사진사의 손길을 받을 수 있고 나머지는 날 것 그대로 내게 전달될 예정이었다. 셀프 '흑백' 촬영이지만 요즘은 컬러로 촬영 후 직접 흑백 변환을 한다고 하기에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이 정도면 그냥 모든 걸 혼자 하는 것 같다. 컬러에서 흑백 전환은 비교적 쉽지만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하는 것은 어려우니까 그런 듯하다). 집에 돌아와 사진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흑백으로 보정할 것을 추려냈는데, 이 과정에서 대단한 즐거움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사진을 하나씩 추려 내는 일은 내가 나의 예쁜 모습을 면밀히 살펴보는 행위과 같다. 나는 사진 100장 중에서 마음에 꼭 드는 것 10개를 골랐다고 해도 나머지 90장을 삭제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 모습을 과감히 지우질 못한다. 지우더라도 어딘가에 백업을 해두고 지우니까 이게 진짜로 지우는 건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삭제할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당장 지우지는 않는다. 저 사진보다 덜 예쁘긴 하지만 이 사진이 밉고 싫은 건 아니니까. 그렇게 한 장 한 장, 사진 속 나를 들여다 보니 나는 '생각보다 꽤 괜찮고, 웃을 때 예쁘고, 눈가의 주름이 매력적이고, 셔츠가 잘 어울린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 나는 꽤 괜찮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 은근히 괜찮다는 것을. 셀프 사진관이 이렇게 자기애를 북돋아주는 데 일조한다면 나는 앞으로도 이곳을 자주 찾으리라, 결심이 선다.



10평 남짓의 촬영장을 독차지하는 경험과 그 속에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내가 나와 함께 있을 때 낼 수 있는 표정으로 순간을 기록하는 것. 이것이 셀프 흑백 사진관의 매력인가 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간직하고 기록하고 싶어서 카메라를 든다. 셀프 사진 촬영은 그 사랑하는 사람을 '나'로 바꾸는 일과 같다. 사진을 찍기 위해 나를 좋은 모습으로 가꿔 주고 예쁜 옷을 입히는 것부터 시작해 촬영 후 사진을 고르는 일까지, 별거 없는 줄 알았더니만. 또 찾아갈 것 같다.

작아서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나의 일부인 '내 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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