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처럼 살리라
30대 초반의 마지막을 달리고 있는 요즘에 들어서야 나는 비로소 하루를 잘 지내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다양한 경험을 하기 때문에 재밌는 일이 사라진다던데(실감하고 있기도 하고), 다행히 아직까지 기쁘고 신나고 새로운 일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여전히 아프고 속상하고 우울한 일도 존재한다. 후자가 전자보다 많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후자에서 비롯되는 감정이 워낙 무겁기 때문일 것이다.
7월의 어느 날 앞으로도 혼자 잘 지내고 싶다고 허공에 말했다. 신기하게도 텍스트라는 것은 프리즘처럼 읽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어서 허공으로 날아간 내 말은 다양한 빛깔로 돌아왔다. 그동안 힘들어하더니 기분 전환이 돼 다행이다 라든가 혼자 사는 거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라든가 충분히 잘하실 거예요 라든가 마음이 가벼워 보이네 라는 메시지를 받았는데,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비혼 선언이라도 해 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 아닌 걱정이 밀려들었다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보니 그때 그 말을 했던 나의 마음의 팔십 퍼센트가 '앞으로도 혼자 사는 삶'에 초점을 맞췄다는 걸 알아냈다.
풀리지 않는 상황과 보이지 않는 미래, 상처 입는 것이 두려워도 그 속에서 노력한 나. 부단히 깨지고 넘어지길 반복하다 이제야 공연히 잘 지내게 된 지금의 일상을 깨뜨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크다. 이 마음은 폐쇄적이기도 하다. 또 다치는 것이 무서우니까 일이든 관계든 위험 부담이 있는 무언가에는 더 이상 도전할 마음이 없다는 뜻이어서 그렇다. 닥터 수스가 <초록 달걀과 햄(Green Eggs and Ham)>을 통해 수십 번 던진, '어쩌면 좋아할지도 몰라'라는 말을 반갑고 기껍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추석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선조의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나도 그러고 싶긴 한데,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 싶어서.
종종 주변에서 말한다. 말을 뒤집어 생각하지 말고, 그 속의 뉘앙스도 자꾸만 파헤치지 말고 그냥 표면적인 것만 받아들여 보라고. 가끔 섭섭한데 맞는 말이기도 해서 받아치질 못한다. 깊게 파헤칠 때와 그러지 않을 때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앞으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를 위해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기술을 연마하고 싶다. 선선하게 살랑이는 바람과 내리꽂듯 뜨거운 햇볕이 적절한 균형을 이뤄내 듯이 나도 가을처럼 살고 싶다. 우아하게 자신의 빛을 뿜어내는 달처럼 살고 싶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의 목표를, 가족이 아무도 아프지 않고, 집안에 큰 탈도 없으며, 일교차 큰 날씨에 게으르게 소파에 누워, 다 같이 TV에 취해 부지런히 사과를 입에 넣는 2021년의 추석 당일 날에 세워 본다. 앞으로 나는 한가위처럼 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