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과 새해가 주는 이상한 두근거림을 지나오니 다시 평범한 일상이다. 그래도 여느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생각이 풍부하다는 것. 나도 모두와 같이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상태다. 새해 목표와 계획이 망하는 이유를 찾아보니 1월 1일부터, 무척 많은 것을, 한꺼번에 실천하려 들기 때문이란 걸 알았다. 그래서 몸을 숙이고 속도를 낮추되 느리게 걸어가지는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영어 라디오는 일주일에 두 번 밖에 못 들었고 홈트는 겨우 한 번 했는데도 화가 나지 않았다. 이래도 괜찮은가 하는 불편함은 있었다. 번역 작업을 밀리지 않게 해내는 것이 최우선이었고 실제로 제1주에는 지켜냈기 때문에 마음이 차분한 걸지도 모른다. 착실하게 번역은 했지만 내 손을 타고 나온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화가 나기는 한다. 작년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나의 시간을 허투루 사용할 생각은 없다. 나는 해야 하는 것도 많고, 하기 싫은 것도 많다.
하루를 4시간 단위로 삼등분하여 살고 있다(겨우 일주일째지만). 4시간만 일한다는 유명한 작가의 책과 이걸 실천할 생각이라는 인기 블로거의 다짐에서 영감을 받았다. 1회 차는 아침부터 점심(09:00-11:30)까지, 2회 차는 점심부터 이른 저녁까지(13:00-17:00), 3회 차는 저녁부터 자정 전까지(19:00-23:00)로 정했다. 물론 예외와 유연한 적용이 가능하다. 1회 차에는 가벼운 읽기 활동과 하루 계획, 가벼운 번역 작업을 한다. 2회 차에는 조금 더 끈기와 집중이 필요한 작업을 하는데, 예로 6페이지짜리 기사 번역이나 요즘 하고 있는 책 번역이 있다. 3회 차는 일명 자기 계발 시간으로 글쓰기, 책 읽기, 강의 듣기를 한다. 상황상 저녁 약속을 잡기도 하고, 낮 외출이 있거나 번역을 다 마치지 못한 경우 일을 하기도 한다.
하루에 4시간만 번역을 해서 먹고사는 일은 가능할까. 가능한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한 때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일이 몰린다면 더더욱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번역인의 삶을 위해 도전해볼 만하다고 느꼈다. 게다가 올해는 출판인으로서의 입지도 다져나갈 작정이니 양쪽의 균형을 잡는 시도가 필요하다. 이제는 나를 활활 태우고 싶지 않아 졌다. 나는 죽고 번역은 사는 삶 말고, 나도 살고 번역도 사는 삶을 원한다. 뭐, 가끔은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최근,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매일 보는 사람들보다도 나의 기분과 상황을 세세히 살피고 있어서 놀랐고 감동했다. 그저 버킷리스트 하나 해보고 싶어 보이던 사람이 한 명의 브랜드로 커 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당사자인 나도 앞길을 모른 채 그저 묵묵히 걷고 또 걷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맙소사, 너 어디서 내 생각 훔쳐듣고 왔냐고 물을 뻔했다. 눈깜짝할 새 몸집을 키우고 일을 확장시키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의 이정표는 어디인지 궁금해졌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올해는 균형을 유지해볼 생각이라고 답했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는―이미 수백 번 말했을 테지만―방향을 잘 정해야 상생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과 상생할 수 있냐고? 모든 것과. 내 자아, 삶, 가족, 친구, 지인, 일, 재정, 감정, 건강, 꿈... 모든 것과. 나는 나의 낮은 역치를 작년 한 해 동안 최대로 늘렸고, 내가 이만큼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으니, 이 이상으로 맷집을 늘리는 데 집중하기보다 그 안에서 자주적으로 뛰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