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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Dec 26. 2016

내면의 소리

11월 9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시타델라에서 만난 두나우 강.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를 지켜 가라고, 맑고 깨끗한 폭포가 내게 말했다.'

어느날 TV에서 봤던 CF 광고에 삽입된 녹음 문구에 마음을 뺏겼다. 홍보하는 음료에 잘 어울리는 이 문구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도 충분했다.
있는 그대로를 지켜간다는 건 어떤 걸까. 이 광고 문구를 만난 뒤부턴 때때로 문구가 머릿속에 떠올라 생각해 보곤 한다.
나는 폭포가 말한대로 있는 그대로를 지켜가고 있을까?

부다페스트를 방문했을 때 홀로 시타델라라는 곳에 간 적이 있다.
해가 곧 저물 것 같아 서둘러 움직여 방문한 곳은 높은 언덕이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 사이에 흐르는 두나우 강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이 사람들은 쉽게 바꾸려하거나 없애려하거나 옮기려 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렇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날 두나우 강을 마지막으로 마주했을 때도 그랬다.

두나우 강은 그날도 열심히 파도를 치며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파도가 치는데 잔잔하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지만, 실제로 그랬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바람이 일으키는 파도로 묵묵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밑도 끝도 없이 다짐을 하게 됐다. 한결 같은 사람, 성실한 사람,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서 있는 사람. 나 자신에게도 누군가에게도 그런 사람이 되어 주겠다고, 너 두나우 강처럼 나도 그렇게 해 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콧물이 흐를 때까지 멍하니 강물만 바라보고 있었다.

종종 사람들은 내면의 힘을 기르라는 말을 한다. 나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고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는게 뭘까 생각한 적이 많다. 내가 하는 말을 듣는다는 건, 결국 내 생각대로 하라는 걸까? 내가 생각하는 게 내가 말하는 거니까.
때때로 고민하는 시간들이 잦아들면서, 언젠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조차 잊어버린 나에게 처음 만난 두나우 강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세월의 흔적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것.
지금의 모습을 소중히 지켜가는 것.

그것이 바로 내면의 힘을 기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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