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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May 03. 2019

언어 교환 앱 사용 보고서

결국 이곳도 사람이 모이는 곳이었다

요즘 언어 교환 앱을 자주 사용한다. 꽤 오래전부터 들락날락했으니 시치미 뚝 떼고 ‘요즘’이라고 말하기엔 위화감이 들지만, 최근 들어 더욱 빈번히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한다는 말의 의미는 해당 앱에서 마음이 맞을 만한 사람을 찾는 행위와 앱에서 제공하는 채팅 플랫폼을 통해 대화하는 행위를 뜻한다. 앱을 자주 확인하는 이유는 지구 저편 어딘가에 살고 있는 누군가와 글자로만 밋밋하게 대화를 주고받다가, 실제로 만나서 나눈 이야기가 생생한 추억으로 남으면서 앱에 대한 나의 신뢰도가 높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사용하는 앱은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외국인 친구와 교류하기를 콘셉트로 내세웠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이 많다. 그러나 요즘은 기획 의도가 무색하게 한국에 관심이 없어도 다양한 외국인이 계정을 등록해 여러 친구를 만나는 장으로 사용하는 듯하다. 유명 데이팅 앱처럼 서로 수락(Accept) 버튼을 눌러야만 대화가 가능하다. 수락 버튼을 누를지 말지를 결정하는 데는 여러 요인이 존재하는데, 사람에 따라서 얼굴이 내 취향인지(결국 호감도가 중요한 걸까?), 프로필을 성심성의껏 작성했는지(너무 길면 안 읽지 않나?), 비슷한 나이 또래인지(이건 이해가 좀 된다) 등이 관건이다. 하지만 매치에 성공했다고 해서 막 시작된 우정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매치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이해가 안 되기도 한다. '침묵형'의 경우, 분명 나와 대화하고 싶다는 의미로 버튼을 눌러 놓고선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하고 한국이나 나에 대해 알려고 하지는 않는다. 안부 인사부터 관심사가 무엇인지까지 대화를 이끌어가는 건 전부 내 몫이다. 예를 들어 카페에서 마주 앉아 있다고 상상해보자. 상대는 입을 꾹 다문 채 내가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대답만 한다. 결국 할 말이 없어진 나 또한 '그렇구나'라며 어정쩡하게 대답한다. 대화가 멈춘 사이, 커피를 홀짝이는 동안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누군가 한 명은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을까? 나의 대답을 끝으로 채팅방은 결국 조용해진다. 그리고 며칠 뒤 앱에 접속해보면 ‘침묵형’ 친구의 프로필에 방금 전까지 접속해 있었다는 문구가 표시된다. 말도 잘 안 하면서 어떤 친구를 그렇게 찾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든다.



'기브 앤 테이크형'은 매치가 되자마자 부탁부터 한다.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기도 전에 나도 너에게 영어를 알려줄 테니 너도 한국어를 알려달라고 하거나 곧 한국 여행을 가게 되었으니 돈은 보내줄 테니까 특정 사이트의 티켓 예매 또는 물건 구입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친분이 있는 사이에서도 쉽게 부탁하기 어려운 내용을 앱을 통해 해결하려는 듯하다. 여행안내를 해달라고 하기도 한다. 언어 교환 목적이기 때문에 너희 나라 말을 알려달라는 당당한 태도는 부대끼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직접 만나서 밥을 먹고 친분을 이어가고 싶은 사람도 있으니 시간 되면 만나자는 말도 부담스러울 것은 없다. 그런데 무언가가 걸린다. 호의와 관심의 기저에 '내가 원하는 것을 해달라'는 무언의 압박이 있어서일까. 개인적으로 대하기 어려운 유형이다.



가장 흔하지 않은 경우가 '꼬박꼬박형'이다. 정말로 꼬박꼬박 답장을 해준다. 일이 바빠서 며칠 뒤에 보낸 문자에도 괜찮다며 답장을 보내온다. 정말 이야기 나누는 것에 초점을 맞춘 사람이구나 싶다. 나의 일상에 대해서도 다정하게 물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도 편안하게 들려준다. 이런 사람에게는 시키지 않아도 먼저 연락하고 싶고 대화를 하고 싶어진다. 좋아서 어쩔 줄 몰랐던 어제의 추억과 속상해서 푸념하고 싶은 오늘의 일과까지 미주알고주알 얘기하고 싶다. '꼬박꼬박형'은 실제 주변에서 그리고 스마트폰 세상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유형에 속한다.



지금껏 연락을 이어오는 친구들은 모두 '꼬박꼬박형'에 속했지만, 이 친구들에게도 연락이 무뎌지는 때는 존재하는 법이다. 사실은 한때 일주일 넘게 답장이 없던 친구들이었다. 일을 하다 보면 바빠져 답장이 늦을 수도 있다. 게다가 자주 만나는 사이도 아니라서 연락을 이어가긴 더더욱 어렵다. 서로의 나라에 방문해본 적도 있긴 하지만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대화 주고받기가 매끄럽게 이어졌던 친구들이기에, 이렇게 멀어지는 것이 아쉬워 문자를 보면 연락 달라고 SNS 아이디를 남겨 두었는데,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최소 한 번 이상 만나 밥도 먹고 놀러 가기도 했다. 그 친구들도 내가 남겨둔 메시지를 읽고만 말았다면 만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희미한 점선처럼 옅어졌던 사이가 명확한 실선으로 메워진 것을 보며 역시 인간관계에는 상호 간의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걸 확인한다. 어느 한쪽의 노력과 용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일방적인 관계는 아름답지 않다. 가상의 세계에서도 서로 한 걸음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다. 기꺼이 매칭이 되었고 대화도 잘 나누었는데, 어쩌다 보니 연락을 못 해서 멀어진 관계로 매듭짓기엔 아쉽다. 나도, 그리고 너도, 정말 친구가 되고 싶다면 말이다. 내 일상을 가득 메운 주변과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 성적 관계만을 원한다는 사람, 앱을 통해 결혼하고 싶다는 사람, 자기소개 한마디 없이 잘 나온 셀카 한 장 등록해둔 사람, 한국 유학 중이라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사람, 자신이 운영 중인 SNS 채널 홍보를 위해 계정을 등록한 사람까지. 스마트폰 세상도 요지경이다. 얼마 전 매칭이 된 '침묵형' 친구와는 대화가 결국 끊겼다. 가끔 이 요지경 속에서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모르는 단어의 의미를 물어볼 사람이 필요하기도 하고, 언젠가 방문하게 될 여행지에서 함께 밥을 먹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고, 좋아하는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과 순수하게 대화하고 싶다. 결국 혼자 있고 싶지 않다는 속마음을 대변하는 행동이 아닐까. 전부 누군가와 소통해야지만 이룰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갑자기 영화 <그녀> 속 안드로이드가 생각난다. 얼굴도 목소리도 알 수 없지만 똑같은 내 일상에 작은 활력을 선사하는 존재,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다들 그런 누군가를 발견하고 싶어서 앱 속 작은 세상까지 찾아온 게 아닐까.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 외로운 존재인가 보다.




일상에서 느낀 요즘의 생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블제이 스튜디오 https://blog.naver.com/kk646

프리랜서의 일상 @yeonbly_iam



친구와 도쿄에서 만나 나누었던 차 한 잔과 길거리 풍경.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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