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이 May 10. 2019

바꾸는 것과 바꾸지 않는 것, 어느 것이 용기일까

아는 언니가 퇴사를 했다. 오랜만에 안부를 물었다가 뜻밖의 소식에 적잖이 당황했다. 언니는 올해 초 두 번째 퇴사를 단행했고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한다.



언니와는 비슷한 시기에 새로운 업계에 뛰어들었다. 사는 곳은 달라도 종종 문자 메시지로 서로를 응원하고 성공하기를 바랐던 사이였기에 언니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어떤 계기와 사건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나는 언니가 어느 부분에서 괴로워하고 고민해 왔는지만큼은 공감할 수 있었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더불어 언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업무 능력이 무척 뛰어난 사람에 속했고, 그래서 나보다 취직도 훨씬 일찍 했으며, 마뜩잖은 현실 앞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업무에 임했던 사람이기에 더더욱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밀려 들어오는 불안감 속에서 쉬이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오히려 내게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는데... 나는 내가 먼저 퇴사를 해 봐서 퇴사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마음 같은 건 몰랐다. 형태와 크기는 조금씩 달랐을지 몰라도 같은 마음과 같은 소망과 같은 꿈을 가지고 같은 일을 하던 사람이 떠나가는 건 이렇게나 쓸쓸한 거구나, 싶었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용기인가, 아니면 바꾸지 않기로 생각하는 것이 용기인가. 주변의 여러 사람이 이직을 고려한다. 과연 내가 속한 업계에서 좀 더 버티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다른 업종에 도전해 새 길을 개척해야 할지 머리가 터질 정도로 생각한다. 모두가 '좁은 길'이라 일컫는 이곳에서 나는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을까. 불안한 미래 앞에서 먹고 살 궁리를 멈출 수 없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스스로에게 던져 봤을 만한 질문이다. 더 나은 지금을 위해 선택한 결과가 반드시 좋을 거라고 보장할 수 없기에 두렵고 막막하다. 혹자는 못다 이룬 꿈에 도전한다. 원대한 도전을 실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그 과정에서 소비해야 하는 노력과 시간과 감정 앞에 의연할 수 있을지 또한 미지수다. 그러나 이런 경우 도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크게 실망한다거나 불안해하는 일이 적지만, 그 도전이 '잘 되게' 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방향성을 잃기도 한다. 소망을 담은 노력인지 그저 치기 어린 욕심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도전에 성공하면 생각을 바꾼 것이 잘한 일이 되고, 실패하면 바꾸지 않는 것이 잘한 일이 된다.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뚝심 있게 지켜낸 꿈이 빛을 보기 시작한 순간, 버텨낸 세월이 미학이 되고, 만선을 향해 바다로 나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면 생각을 바꾸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



얼마 전에 엄마와 크게 다투었다. 서로 예민해져 있던 시기라 사소한 한마디에 전쟁이 시작됐다. 나중에 잘 마무리는 되었지만 그때 엄마가 던진 여러 말들이 할퀸 자국처럼 선명히 남아 있다. '네가 아주 별난 직업을 가진 덕분에' 힘들다고 했다. 지금까지 잘 버텨 왔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던 시간들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아 무척 가슴이 아팠다. 나흘 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갔다. 자정이 지나면 마법의 드레스를 벗어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저녁 시간엔 집으로 돌아가기 바빴는데, 그날은 시간을 내어 여러 이야기를 듣고 또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운이 좋았고 감사하게 먹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버티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문득 떠오른다. 엄마의 원망 섞인 한마디와 퇴사한 언니의 응원한다는 한마디가.



다른 일을 하기로 결심하든 지금에 머무르기로 결심하든, 무엇이 옳은 지는 어느 쪽에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달렸다.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간에 나의 선택을 믿고 지금 내디딜 수 있는 한 걸음을 걸어가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오늘도 노트북을 들고 집을 나선다. 시원한 아이스 커피 한 모금에 상쾌한 기분을 느낄 새도 없이, 새하얀 화면 위에서 쉴 새 없이 깜빡이는 커서가 뭐든 시작하라고 무언의 압박을 건넨다. 사다리 같은 인생길, 도착점부터 보지 말고 출발점을 바라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일상에서 느낀 요즘의 생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블제이 스튜디오 https://blog.naver.com/kk646

프리랜서의 일상 @yeonbly_iam


오늘 여러분의 '한 걸음'은 무엇인가요?


작가의 이전글 언어 교환 앱 사용 보고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