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부터 다이어트할 거야
늘 뱃살이 싫었다. 친구들이 날씬하다고 해 줘도 내가 보기엔 365일 한라산처럼 부풀어 있는 것이 내 뱃살이었다. 툭 하면 죄어 오는 청바지의 울부짖음을 외면하기 바빴고 책상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세가 흐트러지곤 했는데, 흐트러짐과 동시에 복부에서 느껴지는 푸근함이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 모른 척할 뿐이었다.
나는 객관적으로 보통 체형에 속한다. 옷도 매번 정 사이즈에 맞게 사고 몸이 무거워진다 싶으면 운동 나가기를 주저하지 않아서 보건복지부가 제시하는 표준 범위 체중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20년 여름, 이전과 다른 신체의 변화가 느껴졌다. 외식을 자주 한 것도 아니고 집에서 적당량의 밥과 반찬만 맛있게 먹었을 뿐인데 뱃살은 물론 체중이 3kg 이상 불어났고 어깨가 자주 뭉치는 데다 영양제로 피로를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살이 쪘어도 표준 체중에 속했지만 표준과 경도 비만의 경계에 걸치는 정도라 시무룩했고, 무엇보다 몸에 찌뿌듯한 기운이 가득했기에 더 이상 운동과 다이어트를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 지인 소개로 근처 복싱장에 회원 등록을 했다. 2주 정도 복싱장의 남다른 체력 운동을 힘겹게 따라가던 중 입구 앞에 있던 체성분 측정 기계가 눈에 띄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양말을 벗고 체중계에 올랐는데 이게 웬걸. 3kg 불어난 체중은 그렇다 쳐도, 기계 눈금이 체지방률 경도 비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나는 이미 체지방률만 봤을 때는 경도 비만인 것이었다. 시무룩한 마음 가득 안고 집에 돌아온 나는 이렇게 선언했다. "나 오늘부터 다이어트한다. 진짜야."
그런데 진짜로 다이어트를 한다는 건 뭘 하면 되는 걸까. 심지어 코로나19가 불러온 이동 제한 조치로 인해 나의 운동 계획은 언제든지 무산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운동과 식단 조절이 핵심일 텐데, 마침 2주 전부터 복싱을 배우고 있으니까 여기에 다이어트의 꽃이라는 식단 조절을 병행하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대개 식단 조절이라 하면 ‘먹을 것을 못 먹고 못 먹을 것을 먹는’ 아주 즐겁지 못한 행동이라 알려져 있지 않던가. 먹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 쉽게 포기하고 요요 현상이 찾아올 것 같아 맛있게 먹으면서 다이어트하는 방법이 있을지, 있다면 실제로 해낸 사람의 후기가 궁금해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몇 가지 키워드로 검색을 했더니 내 행동을 추적한 빅데이터가 개인 SNS 계정에 각종 광고를 띄우기 시작했는데, 쏟아지는 다이어트 보조제 광고 속에서 어느 한 여성의 인터뷰 동영상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영상 속 검은색 스툴에 앉은 그녀는 본인이 살을 빼서 얼마나 오래 유지하고 있는지와 다이어트 성공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 본인이 운영 중이라는 블로그까지 찾아가게 되었는데, 스크롤을 한참 내려보니 그녀의 살 빼기 비밀은 바로 '건강하게 먹기'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비타민, 무기질, 미네랄 등이 풍부한 음식을 끼니마다 챙겨 먹고 적당한 유산소와 근력 운동을 병행했으며 다이어트를 하려는 사람 또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너무 뻔한 말이라서 순간 김이 새긴 했지만, 사실 그 어떤 다이어트 보조제의 화려한 카피보다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그리하여 살을 빼기 위하여 건강하게 먹는 일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몇 년 전에 사 두었던 다이어트 요리책 몇 권 중에서 동영상 속 여성이 강조했던 영양소가 풍부한 재료를 사용하고 어렵지 않은 조리법을 제시한 한 권을 교과서로 택했다. 뱃살을 빼고 싶으면 이대로만 먹으라는 요리책의 자신감을 믿어 보기로 하고, 책에서 제시하는 요리를 직접 만들어 먹으며 나를 실험체로 쓰자고 결심했다. 요리법과 재료의 양은 지레짐작하지 않고 무조건 책을 따랐다. 처음에는 간이 심심하게 느껴졌고 밥의 양도 너무 적은 것 같아 감내할 수 있는 선에서 시작을 한 뒤 천천히 줄여가기로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야채 본연의 맛과 고소하게 톡톡 터지는 현미 밥알의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덧붙여서 밥을 만드는 수고로움은 직접 빵을 빚는 고단함으로까지 이어져 요새는 베이킹에도 빠져 산다). 게다가 최초 및 최후의 목적은 당연히 체중 감량이지만 직접 장을 봐서 한 끼를 만들고, 그 한 끼로부터 건강한 기운을 얻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나 그렇겠지만, 항상 안정적이지만은 않은 프리랜서의 일상에서 수고스럽게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과 어떻게든 완성해 낸 따뜻한 한 그릇은 내게 많은 것들을 가르쳤다. 그것들은 때론 위로였고 때론 믿음이었으며 때론 소망이었다. 어떤 때는 아쉬움과 불안함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열등감이나 절치부심은 아니었다.
그렇게 내게 힘을 준 음식 몇 가지를 공유하고 싶었다. 체중 감량을 위해 시작했으나 해 먹는 것의 즐거움에 사로잡힌 이 프로젝트는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이곳에서 소개하는 음식은 전부 직접 만들어 먹었고, 사 먹은 것도 한두 가지 있다. 만들면서 느낀 감정과 기분, 또 그 속에 녹아든 프리랜서 번역가의 즐거움과 고단함을 함께 적었다. 얼마나 감량에 성공했고 몸매가 달라졌는가 하는 이야기는 이미 많이 존재하는 데다가, 훨씬 더 훌륭한 비법서가 있으므로 나는 집에서 밥해 먹으며 건강한 마음과 몸을 얻게 되는 개인의 과정을 쓰자고 결심했다. 브런치에 업로드했던 <집에서 밥을 해 먹었더니 생긴 일>이라는 글이 사랑을 받았던 것도 큰 계기가 됐다. 체중 감량에 성공하고, 해 먹는 즐거움을 얻으면서, 자극적이고 칼로리 높은 음식이 먹고 싶지 않은 기적을 경험하고, 타인의 화려한 음식 사진을 보고 질투하지 않게 되면서, 내가 비교의식 속에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됐다는 내용을 압축한 글이었다. 많은 분들이 글에 관심을 가져 주신 것도 신기했고 나도 좀 더 촘촘하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종종 해 먹는 음식 중에 쇠고기 배추 덮밥이 있는데, 간이 심심해도 아삭거리는 배추 맛이 즐거워 자주 먹는다. 이 심심하고 담백한 기록들이 고소한 쇠고기와 짭조름한 간장 양념처럼 읽는 맛을 선사하기를, 부디 읽는 분의 머릿속에서 배추처럼 아삭히 씹히기를 바란다.
(이미지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30478819@N08/50420857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