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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Oct 22. 2021

가스 라이팅

- 동상처럼 무감각해질 때가 있다

지금 딸이 수험생이다. 돈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들어간다. 더 이상 대출을 받을 수 없을 만큼 돈을 다 끌어 썼다.


이 극한 상황에서 무책임하고, 무모하게도 일을 그만 둘 결심을 굳히게 됐다. 몇 달 전부터 고민하다가 결국 며칠 전에 결단을 내렸다.


아내한테는 아직 아무 말을 안 했다. 다음 달이 가을철 개편이다. 내가 그대로 계속 일할 걸로... 별일 없는 걸로... 아내는 그렇게 알고 있다.


내가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아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말을 할지 짐작이 된다.


"미쳤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어쩌면 이혼 얘기까지 꺼낼지 모른다. 그 정도로 아내가 지금 돈 때문에 힘든 상황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이라 의식을 잃고 쓰러지지 않는 게 다행이다.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을 굳힌 건............. PD가 결정하기 전에 내가 먼저 결정한 것뿐이다.


며칠 전, 그가 암시를 줬다. 이번 개편 때 나와 같이 계속 일을 할지, 말지 고민해본 후에 알려주겠다고... 


그에게 애원하면, 이번 개편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비굴하고, 애처로운 모습을 보여서 일을 계속하게 된다면, 이후부터는 고달픈 나날이 시작될 게 뻔하다.


그의 눈치를 보면서 온갖 비위를 다 맞춰야 될 테고, 사소한 불평도 다 들어줘야 한다. 가스 라이팅을 당하는 것이다.




그가 종종 나한테 "작가님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다.


사람 사이에서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힘들고, 아픈 건 연인한테 실연을 당했을 때와 사건, 사고에서 피해자가 됐을 때뿐이다.


그는 피해자가 아니고, 나는 가해자가 아니다. 차마 내색을 안 했을 뿐이지, 그동안 나도 힘들고, 지쳤다.


이 말을 그에게 하면 "역시 작가님이랑 저는 서로 너무 안 맞나 보네요"라고 할까 봐... 그 말은 곧 '계약 해지'를 의미하니까... 한 번도 입 밖으로 끄집어내지 않고, 속으로만 삭였다.


그에게 내가 '최악'이면 나에게도 그는 '최악'이 된다. 하지만 그도 나도 누군가한테는 괜찮은 사람일 수가 있기에 그를 저주하거나 미워하면서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다. 


이제 감정에 휘둘리기보다 감정을 다스리고 싶다. 격한 감정에 체해서 힘들어하고 싶지 않다.  



- "인생의 방향을 잘못 잡으면 방황한다. 그곳은 내가 가야 할 일터가 아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직진하지 말고, 잠시 멈춰서 밤하늘의 별자리를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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