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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and 쑥 Nov 07. 2017

관광을 가장한 1군 탐색(2)

# 지도부터 확인 

 우리가 방문한 1군관광지는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다.

#통일궁 #노트르담 대성당 #중앙우체국


     


편한 신발을 장착한 후 통일궁으로 이동했다. 통일궁은 프랑스 식민지 시기 총독부 건물이었는데, 남베트남 쿠데타 때 전투기 폭격으로 철거되었다가 1966년 남베트남 대통령궁으로 다시 지어졌다. 베트남 통일 이후에는 대통령 집무 공간과 관저를 그대로 보존하여 사용하고 있다. 통일궁 주변 보도는 잘 정비되어 있고, 인도 차도 구별 없이 종횡무진하는 오토바이가 없어, 여기저기 울려대는 오토바이 경적소리에 정신없었던 우리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안을 구경하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므로 우린 울타리 밖에서 구경만 했다. 그런데 남베트남의 대통령이 살았던 곳이면 우리나라 청와대 같은 덴데, 생각보다 심플하다. 장식을 배제하고 기능에 집중한 느낌이다. 사실 베트남의 공공건물들이 다 이런 특징을 갖고 있기도 하다. 얼핏 보이기에 관공서 같아 보이는 큰 건물들에 BI 같은 심벌이 있지도, 그렇다고 친절하게 영어를 병기해주지도 않아서 우리처럼 외국인 관광객들은 어떤 기능을 갖고 있는지 감을 잡기가 쉽지 않다. 호찌민이 국제적인 도시이긴 하지만 아직 개발도상국이라 이런 디테일은 떨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이것도 미 제국주의에 반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특징인가?                       

      

밖에서 만 본 통일궁 전경


통일궁과 도보로 5분 거리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다. 바로 옆에 중앙우체국이 위치하여 호찌민 관광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두 개의 첨탑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웅장한 규모의 이 건물은 모든 자재들을 프랑스에서 수입해 와서 지었다고 한다. 예배당 내부에서도 감상을 해보면 좋겠지만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다른 관광객들과 섞여 성당 전면에서 인증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몸뚱이가 비루하여 건진 사진은 몇 개 없다.  

     

오후 5시쯤 되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동남아의 전형적인 스콜이다. 바로 옆에 있는 중앙우체국(Saigon central postoffice)으로 들어갔다. 과거 철도역으로 쓰이던 건물을 지금은 중앙우체국으로 활용한다. 문화유산활용 측면에서 이 건물은 시사점이 많다. 보통 문화유산은 박물관의 형태로 원형을 보존하거나 호텔이나 미술관 등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데, 여긴 철도수송에서 우편으로 기능이 바뀌긴 했지만 행정 기능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한참을 머물렀다. 나는 싱가포르 친구들에게 엽서를 썼고, 신유는 여행기를 기록했다. 엽서 보내는 방법은 먼저 판매대에서 엽서를 고르고, 보낼 국가를 말한다. 직원이 말해준 해당 국가별 우표 가격을 지불 후 엽서를 써서 해당 창구(입구에서 바라봤을 때 오른쪽 첫 번째)에 가서 제출하면 끝! 방법이 너무 간단해서 잘 도착할지 걱정했는데 나중에 친구로부터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현재까지 운영되는 문화유산도 보고, 외국인으로서 베트남 행정서비스도 체험하는 좋은 경험이었다.                           


싱가포르에 잘 도착한 엽서




신유     


9년 전 호찌민에 여행 왔을 때 대통령궁에 들어갔었다. 실내에 있는 정원과 회의실, ‘아~ 대통령은 이렇게 좋은데 사는구나. 화장실도 깨끗하고 좋다.’ 그게 나의 인상이었다. 테라스에서 정원이 보이게 친구들과 사진을 찍은 기억이 난다. 입장권을 사려는데 쑥이 굳이 입장권을 사서까지 들어가 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나는 옛날에 들어가 봤으니 밖에서 사진만 찍기로 했다.      


벤탄 마켓도 그렇고 대통령궁까지 걸어오며 보았던 호찌민 현대미술관, 서양식 건축과 너무 상반된 외관이다. ‘흥, 프랑스! 흥, 미국! 흥, 러시아! 흥, 우리가 다 이길 거야!’라고 말하듯이 크고 반듯하고 딱딱하고 무표정하고 결연하다. 멀리서인데도 압도당한다. 대통령은 이렇게 웅장한 궁을 짓고 프랑스 식민지 건물이 내다보이는 이 곳에서 어떤 나라를 그렸을까? 얼마 사용하지도 못하고 관광지로 개방될 생각은 했을까?

     

대통령궁 앞에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았다. 대학생 때 캄보디아를 여행하고 호찌민에 왔을 때 나는 너무 좋았다. 일단 덜 습했고, 도로도 깔려 있었고, 시내 곳곳에 나무와 오픈스페이스가 있어 앉아 쉴 곳이 있는 점 때문이었다. 그래, 맞다. 여기 앉아서 오토바이 가는 거 구경하면서 한 참 놀았었다. 옛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리고 벤탄 마켓과 미소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서 무거워진 가방을 풀고 쉴 만도 했다.      


측면으로 보이는 노트르담 성당은 나를 더 빠른 걸음으로 걷게 한다. ‘우와~ 우와~’ 가톨릭 문화권에 살지 않아서인지 교회 건축물은 없던 신앙심도 생기게 한다. 나는 기독교인으로 천장이 높은 성당 내부보다는 목사님 뒤로 스크린이 설치된 예배당에 익숙하다. 동대문에 있는 김수근 씨가 설계한 교회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건물이 주는 울림과 신비감이 나를 압도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주일 예배 준비를 위한 오르간 연습을 텅 빈 예배당에 혼자 앉아 한참 듣고 있었다.       


아쉽게도 예배당 내부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다른 관광객들과 섞여 인증사진을 여러 각도에서 찍었다. 비오기 직전이라 회색 하늘에 더워서 얼굴은 시뻘겋게 변했지만 열심히 셀카, 셀카, 셀카를 찍었다.



#제국주의 도시계획의 흔적


동남아 국가를 상상하면 기본 구색만 갖춘 제국주의 흔적과 전통양식 건물, 그리고 복잡한 현대식 건물이 혼재된 모습이 떠오른다. 특히 제국주의가 도시계획의 틀을 갖추는데 큰 영향을 줬는데 호찌민 역시 그러하다. 호찌민은 처음 프랑스에 점령당했을 때 인구 3,000명 정도의 소도시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지역이 가진 지정학적 중요성은 매우 크다. 유럽과 인도, 중국과 일본을 잇는 해로상에 위치하면서도 육지로 인도차이나반도와 중국까지 연결될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메콩강 지류를 통해 수월하게 후배지의 농작물을 얻을 수 있는 이점 등-을 높이 평가해서 인도차이나에서 최초의 도시계획을 시행, 사이공(옛 호찌민 지명, 이하 사이공)을 50만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해항도시로 변신시켰다.      


참고:  식민도시 역사유적의 관광자원 활용 방안 연구 - 베트남 호찌민의 도시경관을 중심으로 이준태, 윤병국 한국 사진 지리 학회지 제27권 제1호(2017) pp.167-185


사이공 도시계획은 교차하는 두 개의 주도 로망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현재 대통령궁인 프랑스 총독부 건물과 사이공 동물원을 잇는 남북방향의 ‘노르돔 대로(Boulevard Nordom)'와 이를 교차해 도심과 항만을 잇는 동서방향의 ’ 카티나 거리(Rue Cartinat)‘가 그것이다. 그리고 주요 가로의 시작과 끝나는 지점에 도시의 주요 시설인 상징적 건물들을 배치해서 다수의 베트남인들에게 프랑스 제국의 힘을 과시하는 장치 역할을 했다. 카티나 거리는 노트르담 성당으로 시작해서 프랑스인들의 고급 숙박시설인 컨티넨탈 호텔(Hotel Continental Saigon),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오페라하우스(Saigon Opera House) 등이 이어지고, 사이공강에 다다라서는 마제스틱 호텔(Majestic Hotel)로 마무리되며 당시 사이공 시민들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주는 시각 장치들이 곳곳에 심겨있다. 이 건물들은 현재 동커이 거리(Dong Khoi)로 이름이 바뀐 도심 중심상업지에서도 본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1896년도의 사이공


지도 출처 : 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Maps_of_Ho_Chi_Minh_City


한편 동커이거리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호찌민 시청(호찌민시 인민위원회)과 사이공강을 있는 ‘응우엔 후에 대로(Nguyen Hue Boulevard)’가 있다. 이 곳은 원래 상선과 군영 선박의 도심 수로 역할을 한 조 바이 운하(Cho Vai Canal)였다. 운하 옆에는 샤 르네 르 거리(Rue Charner)와 Rigault de Genouilly 거리라는 두 개의 도로가 있어서 상인들이 이 운하를 사용해 중앙시장(옛 벤탄시장- 쟈딘 성의 소실로 1912년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의 제품을 날랐다. 프랑스인들은 1887년에 오염 문제로 이 운하를 메우고 원래 있던 Charner거리와 Rigault거리를 합쳐 ‘샤 르네 르 대로(Charner Boulevard)'를 만들었는데, 식민지 독립 후 거리 명칭을 응우엔 후에 황제 이름을 따서 바꿨다. 호찌민시는 2015년 원래 중앙 차로와 양측 보행자 도로였던 응후엔대로를 호찌민시 최초의 보행자 전용도로로 지정했다. 보행자 전용도로로 조성된 후 야간조명과 분수, 스포츠 활동 및 거리공연 등 각종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어 특히 밤에 각광받는 데이트 장소가 되었다. 우리도 여기를 꼭 가보고 싶었으나, 배가 고파서 맛집을 찾아가느라 코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배고픔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다.


#콴94 #게맛을 알아?


쑥의 선배가 소개해준 호찌민 맛집 리스트 중 우리에게 선택된 게요리집을 위해 호찌민 밤거리를 30분 넘게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잘 나가는 맛집답게 손님들이 가득했고, 직원들은 빠릿빠릿 일을 잘했으며 친절했다.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파이팅 넘치는 직원들
신선한 야채가 풍성하게 제공된다(리필 추가요금 X) 
쑥 선배 추천으로 간 '콴94' 주문 요리


게살 볶음면과 오른쪽 사진의 크랩 요리를 주문했다. 게 맛은 흡사 싱가포르의 칠리크랩과 비슷했으나 양이 너무 적은 것이 흠이다. 배가 차지 않아한 테이블 당 꼭 주문하는 게살 롤(왼쪽 사진)을 추가했다. 이제까지 먹었던 분짜와는 차원이 다른 맛으로, 너무 맛있어서 남은 건 포장까지 했다. 쑥 선배 얘기로는 한국에서 손님들이 오면 한 번씩 데리고 가는 식당이라고 했는데 정말 기억에 남는 맛이었다. 콴 94는 베트남 여행의 처음이자 마지막 맛집 탐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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