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으로 행복을 전하다

광주의 히어로 김윤경 '해뜨는 식당' 대표

by 포그니

밥 한끼 먹기 참 힘든 세상이다. 한번 뛴 물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되기는커녕 오히려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고 오른다. 불과 5~6년전까지만 해도 5000~6000원이면 김치찌개든 짜장면이든 거뜬히 해결했다. 김밥도 2000원이면 즐길 수 있었다. 지금은 턱도 없는 얘기다. 세종대왕을 모시고 나가도 퇴계 이황 몇 분이 따라 붙어야 겨우 밥을 입에 넣을 수 있다. 이쯤되니 식사비를 아끼겠다고 피난길에 나선 직장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광화문에서 파고다공원으로, 서대문에서 신촌으로 '점심원정대'가 비장한 각오를 하고 길을 떠난다. 마치 절대반지를 찾아 떠나는 '반지원정대'처럼.

나도 한 식당에 가기 위해 어스름한 새벽에 집을 나서 광주행 SRT에 몸을 실었다. 얼마나 소문난 맛집이길래 광주까지 갔나 생각하면 포인트를 잘못 짚은 것이다. 요즘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맛집을 찾아 떠난 게 아니라 전국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다. 인터뷰 약속은 1시. 하지만 1시간 일찍 도착해 주변을 돌아봤다. 주변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냥 여느 시장통에 위치한 밥집이었다. 손님인 척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메뉴는? 없다. 그냥 사장님이 주는대로 먹으면 된다. "어쩌다 보니 전부 풀떼기 뿐이네요. 어쩌나." 사장님이 잔뜩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밥상을 내왔다. 어린이 식판을 연상케 하는 그릇에 내놓은 반찬을 보니 오이짱아찌와 무생채, 볶음김치 세 종류. 여기에 시래기국 포함 1식 1국 3찬이었다. 아주 맛있지는 않았지만 무난한 편이었다. 반찬이 모자라면 손님이 직접 리필해야 한다. 솔직히 일반 식당에서 이렇게 내놓으면 불평이 쏟아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가격을 보면 생각이 바뀐다. 단돈 1000원. 식당은 물론이거니와 구멍가게에 가도 무엇 하나 제대로 살 수 없는 가격이지만 여기서는 점심의 배고품을 해결할 수 있다. 꼭 손님만 상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어느 아주머니가 들어오더니 "밥 좀 줘" 한다. 알고 보니 다른 가게에서 온 사장님이었다. 손님이 뜸해서일까. 비닐 봉지에 밥을 하나 가득 담아 건네준다. "이정도면 돼요?" "그럼. 고마워." 시장안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식당의 영업시간은 11시 30분부터 2시까지. 밥값은 셀프다. 식당 한켠에 있는 현금통에 알아서 집어 넣으면 된다. 먼저 와서 식사를 하시던 어르신 두 분도 '식당의 법'을 따랐다. 사실 내도 그만 안내도 그만이다. 사장님은 밥값을 내는지 안내는지 쳐다보지도 않는다. 식대를 내지 않고 그냥 나가도 모를 판이다. 1만원짜리를 꺼내 통에 넣었다. 생색이라도 낼 심산이었을터다. 하지만 사장님은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 세종대왕을 쥔 손이 무색할 따름이다. '먹튀 손님'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 식당마다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동화 속 밥집이라고나 할까.

1000원식당3.jpg 광주 대인시장 내 일명 1000원 식당으로 불리는 '해뜨는 식당'의 식단 구성. 시래기국은 별다를 게 없지만 슴슴한게 밥과 같이 먹기 딱 좋다.



이 식당은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시장의 명물이자 전국구적 명성을 가진 곳이다. 매스컴도 많이 탔다. 대표인 김윤경씨는 중앙과 지방 일간지는 물론 '유퀴즈(온더블록)'부터 '썰전 라이브' 등 방송까지 두루 섭렵했다. 식당의 정식 이름은 '해뜨는 식당'.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1000원 식당'으로 통한다.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광주에서 그냥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된다. 광주송정역에서 내렸을 때다. "해뜨는 식당을 찾는데 어떻게 가면 되나요" 마침 길을 지나가는 30대쯤 돼 보이는 남성에게 물어보자 "잘 모르겠는데요" 한다. 유명한 식당이라고 했는데... 모를 리가 없을텐데 ... 다시 한번 물어봤다. "그럼 1000원 식당이 어딘지 아시나요" 비로소 대답이 돌아왔다. "아 거기요. 여기서 좀 먼데. 택시를 타고 가시는 게 가장 빨라요. 운전기사에게 물어보면 다 알거에요." 이쯤되면 1000원의 위력을 실감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왜 하필 1000원일까. 솔직히 그때는 미처 물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은 엉뚱한 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청년들을 위한 2000원짜리 점심을 파는 식당 주인의 말이다. "돈을 안 받을 수도 있어요. 솔직히 2000원으로는 아무 보탬도 안돼요. 하지만 공짜로 얻어먹는 것과 돈을 내고 먹는 것은 의미가 전혀 다르죠. 무료로 밥을 주면 얻어 먹는다는 생각에 자존감에 상처가 나기 쉬워요. 돈을 내는 것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그에 맞는 대우를 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되죠. 비싸냐 싸냐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1000원 식당도 마찬가지일 터. 손님의 감정까지 세심히 살피는 배려의 식당인 셈이다.

1000원 식당을 처음 차린 주인공은 지금 김 대표의 어머니 김선자씨였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들을 모아놓고 창업(?)을 선언하셨다고 한다.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밥이나 이웃들과 같이 먹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형제들 모두가 말렸어요. 평생 밖에서 일하시던 분이 갑자기 식당을 한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죠. 용돈 받아도 충분한데 왜 일을 벌려 고생하려고 하시냐 이런 반응들이었어요. 그런데도 고집을 꺾지 않으셨죠. 오차피 밥을 할 때 숟가락 하나 더 얹고 1000원씩 받으면 서로 좋지 않겠냐는 판단이셨어요. 사실 지금도 이해가 안돼요." 2015년 어머니가 하늘로 떠난 후 김 사장이 대신 물려받았다. 누군가는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은 없었다. 식당을 맡기 전까지 집에서 부엌에 들어가본 적이 거의 없었다. 어머니는 사고만 치니 들어가지 말라고 했단다. 언니, 오빠도 출입금지 명령을 내렸다. 밥도 국도 만들어본 적이 쌩초보가 식당을 하게 됐으니 얼마나 걱정이 됐을까. 결국 처음에는 돈을 주고 외부 일손을 빌리기로 했다. 주방일을 돕는 이모 두 명을 썼다. 아무리 월급을 적게 줘도 150만원씩 300만원은 필요했다. 밥값 1000원을 받으면서 인건비로만 그만큼이 나간다? 도무지 계산이 서질 않았다. 주방일을 하시는 이모들도 김 대표 수중에 돈이 없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 "월급을 줄 때마다 그분들이 짠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3년 후 아주머니들이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인건비 때문에 속으로 끙끙 앓지 말고 직접 만들어 부담을 덜어 보라는 무언의 배려였다. 식당은 이제 오롯이 김 사장 혼자만의 몫이 됐다. "그래도 마음은 편해요. 월급 나갈 일은 없으니." 대신 몸이 고됐다. 일을 하다 나갔다가도 점심 시간이 되면 돌아와야 했다. 회의 도중에, 교육을 하다 말고 식당으로 뛰어온 게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식당이 집이 됐다. 살림살이도 대부분 여기 있다. 집안에 있던 밥솥과 커피포트, 믹서기 모두 식당 부엌에 자리잡고 있다. 이제 집에 남은 것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집에 가면 휑하죠. 그냥 잠만 자고 나올 뿐이에요." 김 대표에게는 돈 만큼이나 큰 걱정거리가 있다. 바로 반찬 준비다. 얼마전 아내가 말한 적이 있다. "집에 있으면서 하는 가장 큰 걱정 중 하나가 반찬 걱정"이라고. 김 대표도 똑같다. 손님에게 메일 똑같은 반찬을 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무슨 반찬을 해야 하나 매일 고민을 해요. 매일 풀때기만 놓을 수 없으니 고기 반찬 하나라도 내놓으려고 하지만 그게 쉽지를 않네요. 그래도 지금까지 반찬투정을 하는 손님은 없었으니 고마울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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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벌었을까. 애당초 불가능한 얘기다. 일반 식당에선 공깃밥 한 그릇에 시래기국 하나만 해도 원가가 1000원 정도가 된다. 인건비는 꿈도 못꾼다. 게다가 공과금을 포함한 가게 운영비까지 따지면 도대체 얼마나 손해를 보고 장사를 하는 것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적자가 얼마나 됐을까. 조심스럽게 물어봤더니 딱 한마디로 돌아왔다. "엄청나죠." 더 이상 물어봐야 뭐할까. 그래도 용기를 내 또 물어본다. "대략이라도..." 김 대표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한달에 들어오는 돈은 100만~200만원 정도에요. 그런데 쌀 사고 뭐 사고 하면 한달에 200만~300만원씩 마이너스가 나요. 지금까지 수천만 원은 꼬나박았을 겁니다." 식당을 유지하기 위해 집 보증금도 털었다. 은행에서 빚도 졌다. 그래도 모자라니 이번에는 오빠가 빌려줬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식당을 지키기 위해 직접 몸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택했다. 투잡은 기본이고 쓰리잡(three-job)도 뛰었다. 저녁에 친구가 하는 만두가게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심야에는 편의점 알바로 변신했다. 지금은 보험설계사 일을 하지만 설 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편의점에서 바코드를 찍는다.

김 대표가 세상 물정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이렇게까지 고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해뜨는 식당은 개인사업자로 등록이 돼 있다. 영리법인이라는 이야기다. 세제 혜택은 물론 정부로부터 받는 공식적인 지원금은 일체 없다. 경기도 성남 '안나의 집'이나 이문수 신부가 서울 정릉에서 운영하는 '청년 문간'과 같은 곳들이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돼 있어 정부나 지자체 혹은 종교단체의 도움을 받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만약 1000원 식당이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돼 있었다면 이처럼 죽도록 고생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그때는 그런 것 몰랐어요. 그냥 식당을 하니까 사업자로 등록해야 하나보다 싶었죠." 다른 사람 같았으면 일찌감치 식당 문을 닫았을 지 모른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식당을 찾는 어르신들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을 찾는 손님의 상당수는 자식 손주와 떨어져 혼자 사는 고령층이다. 쓸쓸하고 외롭우며 빈털털이인 노인들에게 1000원 식당은 서로의 안부를 살피는 건강센터이자 친구들을 만들 수 있는 놀이터다. 고성에 사는 할머니들까지 병원에 갈 일이 있으면 광주에 들렸다가 식사를 하고 가시는 이유다. 집이 없어 여관에서 지내는 분들도 이곳을 찾는다. 여관에서는 불을 피우지 못해 밥을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 매일 이 식당을 찾는 이도 여럿이다. 이런 분들은 식당 문을 닫으면 하루 아침에 끼니를 해결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사명감 때문에 이일을 하는 건 아니에요. 하루에 적게는 80명, 많게는 120명이나 되는 어르신들이 이곳을 찾는데 내가 그만두면 갈 곳을 잃게 되잖아요. 어떨 수 없이 문을 열어야 해요."

1000원 식당1.jpg 김 대표가 보험설계사 일을 나가기 위해 인터뷰를 하다 말고 설겆이를 하고 있다.

김 대표는 포기한 게 많다. 그녀는 40세가 넘었지만 아직 '솔로'다. 결혼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좋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세상 인심은 그게 아니었다. "선을 보면 상대방이 꼭 물어봐요. '지금 하는 일 언제까지 할 거냐'고. 돈도 안되는 것을 왜 하고 있냐는 뜻이죠. 나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죠. 그러면 다음이 없어요." 남들처럼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오손도손 사는 것은 김 대표에게 사치였던 모양이다. 이제 결혼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인연이 있으면 만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그토록 원하는 승진도 사양했다. 한번은 회사에서 팀장으로의 승진을 제안했지만 고심 끝에 거절했다. “하루는 보험사 지점장이 몸도 아픈데 팀장으로 나가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더라고요. 승진, 하고 싶었죠. 월급도 좀 나아질테고, 하지만 시간을 많이 빼앗기잖아요. 수락하기 힘들었어요."

그럼에도 김 대표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도움 때문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이젠 접어야겠다고 생각할 때면 꼭 누군가가 항상 채워준다고 했다. 8년전쯤이었나. 건물주에게서 건물이 팔렸다고 연락이 왔다. 4월까지는 나가줘야한다고. 이젠 식당도 끝이구나 생각했다. 그때 회사 임원 한분이 "장사는 잘하고 있냐"고 묻더란다. 잘 모르겠다고 답했더니 그 임원이 옆에 빈 가게가 있는데 거기서 하면 어떻겠냐, 리모델링비를 한번 뽑아보라고 했다. 견적을 뽑았더니 약 1200만원 정도 들 것 같았다. 견적서를 보냈더니 간부가 회사에 보고했고 전액 지원을 해주겠다는 승인이 떨어졌다. 기적은 계속 일어났다. 한 대기업에서 500만원을 지원해 냉장고를 샀고, 코로나에 걸려 몸이 아플 때는 광주시와 동구청장이 쌀 100가마니를 연결해줬다. 각종 후원도 잇따랐다. 우리 얘기를 들은 사람들이 쌀과 같은 것들을 계속 보내줬다. 실제로 식당 한켠에는 쌀가마니기 수북히 쌓여있었다. 도시가스비를 한 공기업에서 수년간 대신 해결해줬다. 인터뷰 도중 식당 정리를 위해 일어서며 덧붙인다. "이러니 어떻게 식당을 그만둘 수 있겠어요. 열심히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