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히어로도 못이긴 97세 할아버지

만능엔터테이너 조용서 어르신

by 포그니

뚜르르~뚜르르~뚜르르~. 휴대폰 너머로 신호음이 계속 갔다. 3초, 5초, 10초, 20초... 결국 휴대폰 주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났다. '혹시'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처음 만났을 94세였고 지금 3년이 지났으니 두려운 생각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연세다. 다음날 또 전화를 걸었고 그다음 날에도 계속 휴대폰 숫자판을 눌렀다. 일주일쯤 지났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라는 심정으로 손가락을 놀렸다. 3초쯤 지났나. "여보세요." 이 한마디가 이토록 반가울 수가 있을까. 갑자기 맥이 탁 풀렸다. 괜히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는 후회도 밀려왔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었다. "지금은 몸을 잘 움직일 수 없어서 대부분 집에 있어요." 그래도 감사했다.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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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일산에 계시는 조용서 어르신은 초고령사회를 살아가는 노년층의 모습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분이다. 올해 나이 97세. 처음 만났을 때는 7살 연하인 할머니와 함께 지냈지만 지난해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혼자가 됐다. 사실 할머니는 남에게 정이 많았지만 남편에게도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 아파트에서 만나 봤을 때의 일이다. 인사를 마친 할머니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손님이 왔는데 과일이라도 내와야죠." 그때 어르신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입을 꾹 닫고 뭔가 할 말이 있어도 안 하겠다는 표정, 그 자체였다. 마치 우리 집을 보는 듯한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하긴 결혼의 인연을 맺은 후 10년만 지나면 남편이 '웬수'로 변하는데 60년을 넘게 함께 지냈는데 오죽할까.


나는야 할아버지 마술사, 영화감독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90세가 넘으면 노인복지센터에서도 어른 대접을 받는 나이다. 기력이 쇠해 밖으로 거동하기조차 힘들다. 노인복지센터에 나가거나 파고다공원에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것조차 버겁다. 조 어르신은 예외다. 사실 할아버지는 고양시가 자랑하는 스타 할아버지다. 그림부터 서예, 사진 찍기 등 못하는 것이 없다.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아이언맨이나 울버맨, 블랙팬서 등 '마블 '의 히어로들을 능가하는 영웅이다. 마블의 히어로들은 영화 속에서만 초능력을 부리지만, 어르신은 눈앞에서 마술을 부린다. 이제는 몸이 불편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2~3년 전까지만 해도 무대 위에서 펄펄 날랐다. 지팡이 하나와 모자 하나만 있으면 비둘기가 날아오르고 조그만 동물들이 모자에서 쏟아져 나온다. 아이들 등 뒤에서 갑자기 카드가 나오기도 하고 방금 전까지 없었던 동전이 어느 순간 손안에 들어오기도 한다. 이렇게 그가 할 수 있는 마술은 40~50가지가 넘는다. 중고등학생 이상만 돼도 시시하다며 무시할 수 있지만 유치원생에겐 이보다 더 신기한 것이 있을까. 아이들이 고사리손을 흔들며 보내는 함성은 어르신의 마술을 더 강력하게 만드는 영양제였다. 그런 모습을 잊지 못해 지금도 일산병원 어린이 환자들 앞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마술 공연을 펼치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몸이 가볍고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됩니다. 어린이들이야말로 삶의 보람이자 기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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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할아버지가 하는 일은 이것만이 아니다. 영화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다. 실력은 봉준호 감독에 비할 바 아니지만 열정만큼은 그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변변한 카메라나 전문적인 조명, 음향장비 없이 스마트폰 하나로만 찍은 작품이지만 노인영화계에서는 이미 중견 감독으로 평가할 만큼 다수의 작품을 만들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노 감독의 정열을 담은 10분짜리 단편 '집념(2012년)' 노년에 즐거움을 찾기 위해 석가탄신일에 조계사를 찾고 법주사 템플스테이를 다녀온 이야기 등을 묶은 '시간이 없다(2014년)'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일본어 통역사 활동을 할 때의 모습과 같이 일하던 노인들의 일상을 담은 '어르신 통역사(2018년)' 코로나 팬데믹 당시 어르신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노인들의 애환을 그린 '94세 코로나 일기(2021년)' 등도 조 어르신의 손에서 탄생했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2013년 제작한 '할아버지 마술사'는 고양스마트영화제에서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 주었고, '94세 코로나 일기'는 2022년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행복해요


영화나 마술이나 조 어르신이 젊을 때부터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런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 남들 같으면 복지센터에 가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며 시간을 보낼 나이에 그는 또 다른 열정을 불사르고 있는 것이다. 고양실버인력뱅크와 서울노인복지센터가 그 시작이었다. 인력뱅크에서는 마술을 배운 뒤 '꿈전파 문화공연단 마술팀' 팀원으로 뛰어다녔고 영화교육은 복지센터에서 받았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활동하다 보니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여러 가지 활동을 하다 보니 잡념이 없어지더라고요. 칭찬을 받으면서 자부심도 느껴지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즐겁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군요." 그가 입만 열면 '행복하다"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물론 계기가 있었다. 서울노인복지센터에 다닐 때의 일이었다. 당시 충북 보은 법주사로 템플스테이를 떠난 적이 있었다. 그때 희유 스님이라는 분의 말 한마디가 그의 뇌리에 박혔다. "스님이 돈 걱정, 자식 걱정 말고 오늘 하루를 즐기라고,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말이 생활 지침이 됐고 지금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조 어르신의 낙천적 사고를 보다 보면 어렸을 때 유복했거나 최소한 별 다른 고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완벽한 오해다. 일제강점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으며 치열하게 보낸 역사의 산증인이다. 어르신은 1928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북 최고 명문고인 평양고보를 나왔다. 상황이 바뀌지만 않았다면 서울의 경성대(지금의 서울대)로 진학해 지금과는 전혀 딴 세상에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의 패망과 남북 분단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김일성 정권이 들어선 북한에서 인텔리 계층인 그가 설 땅은 좁고 좁았다. 결국 1951년 1.4 후퇴 때 남으로 넘어왔다.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있었지만 난리통에 헤어져 함께 오지 못했다. 모든 것을 북에 두고 혈혈단신으로 왔으니 무일푼일 수밖에 없을 터. 먹고살 일이 아득했다. 결국 택한 곳이 군대였다. "살려면 뭐든 해야 했습니다. 군에 입대를 했죠. 그렇게 5년을 지냈습니다. 지금은 참전용사라 호국원에 갈 수도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국가 유공자로서 대우를 받는구나 하며 보람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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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제대하고 나니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일단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했다. 쉽지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돼지도 키웠고 자동차 부품 가게를 하는 등 치열하게 살았지만 삶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40세가 됐다. 그동안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가정도 꾸렸다. 가장이라는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어떻게든 가정을 책임져야 했다. 그때 베트남 전쟁이 터졌다. 미국은 물론 한국도 파병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총을 들고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군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후방 보급 역시 필요하다. 조 할아버지에게는 기회였다. 대한통운에 취직해 베트남 다낭에서 미군 군수물자를 하역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3년을 지낸 후 귀국하니 얼마 안돼 중동 건설붐이 일었다. 다시 해외로 나갔다. 이번에는 사우디아라비아였다. 뜨거운 열사의 나라에서 설현장을 누비기를 7년. 정년이 다가왔고 그제야 그의 인생이 되었던 현장을 떠났다. "먹고살기 위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1차 경제부흥을 일으킨 일꾼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롤 모델은 송해 선생님과 김형석 교수


조 어르신도 본받고 싶은 롤 모델이 있다. "가장 존경하는 분이 두 분 계세요. 한분은 송해 선생님이고 다른 한분은 김형석 교수입니다. 100세가 넘도록 왕성한 활동을 하신 것도 그것에 머물지 않고 남들에게 존경받고 있잖아요. 그냥 나이만 든 게 아니죠. 저도 그렇게 되고 싶은데 잘 될는지는 모르겠네요." 실제로 그는 두 선생님을 본받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일반병원을 찾아 어린이 환자들 앞에서 마술 공연을 펼치는 것도, 복지센터를 찾아 그림이나 음악공부를 하는 것도 송해, 김형석 교수를 조금이나마 따라가기 위함이다.

할아버지에게 가장 행복한 때는 언제였을까. 대답은 금방 돌아왔다. '바로 지금.' 돈도, 명예도, 애정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과 살을 맞대고 부대끼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 자체가 좋았다. "내가 살아있고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보다 행복한 게 없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이나마 천사 같은 애들을 볼 수 있는 것도 행복이지요. 이 세상은 좋은 곳입니다. 하루하루 저에게 행복을 선물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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