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학자 정부희 박사
경기도 양평에 있는 연구소라라길래 편한 마음으로 떠났다. 지방이긴 하지만 집에서 그리 멀지 않고 우리나라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인 북한강변을 띠리 가며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는 호사도 누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양평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 모든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6번 국도를 따라가다 44번 국도로 갈아탄 후 왼쪽으로 꺾어지니 그때부터 산길이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이번에는 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만한 고갯길이 나왔다. 이름도 여물고갯길이다. 도무지 연구소가 있을만한 곳이 아니었다. '여기가 맞는 거야? 도대체 어디야' 이곳저곳을 헤맨 끝에 어느 조그만 정원 앞에 도착했다. 내비게이션에는 이곳이 목적지라고 했다. 정말? 불신 반 궁금증 반의 심경으로 차에서 내리니 조그만 집에 팻말이 보인다. '우리곤충연구소'. 그제야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곤충연구소 앞에는 나무와 풀, 꽃들이 심어진 900평 규모의 정원이 있다. 일반인의 눈에는 평범해 보이는 이 정원은 사실 전혀 평범하지 않다. 보통 사람이 보고 쉬며 즐기기 위해 정원을 조성하지만 이곳의 나무와 풀, 꽃들은 모두 곤충을 위한 것들이다. 이쯤 되니 왜 연구소가 이 두메산골에 있는지 알 것 같다. 곤충들이 사람들의 방해받지 않고 올 수 있는 곳, 자신들이 살던 곳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곳, 먹을 것이 많은 곳이었던 것이다. 무슨 곤충이 있나 눈을 부릅뜨고 찾았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그때 등 뒤에서 "안녕하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어린이를 닮은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의 파브르'로 불리는 곤충학자 정부희 박사였다.
정 박사가 곤충 정원을 만든 이유는 단순했다. 자연 상태에서 곤충을 보다 잘 관찰하기 위해서다. "요즘은 도시나 농촌이나 곤충을 연구하기 힘들어요. 개발이 많이 되고 인가가 늘어나면서 곤충들이 불빛을 쫓아 그리로 날아가죠. 그리고 거기서 죽어요. 연구소나 박물관에서 표본을 찾으려 해도 개체수가 너무 적어요. 연구하는 사람이 없어서죠. 할 수 없이 내가 직접 곤충들이 찾아오는 곳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죠." 쉽지는 않았다. 여자 혼자의 몸으로 흙을 일구고 돌을 파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철로 만든 호미를 세 개나 부러뜨렸다. 그렇게 정원을 조성하자 곤충들이 찾아왔다. 3년 전까지 약 300여 종이 먹잇감을 찾기 위해 조그만 몸을 이곳으로 옮겼다.
이 중에서도 정 박사가 특히 관심을 가지는 것은 버섯에 사는 곤충들, 특히 딱정벌레와 모습이 비슷한 애기버섯벌레과(CIIDAE)다. 크기는 1~1.5 밀리미터 정도밖에 안된다. 버섯에서 자라는 만큼 연구를 하려면 산속 깊은 곳을 들어가거나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어둡고 습기 찬 곳을 뒤져야 한다. 경기도 동구릉의 오래되고 통제된 산길, 제주 곶자왈 같은 곳에 가야 볼 수 있는 그런 곤충이다. 버섯만 있다고 다 곤충들이 사는 것은 아니다. "버섯 100개를 따오면 그중 90개는 필요 없는 것이에요. 그만큼 관찰이 힘들다고 관련 연구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2024년 정 박사는 애기버섯벌레과 중 30여 종을 정리하고 조만간 학술지에 그 결과물을 선보일 예정이다. "(애기버섯벌레과를 국내에서 처음 정리한 것이) 내가 제일 잘한 일"이라는 자부심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김춘수 시인의 '꽃' 중에서)'
보통 여성들은 곤충을 끔찍이 싫어한다. 단순히 싫어하는 정도가 나이다. 어쩌다 카페 같은 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면 십중팔구 원인은 벌레다. 곤충학자인 정 박사는 징그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을까. 넌지시 물어봤다. 대답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어요. 아마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 고향은 집들이 띄엄띄엄 있는 산골이었어요. 전기도 중학교 2학년 때 들어왔죠. 저녁이 되면 마당 앞 평상에 남포동을 달고 살았어요. 그러면 벌레들이 옵니다. 우리는 '또 오네' 하고 말죠. 징그럽고 말고 할 게 없어요. 우리에게 곤충은 그냥 공기와 같은 존재였죠." 숨 쉬는 것과 같은 존재, 곤충에 대한 정 박사의 애정은 이렇게 시작된 듯 보였다.
정 박사가 처음부터 곤충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길이나 산에 핀 야생화가 너무 예뻐서 푹 빠져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야생화를 찾는 자그마한 동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니 언제나 한 곤충만이 같은 꽃만 찾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신기했고 나중엔 궁금증이 폭발했다. 자꾸 눈에 담아보니 그들도 예쁘게 보였다. 사람은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초인간적 몸 색깔이 그랬고 더듬이와 다리를 흔드는 것도 마치 어린아이를 보는 듯했다. '얘들은 도대체 누구지, 왜 다른 곤충들은 없고 얘들만 찾아오지.' 정 박사는 이 낯선 방문자들이 누구인지 미친 듯이 알고 싶었다. "아이들이 너무 예뻤어요. 더듬이 꿈틀 거리는 것도 그렇고 조그만 애가 어떻게 저렇게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가 30대 중반쯤이었을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저 아이들 이름을 불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곤충들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이것은 그가 곤충학자의 길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아이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자료가 별로 없었다. 지금이야 서점에 가면 곤충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풀이한 대중을 위한 책들이 진열대에 널려 있지만 30년 전까지만 해도 곤충학이란 영역은 사하라 사막보다 더 삭막한 곳이었다. 지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일본에서 곤충도감을 사 오는 등 별의별 짓을 다했지만 갈증은 더 심해져만 갔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너무도 많은데 책이나 도감만으로 이러한 열정을 감당하지 못했다. 나이 40세가 되던 해 정 박사는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남들은 먹고 사느라 어릴 적 꾸었던 꿈을 까맣게 잊고 사는 시기지만 나이가 곤충학자를 향한 그의 열정을 식히지는 못했다. 늦깎이 곤충학자, 유리천장을 깬 곤충학자라는 칭호가 뒤이어 따라왔다.
인터뷰 도중 거미 한 마리가 탁자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손을 들었다. 내리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정 박사 앞에서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만약 혼자 있었다면 그 자그마한 존재는 유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살고 싶었을까. 탁자 사이의 틈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내 의도를 눈치챘는지 정 박사가 거미를 손 위에 올려놓더니 다른 곳으로 옮긴다. "깡총개미예요. 아마 길을 잘못 들었나 봅니다."
그에게 해충이란 없다. 해충, 익충은 그저 인간의 기준에서 판단한 편견일 뿐이다. 굳이 해충이 있다면 말벌이나 독나방 정도다. 그나마도 일부러 인간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그저 길을 잘못 들었거나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고 느꼈을 때만 사람에게 달려든다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기에 인간이 '곤충들은 사람에게 해를 입힌다'라고 오해를 한다.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와 달리 생겼다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저 발이 많이 달렸고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다. 그러고도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이제 안전해졌다'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곤충이 스스로 진화하면서 수 억년 간 지구를 지켜왔던 존재임은 이미 망각의 대상이 됐다. "곤충은 한 생명일 뿐입니다. 인간 이전부터 그들은 지구생활에 잘 적응해 살아남았습니다. 몸 체계는 지구의 어떤 변화에도 견딜 수 있도록 진화돼 왔죠. 그것을 보고 지구 역사에서 한참 후배인 사람들이 징그럽다, 무섭다 합니다."
인간이 곤충을 싫어하는 데는 징그러운 것 말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식량을 둘러싼 인간과 곤충 간 경쟁이다. 뉴스나 영화를 보면 가끔 메뚜기떼나 벼멸구등이 논과 밭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힘들게 농작물을 키워 온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가슴이 찢어진다. 도시로 나간 자식의 생활비, 부부가 같이 먹고살면서 노후를 준비할 터전이 초토화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곤충은 박멸해야 할 존재"라고. 곧바로 농약을 치고 방재에 나선다. 학문도 생겼다. 응용곤충학이 그것이다. 어느 곤충이 어떤 작물에 피해를 입히는지, 그것을 막기 위해 어떻게 방재를 해야 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천적 활용과 같은 방안도 제시하지만 효과적 박멸을 위한 방법도 연구한다. 식물을 탐하는 것은 곤충들의 타고 난 습성이다. 먹고살기 위해, 종족 번식을 위해 농작물을 먹어치운다. 생존 본능에 따른 결과물일 뿐이다. 과연 식량을 둘러싸고 인간과 곤충이 서로의 목숨을 건 사투는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정 박사의 생각은 다르다. 인간과 곤충은 공존할 수 있고 같이 살아야 할 존재들이다. "곤충을 없애면 과연 인간은 잘 살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곤충이 없으면 곧 인간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지요. 물론 당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종래에는 생태계가 중간에서 무너지고 언젠가는 결국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벌레 한 마리 죽인다고 뭐 그렇게까지 엄포를 주나 할 수도 있다. 현실을 모르는 얘기다. 몇 년 전 꿀벌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세상이 떠들썩한 적이 있다. 한때 전체 꿀벌의 98%가 사라져 '멸종 위기'라는 타이틀까지 붙었다. 지금은 좀 조용하지만 아직도 꿀벌을 구경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오죽했으면 국내 한 대기업이 꿀벌을 키우겠다고 나섰을까. 당장 양봉농가가 타격을 입었다. 양봉농가뿐일까. 전세게 개화식물의 80% 이상이 꿀벌에 수분을 의존하고 있다. 아직 현실로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과수 농가 등도 타격을 입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박사도 말하지 않았나. "꿀벌이 사라지면 4년 내 세상을 멸망할 것"이라고. 아마겟돈이 아니라 '곤충겟돈'이 올 수도 있음을 꿀벌이 보여주고 있다.
다행인 점도 있다. 최근 들어 곤충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것이 그것이다. 예전에는 전문가들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환경 문제가 화두로 등장하면서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까지 곤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알고 싶어 한다. 정규 과목에 생태 교육이 없는 학교에서는 절대 소화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생태 교육에 대한 수요는 많은데 이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공급(전문가)은 따라주질 못하는 것이다. 결국 숲 해설가, 어린이집 교사나 강사가 이를 떠맡는 실정이다. 생태 교육이 대중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정 박사도 여기까지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의 눈에 자꾸 걸리는 게 있다. 요즘 전국 곳곳에 곤충 교육 실습장이니 유아 체험장이니 하는 것들이 생기고 있다. 지자체는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는 판단에, 운영자는 돈이 된다는 생각에 시작한 듯하다. 문제는 체험장들이 환경 보호가 아닌 사람들의 관심 끌기용으로 전락했다는 데 있다. 사람과 곤충이 한 공간에 있으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곤충들이 아이들에게 달라붙거나 물리는 일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꼭 뒤이어 벌어지는 일이 있다. 곤충이 물거나 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민원이다. "민원이 들어가면 방제 작업이 진행됩니다. 곤충과 같이 지내기 위해 들어간 공간이 오히려 곤충을 죽이는 장소가 되는 되는 셈입니다. 공존의 장소가 살생의 장소가 돼 버리는, 굉장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유아 체험장을 없애는 것이 낫습니다. 이게 생태계를 살리는 길입니다."
충청남도에 있는 안면도에 가면 꽃지해수욕장이라는 곳이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보석처럼 빛나는 해안 사구와 모래사장, 아름다운 일몰로 유명했던 곳이다. 휴가 때 자주 들렸던 장소이기도 하다. 10여 년 전쯤 오랜만에 찾아갔을 때 꽃지는 더 이상 과거의 그곳이 아니었다. 반짝이는 모래는 간 곳 없고 자갈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해변 입구에 도로가 생기면서 모래가 쓸려나간 탓이다. 사라진 것은 모래만이 아니다. 사구에 살고 있던 식물과 곤충들도 자취를 감췄다. 밤마다 들리던 풀벌레들의 합창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침묵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꽃지해수욕장만이 아니다. 제주도의 명물 섭지코지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푹신한 이불 같았던 해안 사구는 떠나고 대신 호텔과 리조트, 둘레길이 들어섰다. 게다가 모래가 사라지는 것을 막겠다며 육지 식물인 잔디를 그곳에 뿌렸다. 곤충들의 천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어디 해안사구만일까. 정 박사에게는 갈 때마다 가슴 아픈 곳이 몇 군데 있다. 그중 한 곳이 오대산 둘레길인 '선지길'이다. "어느 날 갔더니 산책길을 만들었더라고요. 원래는 곤충길이었던 자리죠. 곤충들은 길 가장자리를 좋아합니다. 풀도 있고 관목도 있으며 햇빛까지 드니까요. 그곳을 둘레길로 만들었으니 곤충들이 터전을 잃은 것이죠. 예전에 그곳에 가면 희귀한 곤충들 사진을 많이 찍곤 했는데 지금 가면 거의 보이지 않아요. 가슴이 아프죠."
이 때문일까. 정 박사는 둘레길이나 올레길을 잘 걷지 않는다고 했다. 너무 속이 쓰려서. 길 한가운데 서서 '그만해'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다닌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단순히 곤충을 위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은 자연이 인간의 복지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진정한 복지는 생태 복지가 돼야 이뤄질 수 있어요. 사람이 살아가려면 반드시 자연과 공존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연이 가진 잠재적인 것들을 후대가 이용할 수 있지요. 이제는 침묵의 도시, 침묵의 숲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그가 강연을 나갈 때마다 곤충체험장과 둘레길을 없애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60대 노 박사에게서 20대 스웨덴의 환경 여전사 그레타 툰베리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