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산 4000만 원 기부한 폐지 줍는 최동복 할아버지
시간이 갈수록 신문이나 방송을 보기가 싫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서로 헐뜯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 이젠 진절머리가 난다. 그래도 뉴스를 보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 찾아가는 것은 가끔 들리는 가슴 따뜻한 소식 때문이다. 기부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대기업 회장이 몇 억, 몇 십억이나 되는 큰돈을 선뜻 내놓았다는 얘기에는 감동이 없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 같은 억만장자들이 상상하기조차 힘든 거액을 내놓는 것도 감흥이 오지 않는다. 아마존의 창립자인 제프 베이조스의 전처 맥킨지 스콧이 재단이 아닌 개인적으로 한 조(兆) 단위 가부가 그나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할까. 하지만 그보다도 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기부가 있다. 내 주위에 있는 보통 사람들이 가슴 시리도록 따뜻한 마음으로 내놓는 온정이다. 때마침 폐지를 줍는 어르신이 평생 모은 돈을 기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4000만 원. 대기업 회장이나 억만장자들에게는 우스운 금액일지 모르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거액이다. 하물며 기부자가 기초생활수급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2021년 대한노인회의정부지부 부근에 한 할아버지가 배외하고 있었다. 오가는 할아버지를 붙잡고 무언가를 물어보기도 하고 근처 가게에서 지부의 활동에 대해 묻기도 했다. 그러기를 몇 달. 할아버지가 결심을 한 듯 지회 안으로 발걸음을 들였다.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지부를 방문한 적이 없었던 할아버지는 1월 12일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할 테니 잘 써달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찾아와 대뜸 기부를 하겠다고 했으니 지부 관계자들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돈을 직접 들고 온 것도 아니고 약속만 하고 떠났으니 다시 온다는 확신도 가질 수 없었다. 말 뿐일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다. 두 달이 지났다. 약속한 날짜가 되자 거짓말처럼 할아버지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는 4000만 원이 든 현금 봉투를 들고. 기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는 힘이 없어요. 하루하루가 다르더군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이라도 좋을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돈이라는 게 살아서나 필요한 것이지 죽으면 싸들고 갈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보기 드문 기부의 사연을 듣고 싶어 지하철을 탔다. 아직 겨울이라서 그런가. 의정부역을 빠져나오니 칼바람이 매섭게 얼굴을 할퀸다.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걸어가길 약 15분. 허름한 집들이 보인다. 마치 1960~70년대의 주택가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어릴 적에는 이런 곳에서 친구들과 한참 뛰놀곤 했는데 지금은 모두 학원에 갔나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질 않는다. 휴대폰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다 만난 허름한 대문. 이곳이다. 대문 앞에서 몇 걸음이면 닿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발바닥 시린 냉기였다. 방에 들어가면 잔뜩 움츠린 어깨를 좀 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고드름처럼 얼어붙었다. 8평 남짓한 바닥에 온기가 있는 곳이라곤 아랫목 부근 1~2평 정도. 구들장에 있는 연탄 몇 장으로는 한겨울의 냉혹함을 이기기 힘들었나 보다. 분명 4000만 원이나 기부했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왜 이렇게 추운 곳에서 지낼까. 의문이 들었지만 아무 내색도 안 했다. 80세 어르신도 아무 말 없이 지내는데 겨우 한번 방문한 객(客)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기부의 주인공은 86세 최동복 할아버지. 주름진 얼굴과 굳은살 박힌 손, 약간 굽은 허리에 칼칼한 목소리는 최 할아버지의 인생 역정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케 한다. 방 안을 둘러보니 시베리아 들판보다도 더 휑하다. 있는 것이라곤 작은 밥솥과 TV 냉장고, 그리고 그릇 몇 개가 전부다. 가구라고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 흔한 가족사진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어머니와 젊은 시절 자신을 찍은 사진 단 두 장만이 액자에 덩그러니 벽에 걸려있을 뿐이다. 방안 모습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명절에도 생일 때도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외톨이다. 흔히 일컫는 '나 홀로 어르신'이다. 가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내도 있고 아들 딸, 손주까지 있다. 하지만 15년 전 인연을 완전히 끊었다. 왕래도 없고 심지어 안부 전화 한 통 주고받지 않았다. '물보다 진한 게 피'라는 말이 있건만 적어도 최 할아버지에게는 이 말이 적용되지 않는다.
시발점은 15년 전 사촌 처남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노동자로 2년간 피땀 흘려 모은 돈을 한 순간에 날렸다. "너무 억울해서 죽여버리겠다며 칼을 들고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때 사촌처남이 있었다면 진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릅니다." 불행은 계속됐다. 먹고살아야 했기에 건축업에 손을 댔다가 처절하게 실패했다. 수중에 있던 약간의 돈조차 연기처럼 증발했다. 그 와중에 허리 디스크까지 걸렸다. 일어나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었다. 그런데도 아들 딸들은 병원에 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설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다행히 노인정에 있던 할아버지가 500만 원을 빌려줘 겨우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가 문제였다. 수술비를 갚아야 하는데 능력이 안 됐다. 대신 갚아주겠다고 했던 자식들은 최 할아버지가 퇴원하자 아예 소식을 끊어버렸다. "이렇게 살면 뭐 하나. 차라리 죽자." 약국을 돌며 수면제 85알을 모았다. 그리고 새벽 3시 한 번에 입안에 털어 넣었다. 유서도 썼다. 한 달에 10만 원씩 10년간 모은 적금이 있는데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 돈으로 빚을 갚아달라고. 천운이었을까. 하늘은 최 할아버지를 데려가지 않았다.
파지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미친 듯이 일만 했다. 좋아했던 술과 담배도 모두 끊고 오로지 리어카만 끌었다. 새벽 3시에 눈을 떠 12시까지 하루 20시간 넘게 동네를 돌며 파지를 주웠다. 그렇게 모은 파지는 하루에 리어카 3~4대 분량이었다. 금액으로는 3만~5만 원. 당시까지만 해도 파지 1kg당 140~150원가량 줬으니 매일 200kg 이상, 많을 때는 400kg 가까이 실어 나른 셈이다. 노인복지관은 발길을 끊었다. "갈 시간이 없었어요. 복지관 갈 시간에 파지 한 장이라도 더 모아야 했으니까요. 정말 자는 시간 빼곤 모두 파지 줍는데 시간을 다 썼습니다." 단순히 종이를 모으는 일만 하지는 않았다. 파지를 줍고 난 후애는 주변을 깨끗이 청소했다. 파지를 가져가게 해 준 보답이나 다름없다. 그래서일까. 주변에서 파지를 줍는데 도움을 많이 줬다고 한다. 주변 아파트에서는 파지를 한 군데 모아놓아 주고 반찬을 직접 가져다주는 이웃들도 꽤 있다고 했다. 4000만 원은 최 할아버지 혼자 모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힘들게 돈을 모았으니 이제는 편하게 살아도 될 법했다. 혼자 사니 남들처럼 즐기면서 살 만도 했다. 가족이 있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 몸을 부대끼며 정을 주고받을 대상이 없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부질없는 일로 만들었다. 황량해진 최 할아버지의 삶에 남은 것이라곤 별로 없었다. 단 하나, 죽기 전에 내가 가진 돈을 모두 써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누구에게, 무엇을 위해? 이런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죽으면 평생 모은 돈이 남보다 못한 가족에게 갈 것이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가족을 향한 울분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돈을 가지고 나를 위해 뭘 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넘겨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차라리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매달 받는 기초연금 30만 원이 전부다. 얼마 안 되는 집 보증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사후 정리를 하는 것이 유일한 조건이었다.
평생 모은 돈을 기부하면서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최 할아버지는 지부를 찾아가기 전부터 다른 사람들을 도와 왔다. 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혼자 사는 여성들이었다. 누가 알려준 것이 아니다. 자신이 스스로 찾아낸 사람들이다. 최 할아버지는 이들 7~8명에게 매달 30만 원씩 건네줬다. 하지만 기부를 하면서 더 이상 이런 일을 할 수 없었다. 이제 인생의 종착역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그동안 자신이 지원했던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갔다. "더 이상 도와줄 돈이 없다고 했지요. 진짜 그랬으니까요. 미안하다는 얘기를 전하고 자리를 떴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그동안 고마웠다고." 돈만 내놓은 것이 아니다. 2006년에는 장기기증서약도 했다.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이 가더라도 일부는 다른 사람의 간과 심장, 콩팥이 돼 함께 숨을 쉬리라.
자리를 일어서려는데 최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을 꺼낸다. 인터뷰 내내 어두웠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지금 저는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여한도 없습니다. 이제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