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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윤 Apr 08. 2020

코로나 정국에서 1등 하는 법

상대평가의 나라

어제 영국, 터키, 일본과 동시에 컨퍼런스 콜을 가졌다. 업무 얘기가 반, 코로나 사태 얘기가 반.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는 것이 자기네 나라 뉴스만 틀면 한국 얘기가 나온다는 거다. 특히 영국인 한 명은 “all the time”이라며 매일같이 뉴스에 한국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대응하는 거의 표준 또는 모범 국가가 되어 있다고 한다. 대만, 홍콩, 싱가폴과 같이 방역에 성공한 나라들이 여럿 있지만 모두 특수한 환경(인구가 적거나 도시 국가, 아열대성 기후)이고, 4계절이 뚜렷하고 인구가 많은 영미 및 다수의 유럽 국가들 입장에서는 한국이 좋은 모범 사례인 것이다. 우쭐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는 겸손하게 말했다. “다 김치와 마늘 덕택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신을 인용해 국뽕에 취한 포스팅을 하면 그러려니 하는데, 외국인들이 직접 추켜 세워주면 기분이 좋은 게 사실이다. 국경을 봉쇄하지 않고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flattening the curve에 성공한 거의 유일한 나라. 이런 글로벌한 위기상황 하에서 세계인들이 한국에 대해 갖게 된 이미지는 우리가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더 강하고 길게 기억될 것 같아 보인다. 국격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게 요즘 피부로 와 닿는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뉴스에 언급되는 국가 간 비교 그래프와 차트는 서로 경쟁하는 대회 성적표가 아니지 않은가. 각 나라별로 사망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때 누가 더 “상대적”으로 효과 있는 방법을 쓰고 있는지 살펴보는 참고 자료일 뿐이다. 현재 상태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2011년 영화 Contagion과 빌 게이츠의 2015년 Ted 강연 빼고) 바이러스에 우리가 얼마나 무방비 상태였는지를 자각하게 해 준다. 각 나라 정치인들이 얼마나 멍청한지 재확인하게 되었고 의료 체계의 허와 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진실의 순간을 맞이하여 그 누구도 합격점을 받지는 못했다. 모두가 60점도 못 받아 과락인 상황에서 나 혼자 59점 받았다고 자랑질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혹시 한국의 정치인들 중 국민의 국난극복 의지와 의료인들의 희생으로 버티고 있는 현상황을 자신들의 치적으로 착각하고 있다면 ... 직업을 제대로 선택한 것이다. 원래 멀쩡한 사람들도 정치를 하면 쓰레기가 되는 직종이니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재확인하게 되는 게 있다. 우리는 자신을 남과 비교하면서 늘 경쟁하는 게 몸에 배어 있지 않나 돌이켜 본다. 경쟁이 없는 나라가 어디 있겠냐마는 우린 너무 유난하지 않은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싱가폴, 일본 등 동양 국가들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배움의 의지와 동기보다 그저 남을 이기는 것에 집착하는 경쟁열만 남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 각각의 재능과 흥미를 찾는 “진로” 교육보다 “진학”에 매몰되어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헛바퀴를 돌고 있지 않은가? 자라면서 이런 교육을 집과 학교에서 주입당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경쟁에 치여 남을 밟고 올라가지 않으면 내 몫은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아이가 “엄마 나 오늘 100점 맞았어!”라고 기뻐하며 들어올 때 당신은 뭐라 하는가? 혹시 “너희 반에서 몇 명이 100점 맞았는데?” 아닌가?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라며 시작하는 레퍼토리에 말려 경쟁에 뒤쳐지면 망한다는 관념이 노이로제처럼 모든 국민의 머리에 박혀 있지 않은가?


우리 수능에서는 유일하게 영어 과목만 상대평가를 하지 않고 절대평가를 한다. 점수대로 줄을 세워 한우 등급 매기듯이 1++, 1+, 1, 2 등급을 매기지 않는다. 다 잘하면 모두가 1등급이다. 참 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 역사상 입시정책 입안자들이 거의 유일하게 제정신일 때 결정한 사항이 아닌가 싶다. 모두가 영어를 못하는 상황에서 ‘네가 얘보다 좀 더 잘해’라는 평가는 마치 코로나로 여기저기 사망자가 나오고 있는 마당에 “우리나라 100명 죽을 때 너희 나라는 1,000명 죽었다며?”라는 말을 하며 우쭐해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세상은 BC와 AC (BC:Before Corona / AC:After Corona)로 나뉘는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이왕이면 우리도 이 기회에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가 아니라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로 큰 방향 전환을 하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싶다. 특히 교육 부문에서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큰 사고의 전환을 기대한다.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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