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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윤 Dec 24. 2019

새해에도 당신은 영어가 안된다

그리고 살도 안 빠진다.

올해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이 새해 다짐을 할 시기가 오고 있다는 뜻이다. 아마 상당수가 두 가지 중 하나를 결심하게 될 것이다. 다이어트 또는 영어.


다이어트의 경우 어차피 살 빠져도 다시 요요가 올 테고 왜 반복해서 실패하는지 스스로 이유를 알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는 영어 얘기를 해 보겠다.

 

새해가 되면 당신을 유혹하는 광고 문구가 지하철, 버스, 포털 그리고 당신이 열어보는 웹사이트와 유튜브 동영상을 따라다닐 것이다. 딱 100일만. 야 너도 하루 10분이면 돼. 서울대 출신들이 만든 뭐시기. 1년 치를 구독하면 태블릿을 주느니, 48% 할인이 들어가느니 하는 말에 넘어가 거금을 12개월 할부로 그을 것이다. 그리고 작심삼일로 마무리되는 뻔한 결말을 맞으며 의지박약 한 자신을 자책할 즈음 봄을 맞을 것이다.


그러나 영어 실패의 원인은 다이어트와 다르다. 다이어트는 방법은 아는데 당신이 실천을 안 했기 때문이라면 영어는 실천 문제라기보다 방법부터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천만 하면 영어에 통달할 텐데 당신이 의지박약이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수많은 영어교육업체들의 상술에 걸려든 것일 뿐이다. 아이큐가 3자리 정도 된다면 잘 생각해 보라. 방법이 맞고 영어가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라면 뭣하러 업체당 수백 억 원씩 광고비를 쏟아낼까? 그런 영어 프로그램들이 나온 지 벌써 몇 년째 인가? 효과로 입증이 되어 입소문이 나도 벌써 땅끝까지 전파됐을 것이다.


1910년 일제 강점기 이후 현재까지 110년간 전 국민이 영어가 안 되는 이유는 우리의 실천 문제보다 방법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근거를 대라고? 우리는 OECD 평균의 1.5배를 넘게 영어교육에 시간을 붓고 있고, 돈으로 따지자면 일본 1인당 영어교육비의 6배를 쓰고 있는데도 영어 구사 능력은 바닥을 기고 있다. 더 이상 무슨 근거가 필요한가?


학교 다닐 때 공부 정말 열심히 하는데 중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친구가 반에 한 명씩 있지 않았는가? 맨 앞줄에 앉아 맨날 깜지 써가며 단어 암기하고, 쉬는 시간에 다들 농구하러 나가도 혼자 사전을 외우고 찢어 먹고 하는데 시험 점수는 신통치 않은 그런 친구. 온 나라가 지금 그 꼴이란 말이다. 바보도 이런 천치 바보가 없다. 차라리 실컷 놀고 꼴등 하는 게 투자수익율(ROI)이 높지 않을까? 공교육은 공교육대로 방법이 잘못됐고 사교육은 사교육대로 잘못된 방법으로 삽질을 하고 있기 때문에 파도 파도 우물이 안 터지는 것이다.  


영어교육학이란 학문은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영어가 공용어로서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행사한 것이 언제부터인가? 세계 2차 대전 이후일 것이다. 외국어는커녕 모국어가 어떻게 습득되는지에 대한 학설이 본격적으로 나온 것이 1960년 이후다. 노암 촘스키가 언어 생득설을 주장하고 스키너의 행동주의 이론이 나온 것이 아마 이 시기일 것이다. 언어 습득 이론을 넘어 외국어 습득 이론, 더 나아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우리들이 어떻게 영어를 습득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다행스럽게도 최소한 잘못된 방법이 뭔지는 밝혀졌다. 온 국민이 수십 년간 임상실험 대상자가 되어 입증이 된 잘못된 학습법이 뭔지는 명백하다. 이 망법(망하는 방법)대로 하면 절대 영어를 잘할 수 없다.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 학교와 시중에 나와 있는 영어 학습법은 이 두 가지를 짬뽕한 게 대부분이다.  


첫째 망법은, 문법-해석학적 방법이다. 소위 말하는 G.T.M - Grammar Translation Method.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에서 하는 방법이다. 문법을 공부하고 단어를 암기하면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정말 *단무지스런 방법이다. (*단무지=단순 무식 지X). 이 방법대로 해서 영어를 구사하는 사례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소위 말해 시험 점수는 높은데 영어 못하는 고학력자들이 이 방법의 피해자들에 속한다. 서울대 및 사법고시 출신들이 최대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서울대 출신들이 만든 영어 프로그램들이 엉터리일 확률이 높은 이유다.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암기한 것을 기억해 내는 과정이 아니다."


이것은 뇌인지과학적으로 이미 증명이 되었다. 문법과 단어를 평생 외워봐야 소용없다는 것은 임상을 기반으로 한 수많은 학술 논문으로 확인할 수 있다. 언어는 서술적 기억(declarative memory), 즉 암기에 의존하기보다 절차적 기억(procedural memory)에 의존한다. 절차적 기억은 우리가 자전거를 배울 때, 골프를 배울 때처럼 무엇을 '습득'할 때 의존하는 기억인 반면, 서술적 기억은 우리가 전화번호, 자동차 번호 등을 '암기'할 때 동원되는 뇌기능이다.


비유를 하자면 뇌가 쌍쌍바 구조가 되느냐, 돼지바 구조가 되느냐의 차이다. 절차적 기억에 의존하여 영어를 '습득'하면 한국어와 영어가 독립적인 기둥으로 형성되고 두 기둥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쌍쌍바처럼. 그러나 우리가 GTM 방법으로 영어를 익히면 뇌 구조가 돼지바처럼 다층 구조가 되는 것이다. 가운데 딸기잼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각각 한국어 감각과 어휘라면, 영문법은 그것을 싸고 있는 초콜릿 코팅, 그리고 영단어는 위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크런치. 영어를 듣게 되면 암기한 것을 바탕으로 한국어로 '해석'해서 이해하고, 영어로 말하려면 한국어로 생각해서 영어로 '번역'해서 내뱉는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 Mental Translation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삽질이다. 머릿속으로 두 개의 언어를 주고받다가 그냥 정신 승리만 하는 것이다.


쌍쌍바 vs 돼지바


암기한 것은 모두 잊게 되어 있다. 우리 뇌는 모두 그렇게 창조되었다. 외운 건 다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위 그림의 오른쪽 그래프)에 따라 모두 잊어 먹는다. 그래야 나쁜 기억도 잊히면서 정신병에 안 걸리는 것이다. 반면, 절차적 기억으로 '습득'한 것은 좀처럼 까먹지 않는다. 어렸을 적 배운 자전거를 20년이 지나 어른이 되어 타도 넘어지지 않는 것처럼.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에서 기억력이 최고점에 달하는 꼭짓점이 있다. 암기 행위를 멈추는 순간 이내 하강 곡선을 그린다. 그 꼭짓점이 언제일까? 그렇다. 바로 시험 본 날이다. 영어 시험 답안지를 제출하고 교실 문을 나와 복도에서 머리를 한 번 흔들어 털어보라. 돼지바에 붙어 있던 크런치들이 우수수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복도에는 앞서 시험을 마친 학생들의 Vocabulary라는 크런치들이 흥건하게 쌓여있다. 불과 5분 전에는 알았던 단어가 시험 보고 나오면서 하나도 남지 않은 이유를 이제 알겠는가?         


둘째 망법은, 패턴 잉글리시가 대변하는 Skills Building 방법이다.


I want a latte.

I want a hamburger ...


이런 식으로 패턴을 단어 바꿔가며 반복 훈련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소위 말하는 'McDonald English' 구사용으로는 효과적이다. 맥도널드 영어? 미국 맥도널드 가서 먹고 싶은 거 주문할 수 있는 영어로 여행 가서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영어 수준을 말한다. 이 방법은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로 드디어 모두가 해외에 나갈 수 있던 시절에 한창 나왔던 망법이다. 실제로는 훨씬 이전에 미군에서 숙성된 방법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대량으로 독일어 통역병을 양성할 때 하던 '훈련(drill)' 방법이다. 그래서 교과서에 보면 반복 연습하라고 하는 뜻에서 'practice drill'이라고 표현한다. 지금 대부분 왕초보 영어 프로그램들은 패턴 잉글리시라고 자칭하는 인강이 대부분을 이룬다. 이 방법은 군대식으로 훈련이 가능하거나 지능지수가 낮은 사람을 상대로 할 때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영어는 수업을 들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한국어로 하는 수업은 더더욱 의미가 없다.  


자, 그럼 이런 망법 말고 제대로 된 방법은 뭐가 있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언어가 습득되는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주제가 너무 방대하니 여기서는 간단히 요약해 보겠다. 우리는 언어를 소통의 도구로 표현한다. 즉, 영어를 '도구'의 관점에서 가르치는 ELT(English Language Teaching) 방법론 중에 인지과학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영어를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사고'의 도구로 보고 접근하는 것이다. 단순한 예로, 당신은 생각할 때 어떻게 하는가? 한국어로 사고하지 않는가? 한국어를 모른다면 당신은 사고할 수 있는가? 사고할 때 동원되는 도구가 바로 언어인 것이다. 특정 개념을 사고한다면 그 개념을 지닌 단어를 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탄핵, 구속, 변론 등 정치, 법률 어휘를 모르는 어린아이는 그 개념을 사고할 수 없다. 아직 관념의 확장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 관념의 확장은 어휘의 확장과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어휘량이 많은 사람일수록 사고를 깊이 할 수 있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해당 어휘를 알아야 그 개념을 사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어휘량이 많은가? 그렇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이다.


사전을 외운 사람, Voca 33000 들고 토익 공부하는 수험생도 어휘를 많이 알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는 걸 모두 알 것이다. 앞서 말한 '암기'로는 어휘를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머리에 돼지바 크런치처럼 어휘를 붙여 놓고 시험 볼 때 기억해 낼 수는 있어도 '사고하는 도구'로는 활용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영어는 사고(상상, 추론, 비판, 감상)하는 과정이 축적되어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깨달아(자각) 저절로 생기는 능력이다.


우리가 모국어인 한국어를 스스로 깨달아 저절로 절차적 기억으로 습득한 것처럼. 이것을 언어 자각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언어자각력을 발달시키는 '사고'를 가장 효과적으로 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렇다, 바로 '독서'다. READING. 그중에서도 교과서를 '공부'하는 Textbook Reading 보다 스토리를 즐기며 생각하며 읽는 Narrative Reading을 많이 해야 한다.


영어에서 Reading은 어떤 '학습' 행위보다 중요한 기반을 이룬다. Reading을 통해 문장의 구조와 어휘를 습득하지 않고 '공부'와 '훈련'을 통해 암기한 내용들은 쓸모가 없게 된다. 뇌를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영어를 할 때에는 C드라이브를 쓰는데, 공부와 훈련으로 암기한 단어는 D드라이브에 저장해 놓은 꼴이다. 그러니 단어 뜻을 기억해 내는 건(recall) 하겠는데 말하려고 하면(produce)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영어를 하는 환경이 아닌 EFL(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환경에서는 Reading이 더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모국어의 기초가 완성되는 7세 전후로 Nursery Rhyme(영어동요)과 영어 애니메이션 동영상 등을 통해 영어 듣기(Listening)에 많이 노출되는 것으로 시작하여 --> 영어 문자를 해독하는 파닉스(Phonics)를 배우고 --> 본격적인 Reading에 진입해야 하는 것이다. 초기에 충분한 Listening과 Reading의 인풋(Input) 과정을 거친 이후 초등학교 고학년 또는 중학교에 들어서서 본격적인 아웃풋(Output) 즉 Writing과 Speaking에 중점을 두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영어 습득의 길이다. 문법은 초등학교 고학년 또는 중학교, 심지어는 고등학교에 가서 배워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법이라는 것은 할 줄 아는 언어에 대해 '정리'하는 것이지 그 언어를 하기 위해 '학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아이가 자라면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영어가 재미있고 쉬워진다고 하게 된다. 뼈대를 먼저 잡아 놓았으니 살 붙이는 게 재미있을 수밖에.


그러나 우리 성인들은 어떤가? 잘못된 방법으로 엉터리 뼈대를 만들고, 무너지면 또 만들고, 생기지도 않는 뼈대만 평생 만들다가 이제 나이 다 먹어 버렸다. 그래서 모두가 IBM이 되었다. 이미(I) 버린(B) 머리(M). 설경구의 "아 ~ 나 다시 돌아갈래~"가 생각나는가?


필자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IBM들을 뒤로하고 우선 우리 아이들부터 살리자고 어린이 리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절대적 영어 노출 시간이 부족하니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디지털 리딩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독서는 궁극적으로 종이책으로 해야 제맛이기 때문에 아이가 자발적 독서(FVR, Free Voluntary Reader)를 하게 하기 위한 과정으로 디지털을 동원할 뿐이다. 디지털은 수단일 뿐 FVR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다.


프로그램 론칭한 지 3년이 지나 10만 명 이상의 어린이 사용자를 통해 성공사례를 양산하는 체계를 잡고 나니 눈앞에 그 아이들 엄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 IBM들. 그래서 엄마들에게 자녀들이 읽는 ORT(Oxford Reading Tree)를 엄마들부터 읽자는 맘 챌린저 프로그램을 실행 중이다. (ORT는 영국 아이들 80%가 학교에서 읽고 자라는 300권짜리 세계적 베스트셀러 리더스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이제 막 임상을 시작한 수준이다. 이제 겨우 석 달 됐는데 벌써부터 효과가 있다는 엄마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난 믿지 않는다. 내가 다시 말하지만 영어자각력 형성에는 최소 1,000시간 이상의 투자가 있어야 한다. 교육사업하는 사람들 제발 영어가 금방 늘 것처럼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른들은 아이와 같은 방법으로 영어를 배울 수 없다는 결정적 시기 가설을 믿는 사람이 많으나 최근 들어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들이 더 많이 배출되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 새해에는 하루 10분 또는 딱 100일만 하면 뭔가 된다는 식의 상술에 넘어가지 말고 어린이 영어 동화책을 한 권 집어 들고 읽어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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