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안 Jan 23. 2024

안전한 나의 울타리 너머로

마흔이 넘어서 새롭게 만나는 세상과 사람들

나는 오랫동안 불안장애를 겪었다.


불안과 두려움을 견디기 힘들었던 나는 사람들을 피하고 집안으로만 숨어 들어갔다. 인간관계가 모두 끊어지고 혼자가 되었을 때 나는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 행복하지는 않지만 불행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원래 삶이라는 것은 고통이고 나는 그저 고통을 줄이기 위해 최선의 방법을 선택했다고 믿었다. 삶보다는 죽음을 꿈꾸면서 하루하루가 그저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그럼에도 현실적인 이유에서 나는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야 했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다.


학교에서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불안하고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나의 나약한 얼굴 위로 밝고 열정적이며 친절한 선생님의 가면을 쓴다. 나는 그것이 교사로서의 직업윤리라고 생각했다. 나의 불안과 두려움은 내 개인의 문제일 뿐, 학생들에게는 교사로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그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나는 꽤 훌륭하게 그 역할을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밝게 웃을수록 점점 더 나의 몸과 마음은 지쳐갔고 집으로 돌아간 후에는 더욱더 내 방 깊이 숨어버리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마흔 살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마흔이 되었다. 20대에는 집에만 숨어 있었고, 30대에는 학교와 집에서만 생활했다. 친구도 없고 만나는 사람도 없었다. 학교에서 만나는 인연도 학교를 옮기면 모두 단칼에 끊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외톨이였지만 불안과 두려움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집 안에서는 안전했지만 밖에 나가면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혹시나 남들 앞에서 실수를 할까 봐 불안과 두려움은 오히려 더 커져갔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것도 나에게는 너무 두려웠고 시도해 보기도 전에 도망쳐버렸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마흔 살 어른이 되었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다.


나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받는 것에 항상 부정적이었다. 의사 선생님에게 조차 내 불안과 두려움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약을 먹고 그것에 의존하는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병원에 다님으로써 나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방학은 집에 있는데도 불안 증상이 지속되었고 결국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을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 역시 병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 잡혀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마음을 바꾸고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면서 꾸준히 병원에 다녔다. 그럼에도 처음 한 달은 증상이 크게 호전되지 않았고 결국 2학기는 병휴직을 하게 되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병휴직 기간에 치료하려고 무리하기보다는 마음 편히 쉬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지만 나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불안과 우울로 고통받았기 때문에 언제 죽어도 상관없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안 증상이 찾아왔을 때 약을 먹으면 괜찮아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희망이라는 것을 조금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몸과 마음이 더 지치게 되더라도 한 번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혹시 또다시 좌절과 실패를 겪어 무너지고 우울해지더라도 한 번 부딪쳐보기로 했다. 집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동네를 산책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아주 사소한 일들부터 도전을 시작했다.


더 큰 도전을 위해 1년간 무급 휴직을 신청하다.


6개월의 병휴직 기간 동안 병원 치료와 다양한 도전으로 나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많이 성장하게 되었다. 그래서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큰 도전을 하기로 결심했다. 학교에서는 근무기간이 10년이 넘으면 평생 단 한번 1년간 무급 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나이가 들었지만 돈도 있고 시간도 있으며 약의 도움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도 있다. 해외여행처럼 지금까지 내가 하고 싶었지만 못할 거라고 포기했던 일들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밖으로 나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만의 안전한 울타리를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 여러 가지 실수와 실패를 겪으면서 더 단단해지자고 용기를 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서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