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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안 Jan 25. 2024

어린 시절 혼란을 함께한 록 음악

예전과는 다른 꿈을 꾸며 드럼을 배우다

마음이 답답할 때 듣던 록 음악


10대 시절에도 나는 생각이 많고 우울한 아이였다.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었지만 하고 싶은 일도 심지어 살고 싶은 이유도 찾지 못했다. 아무리 성적이 잘 나와도 부모님은 만족하지 않으셨고 입버릇처럼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마치 부모님의 희생을 보상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 처음 접한 록 음악은 억눌려있던 내 마음을 시원하게 터트려주었다. 가슴이 답답할 때면 이어폰으로 록 음악을 크게 들으면서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어 댔다.


자살을 꿈꾸면서 들었던 록 음악


20대에 본격적으로 불안 증상이 심해지면서 나는 휴학을 하고 1년 정도 집에만 있었다. 집에서 하는 거라고는 매일 자살을 꿈꾸면서 록 음악을 듣는 것이었다.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을 들으면서 커트 코베인의 유서에 적힌 "서서히 사라지느니 타버리는 게 낫다'를 되뇌었다. 라디오헤드의 "No Surprises"를 들으며 아무런 고통도 놀라움도 없는 무의 세계로 돌아가기를 갈망했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는 스피커의 볼륨을 높여 음악을 들으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다행히 단독주택이었다.) 또 음악을 들으며 갑자기 울기도 했다. 그 당시의 나는 혼란 그 자체였다.


30대가 되면서 멀어진 록 음악


20대에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던 우울을 겪으면서도 우여곡절 끝에 나는 서른 살에 선생님이 되었다. (물론 다른 동기들에 비하면 아주 늦은 편이다.) 불안 장애가 있는 내가 밝고 다정한 선생님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했다. 어느새 록 음악은 내게 위로를 주기보다는 그저 시끄러운 소음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출근길에는 밝은 에너지를 주는 아이돌 음악을 듣고, 퇴근길에는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는 발라드 음악을 들었다. 가끔씩 라디오에서 예전에 즐겨 듣던 록 음악이 나와도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쾌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드럼학원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는 길에 우연히 드럼학원 간판을 발견했다. 뭔가 새롭게 도전할만한 것을 찾고 있던 나에게 드럼은 예전에 듣던 록 음악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더 이상 망설이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드럼 학원에서 간단한 상담을 마치고 바로 등록을 했다. 첫 번째 수업에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이렇게 세게 쳐도 돼요?"였다. 발로 베이스 드럼을 치는데 ‘쿵’ 하는 소리가 방안을 울렸고 스틱으로 스네어 드럼을 칠 때도 ‘탕’ 하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심지어 크래쉬 심벌을 칠 때는 ‘챙‘ 하는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깜짝 놀랐다.

드럼 연습실


감정을 마음껏 표출하기


30대의 나는 감정 표현에 서툴렀다. 불안과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무시했다. 그래서 잘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감정을 제거하려고 노력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럼을 치는 동안에는 음악에 맞춰 내 감정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었다. 방음벽이라는 안전장치가 있는 연습실에서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큰 소리로 드럼을 연주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연습이 끝나면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시원함이 찾아온다. 록스타를 따라 자살을 꿈꾸던 나는 이제 드럼을 배우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밴드를 만들어 서로 소통하면서 협주를 하고 싶다는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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