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 경 Jul 16. 2023

14장 흔적은 흔적으로 지운다

대소변 처리가 중대사인 반려견에 비해, 반려묘는 모래를 깔아 놓은 플라스틱 화장실만 있으면 관리가 매우 쉽다. 고양이들은 대소변의 흔적을 모래 속에 감추는 습성이 있는데, 자기의 흔적을 없애는 방어 본능이라고 한다. 양이가 대소변을 본 뒤 배설물을 모래 속에 감추는 행동을 지켜보는 것은 재미있다. 어차피 다 보이는데 파묻는 의식에 정성을 다할 뿐 아니라, 발에 묻은 모래를 털어 냄으로써 완전 범죄를 이루려고 하지만, 모래가 묻은 발로 집안을 돌아다니기에 그토록 감추려 했던 흔적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은 양이와 흔적을 잘 남기는 딸이 비교가 된다. 먹은 흔적, 앉았던 흔적, 밤샘 흔적 등 무엇을 했는지 확연히 드러나는 딸에게 영어로 이름을 짓는다면 ‘Tracy’(trace = 흔적)가 제격이라고 말한다. 일상에는 우리가 남기는 흔적이 즐비하다. 옷장을 보면 어떤 취향인지, 부엌을 보면 어떤 살림을 사는지, 글을 보면 어떤 생각이 많은 지 쉽게 알아낼 수 있다. 흔적은 우리와 뗄 수 없고 보여지는 우리의 일부이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기도, 주기도 하면서 산다. 좋은 영향력 아래 성숙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영향으로 인해 방황하기도 한다. 학창 시절 좋았던 선생님 덕분에 사춘기 고비를 넘기고, 좋은 친구를 만나 평생의 우정을 쌓는다. 반대로 드라마나 영화에 보면, 나쁜 애인을 만나 예상치 못한 고통을 겪거나, 악덕 두목 밑에서 나쁜 일을 강요받는 주인공을 만난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영향을 받느냐가 인생 전체를 움직일 정도이다. 반대로 내가 주는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나의 성실한 태도로 부모를 안심시키는 가하면, 문제를 일으켜 속상하게도 한다. 어울리는 친구들이 나로 인해 즐거울 때도 있지만, 나의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의도하지 않아도 우리는 크고 작은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살아가고, 서로의 삶에 흔적을 남기는 존재이다. 


영향을 받아 좋은 적도, 나쁜 적도 있다. 살을 뺐고, 이직을 했고, 성형을 했다 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외모와 체형 관리에 들어가고 새로운 직장을 알아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생각이 건강한 자기관리와 진로 개발로 이어지면 좋은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반대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세상사는 게 우울하다면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안 좋은 영향은 비교에서 온다. 나보다 잘난 누군가와 비교해서 이길 수는 없기에 비교의 결과는 기분 상함과 자존감 타격이다. 좋은 영향력 아래 있는 방법은, 비교를 피하고, 힘이 되고 영감을 주는 진정한 인풀루언서를 곁에 두는 것이다.  


흔적과 비슷한 말을 찾아보니 표시를 남긴다는 표현이 있다. 강아지들이 산책하며 나무 밑에 소변을 보는 이유는 내가 다녀간 곳이라는 표시라고 한다. 우리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표시를 남긴다. 사무실 책상 정리, 사다 놓은 국화꽃 한 다발, 고마움을 표시하는 커피 한 잔, 친구에게 보내는 축하 선물 등은 나와 주변을 기분 좋게 하는 표시들이다. 반면 불쾌한 표시를 남길 때도 있다. 짜증내면서 받은 전화, 생각없이 내뱉은 말, 단칼에 거절한 동료의 부탁, 지키지 못한 약속 등으로 인해 누군가를 기분 상하게 하는 가하면, 자신은 후회와 자책에 빠지기도 한다. 강아지들이 서로의 표시를 알아보는 것처럼, 우리도 남긴 표시로 인해 서로에 대한 신뢰와 친밀감을 쌓기도, 불신과 야속함을 쌓기도 한다.  


흔적은 흔적으로 없애는 것 같다. 더러운 흔적을 남겼다면 깨끗한 흔적을 덧입혀 먼저의 흔적을 없애는 것이다. 양이가 집안 곳곳에 뿌린 모래를 치우며 툴툴대던 기분은, 집사가 마음에 든다는 표시로 머리를 들이대는 양이의 애교로 눈 녹듯이 사라진다. 혹시 누군가에게 남긴 기분 나쁜 흔적이나 표시를 지우려면, 기분 좋은 흔적을 만드는 것이 방법이다. 시큰둥하게 내뱉은 말은 재치있는 애교 멘트로, 무책임하게 던져 놓았던 일은 깔끔하게 처리하는 행동으로, 미안한 마음이 드는 사람에게는 진심 어린 사과로, 후회가 되는 일은 반복하지 않는 결심으로, 새로운 흔적을 만드는 것이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 광고의 ‘Just do it’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슬로건이다. ‘너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 봐’라는 메시지는, 로고가 입혀진 티셔츠를 입을 때마다, 광고 전광판을 볼 때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래 그냥 해보는거야 하는 생각을 갖게 했을 것이다. 자신없고 망설이는 사람에게 용기와 베짱을 고무시키는 말이기에, 영향력은 상당했다고 보인다. 사람, 책, 그림, 음악, 자연, 영화 등 영감과 통찰을 주고, 감동과 동기를 부여하는 영향력들은 다양하다. 좋은 영향력 아래 자신을 두고, 그것으로 인해 살아갈 용기와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것은 삶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이다. 때로 내가 남기는 흔적을 둘러보는 것도 좋은 습관이다. 지울 것은 지우고, 남기면 좋은 것들은 소중히 간직하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0장 싸울 것인가 피할 것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