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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연 May 24. 2020

피아노 연주회에 가보았습니다.

음악을 보고 듣고 느낀다는 것

작년 말에 필라델피아로 조성진의 연주를 들으러 갈 기회가 있었다.


조성진과 오케스트라의 콘체르토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인 듯 조성진이 연주할 때엔 조성진에게 저절로 포커스가 맞춰졌고 솔로 파트가 끝나갈 때쯤엔 다시 오케스트라 전체가 눈 안에 들어왔다.

불과 몇 달 전에 갔었는데도 이제는 아주 흐릿한 감상과 느낌만이 남아있다.


어느새 해가 바뀌었고 나는 홀을 울리는 피아노의 소리가 듣고 싶어 잘 모르는 어느 피아니스트의 연주회에 가기로 했다. 프로그램에 라벨과 베토벤과 리스트가 있길래 그냥 예매했다.


연주회 당일,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트홀로 올라갔더니 그곳에는 연주자의 지인, 친척, 동기, 선후배 등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꽃다발과 각종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슈트 차림에 하이힐을 신은 한 여자를 보고 청바지를 입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쭈뼛대며 조용히 티켓을 받고는 면구스러움에 스마트폰 화면만 쳐다봤다. 내가 혼자 갔다고 나한테 뭐라고 할 사람도, 내게 신경 쓸 사람도 없지만 그냥 부끄러웠다.


아무렇지도 않게 어딘가 전망 좋은 좌석에 털썩 앉아, 넉살 좋게 옆 사람한테 “어떻게 오셨어요?” 따위의 질문을 할 수 있는 낯짝의 두께가 나에게는 아직 없는 것이다.


불이 서서히 꺼지고 연주자가 걸어 나왔다.

이 작은 아트홀 하나를 채우기 위해 그녀는 어떤 노력을 해 왔을까.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연주하고 상을 받고 심사위원과 악수를 하며 사진을 찍었을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이 나라로 돌아온 것일까.


나는 막귀라 음악에 대한 평은 못하겠으나 그녀의 손이 마치 물고기처럼 부드럽게 피아노 건반 위를 헤엄치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손가락은 매우 유연하게 놀려졌으며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그녀의 팔목 근육 또한 물결쳤다. 그녀는 카키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밝은 밤색의 무대와 아주 잘 어울렸다.


무대가 끝나자 나는 도망치듯 코트를 챙겨 아무도 모르게 엘리베이터 한쪽 구석에 붙어 1층으로 내려갔다. 건물 앞쪽이 닫혀 있어 나는 뒤쪽으로 나가야만 했다. 건물을 나와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제 아무도 내가 피아노 연주회를 보고 집에 가는 사람이라는 것은 모를 것이다.

난 아직도 내가 무슨 마음으로 피아노 연주회에 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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