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연 Aug 12. 2020

배움: 학생, 선생, 그리고 연구자

슬기로운 대학원 생활을 위하여

열흘 전, 약 1년간 나를 웃고 울린 석사 논문을 제출했다.

내 피, 땀, 눈물, 그리고 한과 얼마저 서려 있는 그런 글인데 막상 제출하고 보니 허탈하기 그지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투고를 위해서 다시 다듬을 것이므로 그저 그동안 써둔 것들을 수습만이라도 해서 내자는 마음이었는데 그것조차도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었다.


대학원생의 애환을 8컷에 함축한 전설의 짤:
출처는 이미지 하단의 웹사이트로 추정.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학생의 입장에서 새로운 지식과 관점을 제시해야 하는 연구자의 입장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마음의 준비와 노력을 요했다. 이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며 단순히 몇 년 만에 이루어질 리 없다는 것은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석사 논문을 쓰면서 체감한 학생과 연구자의 차이는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이었다. 유의미한 연구 질문을 설정하는 것부터가 난제였다. 대체 연구 질문은 그냥 질문과 어떤 차이를 가진단 말인가? 나의 연구가 현존하는 수많은 학술적 논의들 중 어떤 논의들과 맞닿아 있는 것인지, 맞닿아 있다 하더라도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지 (만약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도대체 답을 알 수 없는 의문들로 내 머릿속은 어지러웠고, 마음은 무거웠다.


어쨌든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히 정말 좋은 지도교수님을 만난 덕에 논문은 꽤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논문을 겨우 한 편 쓰고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조금 웃기기도 하지만 혹여 대학원 지원을 염두에 두고 있거나 다가오는 논문 제출에 괴로워하고 있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까 하여 몇 자 끄적여 보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세상의 모든 분들에게 존경과 위로를...)


각고의 노력 끝에 한 분야에 통달한 자들만이 스스로를 진정한 대가이자 스승으로 칭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또 동시에 같은 길을 조금 앞서 걸어 나가는 사람만큼 좋은 선생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언어도 원어민보다는 그 언어를 공부한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갖고 있고, 또 외국인의 고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더 좋은 선생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논문을 쓰면서 석사 동기들의 도움도 아주 많이 받았기에 그들 또한 나의 선생님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三人行, 必有我師 (삼인행, 필요아사)
세 명이 함께 길을 가면, 그중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는 학생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선생이다. 꼭 직업이 교육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타인에게 아무리 작은 가르침이나 깨달음이라도 주고, 또 받기 마련이다.


나는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임과 동시에 초짜 연구자이며, 그것이 무엇이든 더 배우고 싶은 학생이다. 이 세 가지 정체성은 평화롭게 공존하다가도 가끔은 알 수 없이 엉켜버릴 때도 있다. 각각 다른 마음의 자세와 태도를 요구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결국 학생이든, 선생이든, 연구자이든, 그 정체성의 본질은 서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배우는 것은 훗날 가르치고 연구하기 위함이요, 연구하는 것은 배움을 구하고 그 배움을 가르치기(나누기) 위함이요, 가르치는 것은 가르치기 위해 연구하고 그것에서 배우기 위함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피아노 연주회에 가보았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