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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연 May 19. 2020

외국에서 느끼는 내 이름의 소중함

이름에 대하여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수많은 이름을 들었고, 외웠고, 또 잊어버렸다.

세계 각국의 이름들이 알파벳 순으로 정리된 출석부를 본다는 건 언제나 묘하게 이상한 경험이었다.

어떤 이름들은 평생을 함께할 것이고 어떤 이름들은 대학시절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오늘은 내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 이름은 어떤 절의 주지스님께서 지어주셨다. 엄마는 ㅇㅇ과 ㅁㅁ중 성격이 온순하고 교우관계가 원만하다는 ㅇㅇ을 선택하셨다고 한다.


자라면서 ㅇㅇ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몇 명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름이 같은 사람을 만나면 느껴지는 반가움이나 당혹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그 이름을 다른 사람도 자신만의 고유한 것이라 여기며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니 마치 내 것을 빼앗긴 듯한 느낌도 든다. 그렇지만 내 이름이 여전히 소중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마 나는 내 이름을 수천 번은 썼을 것이다. 내 이름이 적혀있는 노트와 교과서, 그리고 책들로 내 방은 가득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 수천 번은 더 쓰게 될 것이다. 계약서 같은 중요한 서류나 수술 동의서의 보호자란 같은 곳에도 내 이름을 적게 되겠지. 나라는 사람은 이 이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외국에 오래 있으면 모국어의 힘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강하게 느끼게 된다. 길을 걷다가 한국어가 모국어인 친구나 선배가 내 이름을 부르면 그 부름은 주변의 외국어를 뚫고 날아와 말 그대로 내 귀에 꽂힌다.


내 이름이 한국어의 원 발음 그대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일인지 외국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원래 무엇이든 잃어봐야 그 소중함을 알 수 있다던데,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니고 살아온 이름은 오죽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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