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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연 May 21. 2020

김영민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상실, 아픔, 혐오가 만연한 지금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추석이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김영민 교수의 칼럼과 영화 평론을 한데 묶어 출판한 책이다.


지하철 안 같은 공공장소에서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큭큭 소리 내어 웃다가 주변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 웃는 얼굴로 "웃음이란 무엇일까요" 또는 "타인의 시선이란 무엇일까요" 등의 존재론적 질문으로 응수해주고 도도히 다른 칸으로 가면 된다.


문장이 길지 않고 간결하나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잘 전달된다. 어휘 선택 또한 실로 적절하기 그지없는데, 여러 번의 퇴고와 심사숙고의 산물인지 아니면 초고부터 이런 글의 결을 유지했는지 궁금하다.


동양 사상을 공부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답게 폭넓은 교양과 인문학적 소양을 보여주면서도 이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총 다섯 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장은 일상, 학교, 사회, 영화, 대화라는 주제로 포괄된다.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다소 비관적인 제목은 사실 만고이래 거의 유일한 진리인 "인간은 모두 죽는다."에 대한 작가의 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죽음과 직결되어 있으며 우리는 일상에서 크고 작은 죽음들을 마주한다. 가까운 친족의 장례식에서부터 뉴스에서 보도하는 고독사, 난치병에 걸린 아이의 가슴 아픈 죽음, 그리고 위험한 작업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이야기까지. 죽음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특히 코로나 19로 인하여 우리 모두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아픔과 상실, 그리고 죽음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죽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달려본들 결국 그 끝이 죽음이라는 사실에는 어떠한 이견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통해 인생은 허무하며 우리의 노력은 모두 부질없다는 식의 허무주의를 설파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끝이 죽음이라는 점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침착한 태도로 삶의 유한성에 대해 숙고해보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김영민 교수는 과연 이 유한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또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즉, 결혼, 대학 진학, 자유, 소속감, 국가 등과 같은 것들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자신 나름대로의 답안 또는 가능한 사고의 방향을 제시한다.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위에 나열한 단어들은 아주 다른 의미로 다가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연한 의미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개념이나 정의가 모든 경우의 수를 포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무엇인가를 할 자유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엇인가로부터의 자유일 수도 있다. 이처럼 쉽게 설명하고 소통하기 위해 단순화된 개념들의 다양한 층위를 우리는 종종 망각하거나 심지어는 알지조차 못한다.


결국 존 스튜어트 밀이 주장했던 것처럼, 인류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자유로운 토론과 표현은 필수부가결하다. 인류는 의견의 차이를 통해 진리의 다양한 측면을 공평하게 다루고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반박하고, 그 과정에서 꼭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삶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죽음이라는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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