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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연 Aug 18. 2020

문목하 |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의 흐름과 인생에 대한 소소한 고찰

다이어리에 책을 읽은 날짜를 기록하는데 무심코 2019년이라고 썼다. 달력을 힐끗 보고 아, 2020년이지.. 하고는 2020년으로 수정했다. 아직도 2020년은 도무지 입에 붙지를 않는다. 이제 나에게 2020, 2021과 같은 숫자는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그저 지금 이 순간을 가리키는 임의적인 이름일 뿐.


아마도 1학년에서 2학년,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지던 초, 중, 고 시절이 지나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내 인생에서 "1년"이라는 시간의 단위는 예전에는 그냥 학교만 충실히 다니면 생기던 성장의 나이테가 아니다. 내가 어떻게 노력하느냐,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내 성장의 나이테는 한 달, 100일, 2년, 아니면 10년이 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나 스스로 성장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의 성장을 촉진해 주지 않는다. 시간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매 순간이 가치 있는 것이고, 노력과 성장이 중요한 것이다. 만약 시간이 무한하다면 굳이 "지금 이 순간" 노력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돌이킬 수 있는>의 주인공 윤서리는 대단한 인물이다.


물론 시간을 돌릴 수 있는 것과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은 다르지만,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은 과거의 행적을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한 번 쓴 것은 아무리 지우고 수정하더라도 자국이 남는 것처럼, 계속된 돌이킴은 윤서리의 몸과 마음에 상처 자국을 덕지덕지 남긴다.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지우개 자국과 수정테이프 자국 속에 감춰진 것들을 들키지 않게 감추고, 또 감내하는 것은 온전히 윤서리의 몫이다.


또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에도 제한은 있기 마련이다.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사회적, 구조적인 요인들은 수정할 수 없다. 아무리 미래를 경험하고 왔다고 하더라도, 한 인간이 신이 아닐진대 어떻게 모든 이의 감정과 사고, 행동을 통제할 수 있겠는가.


무한히 반복하면 가능하다고 해보자, 그렇다 해도 아마 그 사람의 마음은 결국 너덜너덜해져 그냥 시간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기게 되는 지경에 이르지 않을까.


<돌이킬 수 있는>을 읽으며 다른 작품들이 많이 떠올랐다.

김영탁의 <곰탕>,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 속 몇 구절,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 초능력 소녀 민트의 이야기를 담은 듀나의 <민트의 세계>, 미래에 인구의 대부분이 초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설정의 애니메이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최근에 봤던 화제작 <킹덤>까지. (다음 단락에 <킹덤>에 대한 약한 스포가 있습니다.)


초능력과 시간 여행이라는 키워드를 파악하자마자 바로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간 시간 여행자들의 이야기 <곰탕>, 그리고 타임리프 능력을 가지게 된 소녀 마코토의 이야기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떠올랐다.


<킹덤>에서 권력을 위해 생사초를 이용해 왕을 좀비(생사역)로 만든 조학주와 혜원 조 씨 세력, 자신의 죄책감과 나라의 안녕을 위해 스스로 좀비가 되어 조학주를 제거하려고 돌아온 안현대감, 이 사이에서 분투하는 세자 이 창에게서 비원과 경선산성, 그리고 윤서리와 정여준의 그림자가 보였다면 비약일까.


조금 추상적으로 조명한다면 상술한 작품들 중 다수는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힘, 또는 그러한 물체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에 대한 집단 간의 견해 차이와 그에서 비롯하는 갈등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힘은 그 존재 자체로도 기존의 권력 구조와 역학 관계를 뒤흔들기 때문이다.


초능력의 존재를 딱히 믿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초능력은 문학의 소재로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다. 말 그대로 초능력이기 때문에 상식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독자들은 초능력이 없기 때문에, 설득력 있는 세계관을 구성하고 독자들에게 이를 납득시키는 것은 작가의 몫이다.


또한, 내가 앞서 떠올린 작품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초능력과 시간 여행이 흔하게 쓰이는 소재라는 뜻이다. 기존 작품들과의 차별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개연성 있는 스토리를 구성해야 한다.


이 점에서 문목하는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작가다. 짜임새 있는 구조, 장편이지만 술술 읽히는 전개와 속도감 또한  장점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든다.


과연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좋은 것일까?
내가 돌이킨 시간의 주관성과 임의성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흐르는 시간을 지배한다, 실로 무서운 일이다.


김연수의 문장들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그나마 삶이 마음에 드는 것은,

첫째 모든 것은 어쨌든 지나간다는 것,

둘째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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