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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연 Mar 09. 2021

포착

1인 n카메라 시대의 '포착'

어렸을 때부터 포토제닉함과는 멀었다. 미래에도 멀어졌으면 멀어졌지, 가까워지지는 않을 것 같다. 카메라라는 무생물에게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나의 얼굴을 포착당하는 행위는 여전히 별로 즐겁지 않다. 웃기거나 즐겁지 않은데 왜 웃어야 하는가.


사진 찍기에 대한 나의 반감은 아마도 즐겁지 않은 상황에서 웃기를 강요당했던 그 수많은 경험들로 인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마치 일종의 신념처럼 단단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장의 사진보다는 한 편의 글이 나에 대한 더욱 정확한 기록이라고 믿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포착당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엄마 방에 꽂혀있는 내 유년 시절 앨범들을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나에게는 나를 드러내지 않고 주변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관찰의 결과를 '사진'이라는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니 사진을 매개로 소통하는 인스타그램 시대에 나는 딱히 잘 맞는다고는 볼 수 없겠다. 그러나 1인 n카메라 시대에 대해 생각은 해 볼 수 있으니 몇 자 적어본다.


눈과 카메라가 가장 다른 점은 눈은 살아있고, 소유자의 생각과 감정이 보다 무의식적으로 실린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계속 시선이 가듯이, 좋아하는 대상에 시선이 가고, 관심이 있을수록 오래 머문다. 최근의 경제는 관심 경제로 변모했다. 인간의 관심과 시선, 즉 '눈'을 사로잡기 위해 경쟁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이런 시대 속, 포착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방송 및 언론업계 종사자들이 있다. 기자들은 매일 기삿거리를 포착하기 위해 악전고투한다. 때로는 어떤 것이 포착할 만해서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포착한 후 그것을 포착한 명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PD들은 대중의 욕구를 포착하고 그를 겨냥한 프로그램을 만든다. 간혹 대중이 분명히 가지고 있지만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욕구를 포착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대의 을 한 발 앞서 읽을 줄 아는 트렌드세터다.


그런가 하면 포착당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연예인이 있다. 관심을 먹고사는 직업이니 눈에 띄어야 하고 관심을 끌어야 한다. 많은 시선이 모일수록 많은 생각과 감정이 모여든다. 당연히 시끄러워진다. 연예계가 바람 잘 날 없는 이유다.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 (aka 인스타 핫플)의 흥망성쇠도 이 포착이라는 조금 아리송한 메커니즘에 기반한다. 사람들은 사진이 잘 나오는 힙한 공간을 원한다. 대관절 '힙'이 무엇인지 아무도 확실히 정의하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어디에선가 귀신같이 '힙'을 포착하고 그것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파된다. 이 과정에서 영향력 있는 인스타그래머의 포착은 권력처럼 작동한다. 무엇보다 돈이 된다. 인스타그래머와 인스타 핫플은 일종의 공생관계, 또는 유착관계를 형성한다.


카메라가 지금처럼 보급되지 않았을 때에는 포착하고 포착당하는 것도 하나의 특권이었다. 과거 조선시대를 생각해보라. 화가에게 돈을 주고 초상화를 의뢰할 수 있는 것은 귀족이나 왕족들뿐이었다. 어진을 그린 화가들은 대부분 당대 최고의 화원으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들이었다. 엄격한 시험을 거쳐야만 어진 화사로 선발될 수 있었다.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로 일컬어지는 김홍도도 3번이나 어진화사로 발탁됐지만 용안을 그리는 주관화사로는 선발되지 못했다. 불과 백 년전만 해도 자신의 인생을 그림 또는 사진이라는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 자체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귀한 기회였다.


지금은 어떤가. 누구나 사진을 손쉽게 찍을 수 있으며 이를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할 수 있다. 원한다면 하루에 몇 천장이고 찍어 인화할 수 있다. 포착하고 포착당하는 그 행위 자체는 더 이상 특권이 아니다. 그러나 포착이라는 행위를 통해 누군가는 수십만 명에 이르는 팔로워를 보유한 인스타그래머가 되어 신흥 권력 계층에 진입할 수도 있다. 인기 걸그룹 EXID의 커리어도 만약 멤버 하니의 위아래 직캠이 없었더라면 가능했을까? 동영상 하나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결국 범람하는 이미지와 영상의 홍수 속에서는 얼마나 사람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금 '기록'과 '경제'라는 다소 멀어 보였던 단어가 얽히고 설킨 사회적 양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끝이 무엇일지는 계속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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