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23년을 마무리하며
요즘 컨셉진에서 하는 인터뷰 캠프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 정말 말도 안되게 많은 일들이 있었어서 최대한 많은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당신의 2023년을 인터뷰합니다"라는 카피가 나의 눈을 잡아챘다. 매일 오전 8시에 김경희 편집장님의 질문이 문자와 이메일로 전달되고, 하루 안에 1000자 (공백 포함) 이내의 답을 개인 노션 페이지에 올려야 하는 형식이다. 30일 중 24일 이상 답변을 완료하면 내년 초에 나의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서 보내준다고 한다. 오늘까지 일주일 동안 7편의 짤막한 글을 써서 올렸는데,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이 음악과 사람, 그리고 연구로 귀결되는 것을 보면서 내 삶이 점차 어떤 뾰족한 점으로 수렴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지점에 도달했을 때 내가 스스로를 '사회학도'가 아닌 '사회학자'라고 당당히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올해 케이팝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를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어둠 속에서 어딘가로 가다가 벽에 부딪혀서 튕겨 나오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면서 점점 내가 있는 공간의 생김새에 대한 감을 잡은 느낌이었다. 그러자 더 이상 부딪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내가 있는 공간은 왜 그렇게 생겼을까 하는 의문도 생겨났다. 왜 미국에서는 아직도 대중 음악 연구가 인문학만의 영역이라는 걸까? 한류와 “K-콘텐츠” 연구를 왜 사회과학적으로 못한다는 걸까? 미국 학계에서 한국의 사례를 연구하고자 할 때 거쳐야 하는 어떤 "인정 투쟁"의 과정에 내 연구가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대답은 사실 현장에 있었다. 약 6개월간 현장 연구를 해보니 그동안 내가 생각을 거꾸로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현장에 가보니 내가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을 경험적으로 확인하고 논증할 수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석사 때 지도교수님이 강조하셨던 귀납적인 사고(inductive thinking)가 무엇인지를 드디어 조금 이해한 것 같았다.
세종은 조선의 자연환경에 맞는 날짜와 절기를 예측하기 위해 1442년과 1444년에 각각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을 편찬했다. 칠정산 편찬이라는 업적 뒤에는 자주, 민본, 실용의 세 가지 이념을 갖추고 중화주의라는 질서 속에서 조선만의 독자적인 역법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이라는 뛰어난 위정자와 당나라의 선명력, 원나라의 수시력, 그리고 명나라의 대통력을 완전히 소화하고 20여년에 걸쳐 새로운 역법을 고안하고 정리한 여러 학자들이 있었다. 이처럼 한국의 실정에 맞는 이론과 개념이 나오기 위해서는 외국의 이론을 소화하고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국은 한국에 대한 경험적인 연구가 많이 축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에는 “K-"가 붙어있는 여러 용어에 대한 해석적이고 외재적인 접근보다는, 그 용어들이 가리키는, 실재하는 것들에 대한 경험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연구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