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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영 Oct 14. 2024

이수영의 [디지털 '제지소]

제3편 / 민재명 제 지인을 소개합니다. 

이수영의 [디지털 ‘제지소’] 제3편 / 제 지인을 소개합니다.      


제지소(製紙所, paper mill)는 말 그대로 ‘종이 제작소’이다. 종이는 정보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지혜의 숲’이라고 할 수 있다. 종이는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와 같다. 이런 관점에서 인사이트를 주고받는 공간인 4차산업혁명 시대의 ‘디지털 제지소’를 열었다. 나의 지인 소개와 동시에 내가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며, 그들로부터 배운 것들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소통하는 즐거움을 위해 시작하고자 한다.      

내 주변에는 괴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 가운데 단연 독보적인 사람이 한 명이 있는데, 아마 삶의 궤적을 쭉 늘어놓으면 이렇게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 것이다. 공부라곤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어떻게 대학을 가게 되었을까?부터 대학에서도 학사경고를 받던 사람이 어떻게 카이스트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을까? 또, 시인으로 등단한 사람이 창업가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삶을 살아온 사람, 그는 나와 10년지기 친한 형인 민재명이라는 사람이다. 재명이 형은 2014년 나와 함께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재명이 형은 시상식 바로 내 옆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인재상 수상자 워크숍과 각종 모임, 그리고 매번 대전으로 갈 때마다 만나는 사람이 지금의 재명이 형이다.      


당시, 애드링이라는 전화 대기시간에 광고를 통한 수익 창출로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에는 펠로워즈라는 HRD 회사를 창업했다. 지금은 로컬 크리에이터이자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사회적 기업가로 변모해 대전에서 활동 중이다. 재명이 형은 정말 괴짜 중에 괴짜이다. 탑오브 탑! 재명이 형 인생 자체도 그렇지만, 그가 생각하는 인생에 정답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형화되어있지 않는 창의적 사고가 그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재명이 형을 만났을 때, 그의 첫인상은 매우 부드럽고 편안한 인상이었다. 대전 충남사람이라서 그런지 여유로워보일 뿐만 아니라 느긋한 성격도 한몫했다. 하지만, 사업을 할 때는 그 누구보다 냉철하고, 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재명이 형도 사실은 두렵지만 도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이 많으며, 잘되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로부터 얻는 점도 많다고 했다. 사실 앞서 언급한 이력만 보면 재명이 형은 그냥 소위 말해 열정에 미친놈이다. 나도 열정이 많은 사람이지만, 이 사람을 따라가기엔 너무나도 버거울 정도다.      


한 때, 내가 깊은 슬럼프에 빠져 허우덕댔을 때, 재명이 형은 나에게 위로와 동시에 따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수영아, 내가 보는 너는 경험이 풍부하고, 역량이 부족하지 않은데, 늘 겸손함 때문인지 자신감을 비추는 모습이 적어보여, 그래서 더 스스로를 믿고 도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 이 말이 지금의 도전적인 나를 만드는데 한 몫 제대로 했음을 알고 있다. 가끔은 형이 좋은 책이 나오면 선물로 보내주곤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스킨인더게임이라는 책이다. 형과 함께 하는 순간은 늘 열정과 에너지로 채워진 시간들이었다. 


그런 재명이형과 나는 사회활동을 같이해왔다. 법제처 국민법제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그리고 행정안전부 정부혁신 전문위원, 최근에 한국인터넷거버넌스포럼까지 늘 나를 믿고, 나와 함께해준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사실 내 주변에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늘 성공보다는 실패를 많이 해본 사람이 많다. 그리고 정해진 길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기존 제도권에서 정도라고 하는 길이 아니라 자기가 삶의 방향성을 결정해온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재명이 형은 앞서 언급한 이력만 보면 잘 모르는 사람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형은 그 누구보다 많은 실패 경험을 가졌고, 그를 통해 배운 것이 많기 때문에 굳건하게, 단단하게 자라온 것 같았다.     


재명이 형은 또한 창의적인 사람이다. 최근에 딥페이크에 관한 세션을 함께 했는데, 플로어에서 딥페이크 기술이 가져온 폐해가 큰 데, 기술을 폐기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뉘앙스의 질의를 했었다. 나는 당시 좌장으로 기술의 긍정적 측면은 강화하고, 부정적 측면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기술 자체를 나쁘게 보기보다 악용하거나 예상되는 문제점을 고쳐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또한, 우리나라가 딥페이크 기술을 부정하거나 폐기한다고 해서 해외에서 악용하는 것까지 방지할 수 없어 기술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해 법적 제도적 프레임안에서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 때 재명이 형은 내 말을 딱 한마디로 정리했다. 자동차를 개발한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이 나쁘다라고! 완벽한 비유와 띵언이었다. 재명이 형은 이런 점이 상당한 장점이다. 과거에도 시대변화에 뒤떨어진 제도를 마차에 내비게이션을 다는 것과 같다는 표현으로 코멘트를 했다.


재명이 형은 이런 사람이다. 사실, 나는 법과 정책을 전공하다보니 말은 논리적이지만, 이 말을 대중이 이해하기에 잘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법의 주인인 국민이 스스로 그 권리를 깨닫게 함에 있어 재명이 형의 표현 방식은 상당한 파급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재명이 형을 통해 보다 다양한 전공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그 중 한 명은 재명이 형과 친하게 지내는 인표형이다. 인표형도 문예창작을 전공했지만, 창업가로 성장하고 있고, 또한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도 많아 청년정책과 관련된 일들에 참여해왔다. 사실 내가 인재상을 수상한 부문 역시 이 둘과 비슷한 궤를 가지고 있어서 말이 너무 잘통했다.      


그리고, 재명이형과 인표형, 그리고 나는 행안부에서 국민제안을 숙의 숙성하여, 정책으로 제안화하는 전문위원으로 활동해왔다. 심지어 같은 재정경제 분과에서 활동하면서 한달에 한번은 얼굴을 비추었다. 다만, 당시에는 코로나가 유행하여 화상으로 밖에 못만났지만, 대전에 가면 늘 셋이서 함께 본다. 지금은 기태형님까지! (기태형님도 완전 미친자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이고, 나는 잘 몰랐지만 인표형, 재명이형, 기태형은 진짜 친한 브라더들이다)     


사실 대전이라는 지역이 나와 인연이 깊다고 생각한 것은 재명이형과 인표형도 있지만, 내가 병무청에서 정책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그리고, 세종 정부청사에 드를 일이 많기 때문에 유독 자주  만난 사람들이기도 하다. 내가 30 중반이 되었지만, 여기서는 막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이 나이에 아직도 귀여움을 받고 있는 것도 큰 것 같다. 지금은 코레일에 재직 중인 찐 막둥이가 있어서 지금은 그 녀석이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잠시 소개를 하자면, 이 친구도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자이다. 원래 부산 출신으로 기계공고를 졸업하고 코레일에 입사를 했다. 현재는 코레일 내에서 차량기술사업 분야를 담당하는 선임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입사 후에도 대학을 진학했고, 지금은 대학원도 진학 준비 중이다. 이 녀석도 할 얘기가 엄청 많은데, 늘 도전적인 삶을 살면서도 스스로 불안해하는 스타일이다.      


아마도 노력형 인재라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이 녀석도 재명이 형만큼 다이나믹한 삶을 살아온 녀석이다. 늘 부족한 나를 형이랍시고 잘 챙겨주는 아주 귀여운 막둥이다. 재명이 형과 함께 만났을 때에도 가끔은 어리광도 부릴 줄 알아야 하는데, 진지함이 더욱 빛나고 또 듣다보면 이야기에 푹 빠지기까지 한다. 차후에 이 친구도 제지소에 포함해서 소개할 예정이다.      


다시 형 얘기로 돌아와서 재명이 형은 현재 카이스트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재명이 형은 원래 카이스트에서 일하다가 다시 창업자로 돌아왔고, 카이스트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 영향을 준게 나라고 한다. 나와 함께 과학기술과 디지털 기술을 함께 논의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주요 업무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면서 다시 연구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실 나는 내가 영향력을 주긴 커녕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형도 나와 만나면서 인사이트를 받고,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있음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사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나를 위해 함께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도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노력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부터 재명이형과 나, 앞서 소개한 이철우 변호사는 시기는 달라도 법제처에서 같이 활동했고, 청년으로서, 그리고 전문가로서 법제처장 표창을 수상했다. 이 부분에서는 조용호 과장님의 영향이 컸다. 앞에서도 잠시 소개했지만, ㅅ로운 세대가 발걸음을, 그래서 청년 세대에 많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현재는 과기정통부와 한국인터넷거버넌스포럼에서 함께 하고 있는 분이다. 조용호 과장님은 진정한 어른이다. 그리고 겸손하면서도 나를 아들처럼 챙겨준 분이다.      


그런데, 참 특이한 것은 당시 나와 국민법제관을 함께 하고 있던 소기옥 부회장님도 공직자로 재직 시절 조용호 과장님과 두터운 친분이 있었다. 소기옥 부회장님도 제지소에서 소개하고 싶은 인물 중 한 명인데, 이 두 분다 품성은 말할 것도 없고, 책임감과 무한한 신뢰, 배울 점이 상당히 많은 분들이다. 사실 나는 내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끼리 자주 소모임을 가지길 바란다. 그게 나의 즐거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재명이 형 얘기를 하면서 정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는 재명이 형과 나의 지인들이 자주 만났고, 또 이를 통해 네트워크 거버넌스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이 만나 사적인 이야기, 고민, 그리고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를 하지만, 공통의 관심사 중 하나는 서로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한 근황이기도 하다. 나는 재명이 형과 사람을 나눔으로써 더욱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를 늘 응원해주는 분들을 통해 다시 일어설 힘을 얻고 추진력있게 일을 해 나간다.      


재명이 형 이야기를 하면, 사실 인터뷰를 미친 듯이 해나가야 한다. 지금의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사람, 그리고 그 방향성에 좋은 사람이 있고, 또 함께 해나가는 것이 기쁨인 사람, 나는 재명이 형을 통해 확실한 단 한 가지를 배웠다. 넘사벽은 없다. 나의 한계를 스스로 단정짓지 말고, 실패하더라도 묵묵히 도전하고, 실패했을 때 좌절도 마음껏하고, 하지만 다시 일어서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잘되었던 아니던 늘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 형을 통해 내가 배운 가장 큰 인사이트다.      


또, 재명이 형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마다 다양한 조언을 해주는 일종의 조언 AI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자신감있게 내 의견을 잘 이야기하는 편이지만, 이 형은 어떤 이슈라도 자기만의 색깔과 의견이 명확하다. 그리고 누구도 말하지 못하는 주장을 과감없이 펼친다. 물론 나와 같이 편안한 사람들 앞에서만, 그리고 나를 걱정하며, 소신껏하되 종종 몸을 사리는 것도 필요하다는 현실적 조언을 많이 건넨다. 실제로 내 성격이 아주 가끔은 분노에 찬 주장을 할 때가 있어 물론 논리적인 주장들이지만, 나를 워워시키는 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형이 있어서 삶이 고단하고 힘들 때에도 늘 힘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담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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