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발견#16. 은퇴보다 두려운 것은 정체성 공백이다

직함과 역할이 사라지면 우리는 무엇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by 이숙영


그녀는 62세였다. 정년퇴직을 한 지 7개월. 아침에 눈을 떠도 급히 준비할 일이 없었다.

출근 시간에 맞춰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회의 자료를 챙기지 않아도 되었다.

처음 한 달은 좋았다. 두 달째도 괜찮았다. 여행을 다녀왔고, 밀린 드라마도 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제가 쓸모없어진 것 같아요.”

그 말은 작았지만, 그 안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실감이 들어 있다.

이런 날이 지속된다면 그 누구라도 우울해지는 건 당연하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 많은데 왜 우울해?” “이제 편하게 쉬어”

그러나 은퇴 후의 우울은 단순히 ‘할 일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체성의 공백에서 시작된다. 정체성 이론을 거론할 때마다 회자되는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노년기의 과업을 ‘통합 대 절망’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하지 못하면 절망감이 찾아온다는 뜻이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중년에 겪는 위기(우울증이나 신경증)는 개성화의 기회라고 말했다. 그동안 돌보지 않았던 그림자가 "제발 당신의 인생을 돌아보라"는 외침이고, 그림자를 통합하여 더 큰 나를 발견하기를 기다리는 거라고 했다.


이미 전 인구의 20퍼센트 이상이 노인인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이며, 노인 자살률 또한 1위다. 은퇴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노년기 발달과업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이 필요할 때라 여겨진다.



나는 강의를 오래 했다. 기업에서, 대학에서, 어쩌면 나는 늘 앞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말을 하면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강의가 끝나면 박수가 나왔다. 그 시간이 싫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좋았다. 잘하고 싶었고, 실제로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 것도 기뻤다. 더 잘하고 싶어서 더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남들 앞에 서는 것보다, 박수보다 더 오래 남는 장면이 생겼다.

강의나 수업이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진 뒤, 한 사람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순간!


“선생님,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이 드는데 괜찮은 건가요?”

"교수님, 여자친구 얘긴데 잠깐 시간 내주실 수 있나요?"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는 다음 강의실로 이동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었다. 가까이서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그들의 진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행복했다. 아직은 내가 쓸모 있고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있게 여겨졌다. 대게 그들의 질문은 조용했고, 조금은 망설임이 묻어 있었고, 용기가 보였다. 가끔은 삶의 방향을 통째로 건 말이기도 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이제 내가 설레는 순간은 무대 위가 아니라 그 이후라는 것을.


나는 20년 동안 가르치는 사람, 설명하는 사람, 구조를 제시하는 사람으로서 정답을 제시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느끼는 사람, 나누는 사람, 질문하는 사람으로 나 자신을 재구성(재창조)하고 싶다.



우리는 그동안 자신을 직업과 역할로 설명해 왔다. 저는 교수입니다. 저는 상담사입니다. 저는 교사입니다. 저는 엄마입니다. 저는 팀장입니다. 저는 간호사입니다...

그런데 그 직함과 역할이 사라지면 우리는 무엇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은퇴는 단지 직장을 떠나는 사건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던 틀이 흔들리는 사건이다. 그래서 은퇴 후 우울은 생각보다 깊다. 직함이 사라진 자리에 공백이 생기고, 그 공백이 길어질수록 사람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이 줄어드는 순간, 자존감도 함께 흔들린다.


중년의 우울이나 은퇴 후의 우울은 약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당신이 게을러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정체성이 재정비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통증이다. 의미치료를 만든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은 “인간은 의미를 찾지 못할 때 공허를 느낀다”라고 했다. 어쩌면 중년 또는 은퇴 이후의 우울은 무기력의 신호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찾으라는 신호일지 모른다. 칼 융이 말한 개성화의 기회다. 그 공백은 무너짐이 아니라 재구성의 공간일 수 있다.



우리는 노후를 위해 건강검진을 받고 재테크 강의를 듣지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은 거의 하지 않는다.

‘앞으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나이 듦의 시기를 단순한 ‘노후’로 볼 것인가, 아니면 ‘재창조의 시간’으로 볼 것인가?

이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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