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잉맘 함께육아 16>
한 가지에 몰입하는 아이들의 특성은 네 가지 정도가 있어요. 주로 근면성, 끈기, 성취욕, 완벽 추구가 높죠. 어리다고 생각되는 나이에 학습에 대한 흥미가 생겨나고, 학습 수준과 주변 환경이 적절하게 주어질 경우 꾸준히 학습을 이어나가 한 분야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어요.
“너 공부 좀 하겠구나.”
라는 긍정적 피드백에 익숙한 이 아이들은 동시에 ‘학습에 대한 압박’도 함께 받아요.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답니다. 이때 아이가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인가는 아이에게 어떤 학습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인가와 깊은 관련이 있어요. 이번 주제는 몰입 만렙인 저의 이야기를 통해 살펴보도록 해요.
저는 4살 무렵, 옆집 오빠 (당시 만 5세)를 따라서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어떤 마음으로 악기 학습을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오빠는 금세 그만두었고, 저는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꾸며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죠.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간 뒤 저는 ‘라이벌’을 만나게 되었어요. 나이는 같았지만 저보다 키도 크고, 손도 크고, 피아노 진도도 빨랐던 친구였어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날 정도로 그 친구를 경계하며 피아노 학습에 몰두했던 것 같아요.
저의 최대 강점은 잘 되지 않으면 잘 될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었어요. 기본적으로 체력이 좋았고, 손가락이 단단했던 저는 하루의 대부분을 피아노 연습으로 보내고도 지치지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한 지붕에서 생활하는 동생의 반발이 심했죠. 당시에 조금 더 융통성 있게 연습할 수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또 성취욕이 강해서 음악 콩쿠르에 출전하고 1등을 하는 것이 삶의 목표였던 초등 생활을 통해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많았답니다. 제가 콩쿠르 과제로 주어진 곡을 완성해 내는 디테일에 강했지만 전반적인 기초 테크닉에 대한 이해가 낮았고, 초견(악보를 보자마자 읽어내는 능력)이 좋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새롭게 만나게 된 지도 선생님께서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 주신 덕분에 융통성도 생겨나고, 또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대학 진학을 준비하며 실기 시험을 앞두고 잠시 방황하기도 했어요. 딱 한 번 주어지는 무대의 경험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나 커서 ‘그냥 다 포기하고 싶다.’라는 무기력함이 찾아왔었거든요. 매 순간이 고통이었고, 그 어떤 말도 저에게 위로를 주지 못했어요. 주변의 기대도 너무 컸고, 스스로에 대한 기대도 너무 컸기에 불안과 긴장의 연속이었던 입시가 인생의 전부처럼 여겨졌죠.
“인생의 목표는 이게 다가 아니야.”
그때 마침 제가 겪는 입시의 순간은 아주 작은 관문에 불과하다는 것, 또 이 길은 그 누구도 아닌 제가 선택한 길이며 이 문을 통과한 이후에는 더 많은 길을 만나게 될 거란 사실을 일깨워주는 글귀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할 수 있는 만큼 해내는 것을 해내자’ 고 다짐하니 날뛰던 마음도 조금은 진정이 되었고요.
음악교육은 몰입 성향이 강향 저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을까 생각해 보니 참 얻은 것이 많아요.
1. 내 안의 울림(지적 호기심,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 잘하고 싶은 욕구)을 헤아려 보는 것에 익숙한 만큼 나를 잘 돌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적극적으로 탐구해요. 적정 수준의 악기 학습을 통해 몸과 마음을 하나로 일치시키고, 모든 학습의 필수 요소인 반복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어요.
2.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상대의 욕구, 의도를 헤아려 보면서 조화로운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해요. 악기 학습을 통해 조화로운 소리의 중요한 요소들인 강세와 셈여림을 조율하고 탐색해 보며 때에 따라 독립적이면서 다른 의견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나만의 톤을 찾아갈 수 있어요.
3. 제한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절제해요.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갖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모두 달라요. 특히 시공간의 제한이 분명하고 무형의 예술인 음악은 그 제약을 뛰어넘는 효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탄탄한 준비과정이 필요하죠. 음악교육, 그중에서도 악기교육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해 내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을 잘게 나눠 한 걸음 씩 나아가는 방법을 배웠어요.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이 분명해지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하는 것에 대한 절제력을 저절로 키우게 되었답니다.
저처럼 몰입성향이 짙은 아이들은 성취감을 통해 학습의 동기가 부여되기 때문에 적정한 수준의 과제와 아이의 기질에 맞는 피드백이 중요해요. 그중 가장 필요한 것은 주어진 과제를 끌고 나가는 기초체력이랍니다. 지나치게 경쟁이 심한 환경, 혹은 터무니없이 높은 학습 목표량 등은 오히려 아이에게 큰 좌절의 경험을 안겨줄 수 있어요. 아이의 수준에 맞는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세요.
<참고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