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한국에서 피아노 학부를 전공할 당시 막연하게 "피아노 책 한 권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졸업반이 되어서 피아노 페다고지(피아노 교수법)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제가 이 분야에 굉장히 관심 있어하니 지도 교수님께서 유학을 권하셨어요. "그래. 이 길이 내 길이다." 하고 유학길에 올라 벌써 8년째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막연했던 책 출판을 꿈꾸며 다양한 교육방법과 접근방법을 배우다 보니 이제는 제가 애초에 계획했던 커리큘럼을 완전히 뒤 엎어야 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온 것이죠.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처음 시작했을 때 한국의 엄격한 도제식 피아노 교육을 받고 자란 저는 느리고 허술해 보이는 미국의 음악 교육 시스템에 크게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고 또 직접 미국의 영 유아 음악교육현장에 참여하면서 나의 고향 한국에 “이 비밀을 꼭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미국의 공교육에 사용되는 음악교육 방법들은 언어 배움의 과정을 따릅니다. 우선 듣고, 따라서 소리를 냅니다. 이 과정이 충분히 익숙해지면 읽기와 쓰기를 학습하게 되죠. 자칫 ‘배움의 속도가 느리다’는 불평이 나올 법도 하지만 미국 부모들은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느린 배움'의 소중함을 본인이 자라오면서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화적 차이가 학습의 질을 좌우하는 큰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저를 포함한 한국의 부모들은 팽팽한 경쟁사회의 구조 속에서 '느린 배움'은 '사치'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습 커리큘럼이 선행학습 또는 조기교육의 명목 아래 ‘빨리’ 진도를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빠른 속도의 학습 환경 속에서 음악의 깊이까지 얻어내기란 하늘의 별따기 식의 이야기죠.
앞으로의 저는 느린 배움의 필요성에 대해 알리는 것을 목표로 음악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삶의 교훈들에 관한 글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한국의 현실 속에서 조금이나마 예체능의 위상이 높아지고 그 안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온전하게 음악 교육의 즐거움을 느끼며 한 평생 지니고 갈 인생 취미를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