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엄마
2014년 6월, 미국 유학생 부부였던 저는 "예비신부", "예비엄마" 타이틀을 곱씹어볼 겨를도 없이 "엄마"가 되었습니다. 피아노 전공을 결심한 이후 줄곧 저를 수식해 왔던 "피아니스트" 타이틀은 존폐의 위기에 있었죠. 저는 간절히 피아니스트이고 싶었고 또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만 세 살이 된 아들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를 병행하여 사용하다 보니 언어 발달 지연이 온 것입니다. 당시 자신감을 잃고 말하기를 조심스러워하는 아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흥미로운 방법은 노래하기였어요. 마치 오페라에서 레치타티브와 아리아를 주고받듯이 노래로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의 개구진 웃음소리를 되찾을 수 있었고 희망을 보았습니다. 또한 음악으로 소통하는 이 특별한 경험 덕분에 저는 저의 정체성, 피아니스트 엄마를 찾아낼 수 있었죠.
한 번이라도 더 말을 건네줄걸...
아들에게 위기가 찾아왔을 때 언어 치료사로부터 '아이에게 얼마만큼 말을 걸어주느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돌이켜 보니 제가 연습과 공부 또 집안일을 병행해야 했기에 아이는 늘 흔들의자에 앉아있거나 제 등에 업혀있었죠. 얼굴을 마주하고 아이에게 말을 건네주었던 시간들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더불어 아이의 울음소리에 민감했던 제가 고수해온 방법, 즉 아이가 보내는 손짓, 발짓, 눈빛만으로도 반응하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즉각 처리해주었던 육아방식이 아이의 언어발달을 지연시켰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됩니다. 그 후로 30분씩 일주일에 두 번 언어치료사와 만나기로 하고 치열한 6개월을 보냅니다. 매 치료시간 함께하고, 언어치료사의 방식을 함께 배우고, 집에서 매일 반복해줬던 반년 동안 저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실패한 엄마'라는 무서운 낙인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엄마'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모든 퍼즐들이 맞춰지기 시작했죠.
치료가 시작되었을 때 아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자폐가 의심될 정도로 장난감에 대한 집착을 보이고 다른 사람의 소리를 귀담아듣지 않았어요. 그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저 '엄마'였습니다. 부모의 바쁜 현실에 치여 외롭고 쓸쓸했을 아들을 챙겨주지 못한 죄책감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자신을 마주하는 용기와 함께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무장해야 했습니다. 이번만큼은 피아노 연주 준비과정을 통해 수천번도 넘게 제 자신을 마주해온 저에게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어요.
피아노 연주 준비과정의 경우 문제가 되는 부분을 인지하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잘게 나누어 순차적으로 해결해 나가면 금세 매끄러워졌는데 막상 현실적인 문제를 마주하려니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아이를 위해 가장 먼저 제가 변해야 했어요. 치료 첫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얼마나 많이 말을 걸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기억에 남는 건 아들이 한 번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거죠. "그래. 이제 시작이다." 혼자 위로하며 혼잣말이라도 크게 내뱉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는 딱 하루만큼이라고 생각하고 매일매일을 새롭고 소중하게 보냈어요. 어제의 아쉬움을 떨쳐내고 내일의 걱정은 미뤄두며 오늘에 집중했습니다.
또한 저는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지금껏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장가를 불러줬다는 사실을 기억해냈어요. 작은 별 노래를 나지막이 불러주면 아이는 어느새 스르륵 잠이 들곤 했답니다. 그래서 아이의 마음이 평화로워질 수 있도록 평소에도 노래를 불러주기로 결심했어요. 생각보다 이 방법은 효과적이었습니다. 저는 주로 동요나 포크댄스 등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노래들을 불러줬어요. 어느 날 작은 별의 멜로디를 잘 알고 있는 아들에게 "서진아, 서진아 뭐하니?" 하고 가사를 바꿔서 불러주었는데 아이가 찡긋 웃으며 반응을 하더군요. 아름다운 노래에 일어난 작은 변화가 새롭기도 하고 재미있었던 모양이에요. 이때 "이거다!" 싶었습니다.
음악으로 소통하는 이 경험 덕분에 6개월의 시간은 생각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지나갔습니다. 아이의 언어 치료 경과를 보기 위해 두 번째 검사를 받았는데 모든 부문에서 상향 조정된 아이의 언어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이제야 '진짜 엄마'가 된 것 같았습니다.
한순간도 엄마이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아이와의 이 추억은 저의 정체성을 찾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피아니스트 엄마"로서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가 되었죠. 이제 어느 순간에라도 문제점을 발견하고 제 자신을 마주해야 한다면 서스름 없이 나서서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진정으로 생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