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중에 버킷리스트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그냥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1인 출판사가 되어 책을 출간해 아들과 딸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함이었다. 지난 감정을 정리하고 힐링을 받기 위함도 있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글로 써서 곱씹어 고치고 근사한 플랫폼 위에 올려보고도 싶었다.
틈틈이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언젠가 브런치 작가에 지원해야겠다 생각했다. 브런치를 안지는 꽤 됐지만 일이 바쁘단 핑계로 잊고 살고 있었다. 그러다 네이버 블로그에 글이 열개 정도 쌓이던 차에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 슈필라움이란 글을 작성하고 무작정 작가에 지원해봤다. 즉흥적으로 내 소개를 하고 이런저런 글을 쓰겠다고 계획을 말하고 네이버 블로그 주소만 기재한 게 다였다. 당연히 안 될 테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 생각했다. 작가 승인이 쉽지 않다는 것은 검색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덜컥 작가 승인을 받고 만 것이다. 태어나서 어떠한 시험이 있는 관문을 한 번에 통과한 건 처음이었다. 기뻤다. 아내에게 나도 이제 작가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앞으로 김 작가로 부르라고 했다. 아들에게도 앞으로 아빠라 부르지 말고 작가님이라고 부르라 했다. 아내에게 그럴 시간 있으면 편지나 써주라며 핀잔만 받았다. 올해 생일엔 편지를 써주지 못하고 건너뛴 터였다. 아들 보느라 바쁘다는 핑계가 따라붙었다. 아무튼 어디 가서 취미가 글쓰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아 수습할 순 없지만 글은 다르다. 언제든지 충분한 퇴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같은 말이라도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며 내 느낌에 맞는 문장을 찾아간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이야기도 내 마음대로 써볼 수 있다. 무슨 전문가도 아니니 그야말로 붓이 흘러가는 대로 수필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김훈 작가의 수필집을 보고 있노라면 어디 숨고 싶어 지지만, 뭐 이딴 글을 써놨지 하며 자조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난 생업 작가가 아닌데 말이다. 그냥 써보는 것이다. 앞으로 시간 날 때마다 주제가 무엇이든 간에. 땡큐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