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공간을 내 뜻대로 꾸며가는 과정은 내게 성취감을 안겨준다. 바라만 봐도 편안한 바닷가 앞에서 속도는 더디고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하나씩 하나씩 무언가를 만들고 효용감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나 자신이 대견해진다.
나는 지금 육아휴직 중이다. 아이를 만으로 3년은 보육기관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키우고 싶은 아내의 교육철학에 동조해서이다. 곧 태어날 딸을 위해서 내가 아들을 전담해야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1년간 휴직해 아이들을 돌보고 나도 한 템포 쉬어가기로 했다. 일 년 더 벌어봐야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일 년 덜 벌어도 거지가 될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뜻밖의 가장 좋은 점은 코로나 시국에 실내에서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하루 종일 채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마스크는 바이러스의 침투도 막아주지만 딱 봐도 겉면에 묻은 화학물질이 유아의 호흡기에 좋은 영향을 줄리는 만무하다. 불과 수년 전에 마스크 없이 살았던 시절이 그리울 줄은 상상도 못 한 일이다.
또 한시적 백수이기 때문에 자유시간이 많아 아들과 함께 날씨가 좋으면 아무 때나 슈필라움으로 가서 여러 작업을 했다. 아들이 옆에서 아주 큰 도움을 줘서 작업시간이 항상 예상보다 두 세배나 넘게 걸린 것은 비밀이다. 진심으로 재밌어하고 아빠는 위험하다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아들이다. 흥미를 빨리 잃지만 말이다.
2022년 올해 가장 공들인 일은 전년도에 무료 나눔 받은 잔디를 넓게 퍼뜨리는 것이었다. 이른 봄에 잔디가 아직 누렇게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파릇파릇 해지기 전까지 잔디를 약 30평 정도 면적에 길게 줄로 심었다. 잡초를 뽑는 작업이 힘들었는데 더 힘든 것은 곡괭이 질이었다. 포클레인으로 꾹 눌러놓은 땅에 삽이 잘 박히지 않았다. 마침 집 근처 망한 철물점에서 농기구 몇 개를 싸게 구했다. 긴 줄로 위치를 잡고 그 아래를 곡괭이로 얕은 도랑을 파서 삼등분한 잔디를 길게 줄지어 심었다.
잔디심기는 두 달 가까이 걸렸다. 작업을 하다가도 아들 녀석이 산책을 가자고 하면 동네 한 바퀴를 돌았고 모래놀이도 하고 싶다고 하면 삽으로 모래 동산을 만들어줬다. 돌이 던지고 싶다고 하면 굴러다니던 스티로폼 박스에 돌을 가득 채워 아들 옆에 갖다 주기도 했다. 내가 쓰는 모종삽이 좋아 보인다며 본인 모종삽과 바꿔가서 장난치는 아들을 보며 속으로 부글부글 끓었지만 참았다.
현재는 옆으로 잘 퍼질 줄 알았던 잔디에 실망 중이다. 사이사이 빈 공간에 야속한 잡초만 무성하다. 한 번씩 예초작업만 하고 있다. 잔디 뿌리의 활착 정도를 모르겠으니 올해는 참고 내년 초봄에 잔디는 제외하고 잡초의 생육만 저지하는 제초제를 뿌리면 대강 내가 상상하는 그림이 나올 것 같다.
거금 40만 원을 들여 튼튼한 몽골텐트도 구매했다. 슈필라움이 종일 땡볕이다 보니 상시 그늘이 필요해서였다. 지붕 천을 얹고 차광막으로 덮어주니 나무 그늘처럼 시원했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네 군데 말뚝을 박고 화물용 끈으로 튼튼하게 조였다. CCTV로 관찰한 결과 태풍만 아니면 버틸 듯하다.
그늘막 외에 텐트를 치기 위한 데크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당근 마켓에서 무료 나눔 받은 나무 파렛트와 합판을 장인어른 트럭으로 가득 싣고 슈필라움에 가져갔다. 바닥에 벽돌을 깔고 그 위로 가로 세로 5미터 사각형에 크기가 상이한 파렛트를 퍼즐 조각했다. 그 위로 합판을 이리저리 붙여 겨우 상판을 다 덮었다. 마지막으로 방수를 위해서 쓰다 남은 니스 한 통을 발랐는데 몇 통은 더 필요할 것 같아 편하게 방수포로 덮어버리고 바닥만 통풍이 되도록 했다. 다 만들고 그 위에 텐트를 피칭하니 그럴듯했다.
장인어른이 만들어 주신 그네도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에 수평을 잡고 묻었다. 그네 안장으로 쓰기 좋은 나무를 잘라 네 군데 구멍을 뚫고 철봉에 매달아 아들을 태워주니 좋아했다. 나중에 바다 그네라고 써붙이고 깔끔하게 흰색으로 칠해야겠다.
올해 최고의 작업은 정글짐 조립이었다. 폐업한 어린이집에서 공짜로 가져왔다. 아침 일찍부터 동전을 가져가 두 시간을 자리에 앉아 다리가 저리도록 분해했다. 웃기게도 나중에 다시 조립했을 때 부속품이 많이 남았다. 그래도 잘 서있으니 다행이다. 한 여름 땡볕에서 아들의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포카리스웨트를 마셔가며 정말 힘들게 만들었다. 정글짐 부속을 이리저리 끼워봐도 맞지 않아 아내에게 말하니 테트리스는 자신 있다며 걱정 말라고 호언장담한 아내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단지 정글짐 분해 전 사진을 여러 각도에서 찍지 못한 내 잘 못이었다.
이렇게 6개월 간 잔디심기, 몽골텐트 설치, 텐트 데크 제작, 정글짐 조립, 그네 안착 등 다섯 가지 작업을 끝냈다. 흙바닥에서 시작한 슈필라움이 점점 우리 네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장소로 변모 중이다. 가을이 되면 예초작업을 하고 환경을 깔끔하게 정리할 생각이다. 딸아이도 어서 자라 슈필라움의 바다를 만끽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