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슈필라움 꾸미기의 대원칙은 웬만하면 돈을 들이지 않는 것이다. 아기자기 잘 꾸며진 농막과 당장에라도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잔디밭이 탐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부부가 동시에 육아휴직 중이기 때문에 금전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궁상맞게 슈필라움을 꾸미기로 마음을 먹었다.
국유지를 낙찰받고 당장 그 주말에 삽과 낫을 들고 호기롭게 땅을 찾았다. 갈대 같은 억센 풀로 온 땅이 뒤덮여 있었다. 몇 번 낫질로 풀을 베어봤다. 내가 할 짓이 아니었다. 그래서 굴삭기를 반나절 임대해 땅만 평탄화하고 시시티브이 설치를 위한 철 기둥을 두 군데 설치했다. 역시 인간의 삽질은 굴삭기의 유압에 힘입은 작업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비록 흙바닥이지만 이제 땅도 평탄화 되었겠다 모든 것이 끝나고 행복한 캠핑의 시작인 줄 알았다. 카라반이 좁아 가성비 좋은 중국산 티피 텐트도 장만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진흙인 맨바닥에 텐트를 치니 온갖 문제가 거기서 돌출했다.
비가 오면 땅이 젖어 텐트 안팎이 흙 난리가 나기도 하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눈앞에서 텐트 한 귀퉁이가 찢겨 날아가는 걸 아들과 생생하게 지켜보기도 했다. 아들 녀석이 재밌다며 아빠 저기 좀 보라며 웃었다. 슈필라움이 평소에도 바람이 센 곳이긴 하지만 하필 일본으로 향한다던 태풍이 여수 쪽에 상륙한 날이었다. 카라반이 좌우로 크게 흔들려 불안감에 잠도 설쳤다. 카라반이 강풍에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새벽에 일어나 1m 말뚝을 카라반 양옆에 박아 고정시켰다. 큰 맘먹고 산 인조잔디 네 모서리에 큰 돌을 놓아 고정시켰는데 모양이 다 흐트러졌다.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불어서 빗방울에 뺨을 얻어맞을 수도 있구나 느낀 하루였다. 우리는 서둘러 슈필라움을 내팽개치고 집으로 복귀했다.
이 사건 이후로 느낀 게 있었다. 날씨의 중요성이다. 캠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이었다. 윈디라는 어플을 활용해 주말의 바람세기를 미리 파악하고 바람이 약하거나 조금 셀 때만 슈필라움으로 출정했다.
땅을 녹지화 하는 것도 큰 과제였다. 우리 신발이 땅에 닿아 흙범벅이 되지 않도록 조그맣게 설치한 인조잔디가 너무 좁았다. 한국잔디를 한 박스 사서 심었는데 택도 없었다. 알아보니 법면 녹화에 쓰이는 서양 혼합 잔디 씨앗이 50평에 뿌리고도 남을 양이 2만 원이었다. 하지만 워낙 땡볕에 씨를 뿌렸고 날이 가물어 발아하지 않았다. 남부지방에 특히 비가 오지 않는 한 해였다. 주말마다 말통에 물을 길어 잔디씨앗에 물을 주고 차광막을 덮어줬다. 노력이 가상했는지 가을비를 흠뻑 맞고 타 죽은 줄 알았단 씨앗들이 발아했다. 듬성듬성 나온 어린 잔디들이 나름 파릇파릇했다. 그마저도 겨울에 들어서며 성장을 멈췄다. 내년 봄을 기약해야 했다.
큰 맘먹고 8만 원에 구입한 트램펄린도 요긴했다. 아들이 너무 좋아했다. 바다를 한 없이 바라볼 수 있는 트램펄린에서 뛰는 아들을 보며 장난기가 발동한 나와 아내는 트램펄린에서 아들과 함께 크게 뛰자 공중으로 튄 아들이 바닥에 쓰러지며 그만하라며 배를 잡고 웃었다. 이런 게 주말 귀촌의 낙인 것 같아 지난했던 땅 구하기의 어려웠음이 치유됐다. 결과적으로 농지가 아닌 잡종지로 임대했기 때문에 이것저것 꾸밀 수 있었다.
오랜만에 회사 콘도에서 휴가 중이었는데 당근 마켓에 키워드로 걸어둔 잔디가 당근 하며 알림을 보내왔다. 무료 나눔이었다. 뒷마당이 딸린 도심형 신축빌라에서 마당을 다시 꾸미겠다며 잔디를 다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웬 횡재나 싶어 1등으로 당장 내일 잔디를 가지러 가겠다고 하니 주인이 수락했다. 자동차 카시트를 눕히고 방수포를 깔고 그 위에 잔디를 실었다. 한 번으로는 모자라 힘든 줄 모르고 새벽까지 두 시간 거리를 두 번 왕복해 잔디를 슈필라움에 대충 퍼 날랐다. 10평 정도의 흙을 덮고, 티피 텐트에서 흙을 밟지 않도록 하는데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슈필라움 바닥이 초록 초록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