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로서 있을 수 없는 이유

자타(自他)에 대한 규정과 그로 인한 폭력에 대해

by 심하

들어가며


우리는 가끔"아 재 무슨무슨 척하네" 하는 말을 하거나 듣거나 하곤 한다. 잘난 척하지 말라든가 똑똑한 척하지 말라든가 뭐 그러한 말을 들을 때에는 당혹스러우면서도 수치스러워 기분이 나쁘거나 또는 상대가 하는 말이 너무나도 부당해서 감히 그런 말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들끓기도 한다.


우리는 그럴 때 왜 그런 느낌이 든 것일까? 우리가 당혹스러웠던 건 바로 상대가 우리를 보고 무슨 척을 한다고 말했듯 내가 보인 모습이 "진짜"가 아닌 가짜라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상대가 뭐라 말한 대로 들켜버렸다고 즉, 스스로가 가짜를 흉내 내고 있었다고 생각해서이고 분노한 이유는 상대가 함부로 나를 보고 넌 무엇이라 짐짓 아는 체했다는 것에 네가 감히 나를 이러하다고 판단해라는 대에서 분노를 느껴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들을 우리가 느껴버린 궁극적 이유는 바로 상대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무엇이라 판단하고 그러한 모습을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나 그것은 우리도 별 다르지 않다.



자기규정에 대해


위에서 보듯 우리는 남을 특정한 모습으로써 규정하고 그런 모습을 강요하게 된다. 이건 말로 하지 않아도 명백하고 선명한 폭력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런 강요를 하게 될까? 그것이 명백한 폭력인데도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폭력으로 보지 않고 그저 매우 지극히 합당하고 이치에 맞는, 도리어 정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 상대나 폭력을 가한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과 우리, 아니 우리들은 그저 상대의 파렴치한 모순을 깨뜨려줬을 뿐이니깐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전혀 폭력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렇게 여기기에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타를 함부로 재단하고 그를 통해서만, 본인이 세운 타에 대한 모습으로서만 타인을 바라보게 되고 그에 미달하거나 어긋난다면 그 사람은 끔찍이도 추악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던가? 그래야만 되는데 그리 하지 않고 어긋나고 모순된 것이니 부당과 어이없음을 느낄 것이다. 마치 법이나 도덕을 어긴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타를 오로지 하나의 모습으로만 편한 대로 익숙한 대로 보고 나머지 다른 부분은 전부 뭉게 버리고 그저 보이는, 보고 싶은 부분만 남겨버리고 나머지 부분은 거짓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타인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모순적 행위로 판단하고 욕하게 된다. 상대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정의하고 그에 가두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스스로 타를 향한 그러한 폭력적인 판단을 그만두거나 상대를 하나의 모습으로만 정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상대에 의해서만 정의되고 판단받는, 그런 상대에 의해서만 나의 진짜가 결정되는 그러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면 우리를 가두어 버리는 제일 강한 적은 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타에 의한 폭력이 사라지더라도 우리를 타를 보면서 함부로 재단했듯이 우리는 이제 그 방향을 스스로에게 돌려 스스로를 박제해 버릴 것이다. 스스로가 되고 싶은 보고 싶은 모습으로서 본인을 정의하고 "원래 난 이랬어"라는 말을 달고 살면서 본인의 이상을 본인이라고 포장해 대며 본인이 싫어하는 본인의 모습을 가짜로 지칭하고 본인의 그런 가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스스로가 그 자신이 말한 그 진짜가 아니라고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의 일부를 도려내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근본적으로는 "타"이건 스스로 이건 결국 함부로 규정하고 그 규정에만 매달려 그러한 틀로만 세상을 바라보아 세상의 근본이 변화하는 것임이 보지 못하고 고정된 것으로만 보았기 때문인 것이다. 이 세상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적인데 고정되고 변치 않는 무언가에 집착하고 그러한 것을 믿어버렸기에, 타인도 그리고 스스로 또한 자꾸만 고정적인 틀 안에 가두고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다 그 틀을 깨부수고 흘러나왔을 때 그러한 흐름을 막을 수가 없고 자기 맘대로 되지 않기에 분노를 내비치고 지금까지 억압된 것이 더욱 세차게 흘러 모든 것을 적셔버려 시들고 썩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 우리의 문제는 모든 것을 정의하려고 드는 욕구이자 욕심이다. 그런 우리들의 욕구가 문제를 불러일으키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정의하는 행위자체가 나쁘단 것은 아니다. 애초 우리가 무언갈 정의하지 않는다면은 우린 아무것도 할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다. 우리 생각의 근간이 정의이기 때문이다. 즉, 개념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너무나도 쉽게 를 그리고 스스로를 정의한다. 무언가를 빈칸으로 남겨두는 것이 너무도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라도 상대를 규정해 가늠하려고 한다. 가늠하지 못하게 되는 미지가 너무도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러한 두려움과 답답함을 잠시 내려두고 그저 세상을 미정의 상태로 유동의 상태로 둔다면은 그 세상은 퍽 괜찮을 것이다. 스스로가 무언가이어야 된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며 스스로가 무언가가 되기를 바라지 말아라. 본인 스스로를 무엇이라 규정하지 마라. 그런 모든 규정은 다 이에 못 미친다. 스스로를 설명하고 정의하는 제일 적합하고 타당하고 논리적으로 알맞고 단순하며 명쾌한 말은 바로 스스로는 스스로라는 것이다




글을 마치며


위에서의 그저 우리 스스로가 진짜와 가짜를 나눠대며 그런 우리의 다양성과 다름을 담아내지 못하고 오로지 하나의 성질만 지녀야 된다는 듯의 판단 말고도 우리들이 위협하고 가해지고 또 가하게 되는 수많은 폭력들이 아직 많이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다. 우리들의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자존심이라든가. 그냥 느낌상 이건 지켜야지 하는 것들 또는 이걸 안 지키면 뭔가 찝찝한데라거나 혹은 이유도 없이 그저 당연하니깐 이건 당연히 따라야지 하는 것들, 사회에 떠도는 그런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면서도 쨋든 사회에서 많이 이용되고 사용되는 그런 말들을 맹목적으로 믿어버린다거나 그저 많이 이용되는 말들, 권위 있는 말들, 듣기 좋은 말들, 사람들끼리 거의 인정받거나 통하는 말들을 의심 없이 그저 덥석 믿어버려 버리는 것. 아마 앞으로도 이러한 섣부른 규정들에 대해서 다루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치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이분화된 시선과 변치 않는 규정으로서 타인을 가두고 또 스스로를 가두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지옥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채 괴롭게 스스로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남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그 상대 또한 마찬가지로 폭력을 휘두르며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현존하는 지옥과 고대하는 천국에서 말이다.


keyword
팔로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