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과 아날로그 그 사이
2020년은 사과 패드를 얻고 만 3년 넘게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최신형으로 교체하며 내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윈도우와 안드로이드에만 살던 내게 태블릿과 사과 세계는 내 생각을 변환화여 컴퓨터가 좋아하는 말로 입력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과정을 건너뛰어 나의 상상을 바로 실현시키는 놀라움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내가 아직까지도 사과 패드를 10%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대단한 혁명이라고 생각한다(사과농장을 가꾸고 싶은 의지가 충만함). 아직까지는 동영상 시청보다는 그림과 캘리 작업이나 동영상 편집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기특한 녀석. 그런데 아직까지도 정복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바로 ‘메모’이다.
나는 철저히 아날로그적 취향을 지닌 사람이었다. 요즘 세상에 손편지나 카드를 좋아하고 손그림을 사랑하고 연습하고 있다. 스티커와 마스킹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 사랑스러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다이어리 꾸미기가 작년 나의 주된 취미 생활이었다. 지금 나는 한 달 후 있을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계획해야 하는 단계이다. 그러려면 브레인스토밍을 해야 하는데 작년 하반기부터 친해지려고 노력한 디지털 필기 프로그램이 영 손에 붙지 않는다. 종이에 기록하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태블릿 패드 표면에 종이 느낌 필름을 붙여도 미끄러지는 느낌을 줄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글씨도 예쁘지 않게 써지고 결과물이 당연히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다.
게다가 평소 하던 대로 손에 쏙 들어오는 공책에 아이디어를 쓰다 보면 내 머릿속에서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는데 태블릿에 쓰고 나면 내가 원하는 부분을 한눈에 보기가 어려운 느낌이 든다. 바보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때도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보여줘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다시 종이에 내 생각을 남기자니 태블릿은 왜 산 것인가, 왜 활용을 못하는 것인가, 종이 낭비 등 반대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들린다.
이런 내적 갈등으로 차일피일 미루게 되는 나의 계획. 옳지 않아, 옳지 않아.
생각을 정리하려 아침 일찍 눈이 떠진 김에 글을 쓰며 대책을 궁리해본다. 음.
그렇다면 역시 조금이나마 더 낫다고 생각하는 쪽을 시작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다른 방법을 쓰는 것으로 결정해야겠다. 요즘 시대는 선택 후 실패하는 것, 시간 낭비하는 것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 같다. 실상은 스마트폰으로 가십거리를 읽거나 동영상 시청하는데 더 많은 자투리 시간을 허비하면서 손해보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한다. 그래, 일단 저지르자. 그러고 수습해 나갈 수 있는 용기와 인내가 어른이지!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