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 차

발광(發光)하고 싶다

by 글쓰는 달

고등학교 겨울 방학이었다. 집에 나밖에 없는 아주 맑은 날이었고 겨울 햇빛 아래 낮잠 자는 맛을 아는 아이였던 나는 그날도 그렇게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영감이 떠올라서 여자 두 명을 그렸다. 한 명은 머리가 다홍색에 탄력 있는 웨이브를 하고 밝게 미소 짓는 모습으로 나머지 한 명은 앞선 여자의 뒤에 서있는데 머리를 올백으로 넘겨서 깔끔하게 정리하고 회색 머리카락에 노란색 립스틱을 바른 모습으로 표현했던 것 같다. 그때 생각한 것은 ‘과연 나는 태양과 달 중에 어느 쪽에 가까울까?’였다. 아마도 그때부터 나는 해보다는 달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남들이 다 잠든 시간에 조용히 떠올라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어필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에 늘 있는 달이 스스로 빛을 내는 태양보다는 내 모습과 더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던 만화의 영향도 있지만 그래서인지 나는 함무라비 법전의 그 표현을 좋아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실상은 내게 못되게 군 사람도 딱히 응징하지 못하는 둔한 감성을 지녔지만 그래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까지 포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어쩌면 달처럼 나는 외부에서 오는 감정을 그대로 튕겨내듯 전달하며 그것이 잘못되었거나 다른 방법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나의 특성은 생활에 큰 지장이 없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꽤 큰 문제로 다가왔다. 그동안 나는 타인이 내게 보여주는 반응을 그대로 반사하듯 제공하면 되었는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내가 참아야 하고 더 큰 사랑을 발휘해서 아이의 마음에 사랑을 심어줘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지금 외부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고 생전 처음 해보는 엄마와 보호자라는 역할에 몸과 마음이 지쳐 너덜거리는 상황에서도 흔들리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니. 그때부터 나는 태양같이 빛나는 사람이 얼마나 멋진지 동경하게 되었다. 스스로 빛을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달이 태양이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반사체로만 살아왔지만 조금씩 나도 발광체가 되고 싶다. 그런데 그것이 다른 이에게 부담이 되거나 무례한 에너지가 아니라 건강하고 기쁜 감정을 심어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 밝은 것과 방정 떠는 것은 다른데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어보겠다고 생각도 안 해보고 말했다가 상대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말수를 줄여가고 있었다. 내가 원래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모습에서 점점 궤도를 벗어나 지금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차 잘 모르는 우주의 미아 같은 위치에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오히려 잘됐다. 이제부터는 정말 내가 꿈꾸던 모습으로 조금씩 항로를 정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발광하고 싶다. 어떻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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